대회 완주의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십시오. 완주자는 물론 중도포기자,
자원봉사자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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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9,
Date: 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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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바람의 꽁지를 쫓아다니던 그 흔한 구름한점 없었다. 눈만 흘겨도 낙엽은 허공을 잘게 저미며 떨어졌다. 애드벌룬을 매달고 있는 하늘은 운동회를 연상케 했다. 아내는 조금씩 들뜨고 있었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주로는 온통 핑크빛 장미로 활짝 피어났다. 나는 아내의 꽁지를 쫓아가며 ‘천천히! 천천히!’를 외쳤다.
그런데,
3km지점에서 ‘아이고!’하며 아내가 달리기른 멈췄다. 사막을 가로질러가다가 다리가 부러져버린 낙타가된 기분이 들었다. ‘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3년 되었고, 아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년 되었다. 나는 지난 3월에 동아일보 풀코스를 완주했다. 어떤 이들은 서브쓰리를 하고, 어떤 이들은 50회 100회를 완주했다며 기념 에세이를 남겼지만, 단 한번의 풀 완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불로장생을 위하여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정신없이 불혹이 되었고, 정신없이 배도나왔다. 돌아보니 이렇다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건만, 나 혼자 세상의 어려움과 힘듦은 다 짊어진 것처럼 살았다. 인생을 고단하고 건강에 관한 모든 수치들은 적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달렸다. 내친김에 풀도 뛰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였다. 그럭저럭 정상체중을 유지하던 아내가 마흔 중반에 이르자 정신없이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살이라는 거 그거 찌려니까 정말 순식간이었다. 처음에는 통통하고 뽀얀 것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야, 너 살기 편한가 보다.’하면 그거 칭찬 아니다. 급기야 동네 옷 수선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55사이즈를 66으로 늘리고, 고친 옷을 또 고쳤다. 아내의 불만과 고민은 늘려 입은 청바지만큼씩 늘어났고, 불만이 쌓여 체지방이 되었다. 스트레스도 같이 쌓여 툭하면 쌈닭이 되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적계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 누구나 아는 것, 그러나 그거 만만치 않은 것. 그래서 아내도 달렸다. 그런데 이거 여자란 신체적 조건이 남자하고는 또 판이하게 달랐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는 운동장 한바퀴 도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그렇게 뛰어다니며 살아야 할 만큼 거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결혼 10년 만에 내 집 마련을 한 아내가 이 말에 동의 할지는 모르겠다.
“당신 본래 소질이 영 없는 것 아니야?”
달리기를 포기하고 헬스를 다녔다. 찜질방도 다니고, 사과다이어트, 황제다이어트, 요가, 스포츠댄스, 별 xxx을 다해도 뱃살은 요지부동이었다. 와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살덩어리는 첨 봤다. 포기와 도전이 한달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그렇게 12개월이 지나자 저울눈금은 안 움직이는데 옷 입기가 편해졌다. 생활체육 잡지에서 읽어보니, 지방이 근육이 되는 거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믿거나 말거나, 신이 난 아내는 더 뛰어 다녔다. 거실도 뛰어다니고, 회사도 뛰어다니고, 두부 사러가는 것도 뛰어갔다 왔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1개월에 1kg씩 빠지기 시작했다. 히프가 올라붙고, 허리가 들어가고, 최소한 66사이즈는 편하게 소화하기 시작했다. 누가 여성의 허리사이즈는 권력이라 했던가? 여기저기 대회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교통편 좋고, 참가비 싸고, 기념품 맘에 드는 곳으로 다녔다. -사실 참가비 싸면 기념품 안 좋다. -
그렇게 그동안 5km 대회를 수없이 석권했다. ‘조 중동’이 무슨 마라톤 선수 이름인줄 알았던 아내에게도 이력이 붙어 텐포런, LSD 같은 혼란스러운 마라톤 용어에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10km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한순간에 부푼 꿈이 오래된 사원처럼 무너지는가 싶었다.
“걷자.”
단순한 논리다. 뛰지 못하겠으면 걷는 것, 누구나 그랬다, 서브쓰리를 한사람도 그랬고, 풀코스 100회를 완주한 사람도 그랬다.
“괜찮아! 속상해 말고 걸어.”
나이도 비슷하고, 마라톤도 같이 시작하고, 처음으로 10km에 도전한 것도 똑같은 이웃집 부부가 저만치 앞서간다. 자꾸만 그 거리가 아득해진다. 아내의 발걸음이 허둥댄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다리보다 상체가 앞서간다. 오리 같다.
“서두르지 마. 이번에 못하면 담에 하지.”
그렇게 400미터쯤 가자 기력을 회복했는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허리를 고추 세운 것이 자세가 바로잡혔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까? 앞서 뛰며 끓어 주어야 할까? 본인의 페이스대로 뛰도록 뒤따라 뛰어주어야 할까? 나란히 뛰면서 구령이라도 맞춰주며 힘을 돋아 줘야 할까? 앞에서 끌고 가면 쉽게 지칠 것 같고, 뒤에서 따라가면 터덕거릴 것 같고, 옆에서 뛰면 부담 갈 것 같고…… 조심, 조심, 신경, 신경, 신혼의 밤처럼 어르고 달래고…… 바람이 들려준 백만 번째 속삭임을 전하며……
“와 잘 뛰네! 잘 뛰어. 폼도 좋고.”
“돌아보지 마. 우리 뒤로도 무지 많이 따라와.” 입에 발린 소리로라도 사기를 돋아 본다. 돌아보니 자세가 이상한사람 몇 사람만 저만치서 따라온다. 선의의 거짓말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그런 정성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5km 푯말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데 또 저절로 뛰기를 멈춰버린다. 순간적으로 나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벌써 절반이나 와 버렸네!”
이 말이 역효과를 냈다.
“이제 겨우 오 키로야? 뭐 이렇게 멀어.”
아내가 낙담을 하며 주저 않으려 했다.
“포기하자.”
“싫어!”
의외로 포기하자는 말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나도 그냥 해본 소리였다.
“도대체 10km가 왜 이렇게 먼 거야.”
“저기 급수 대 까지만 걸어가자.”
물을 마시다 아내가 재치기를 했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코를 닦아 줬다. 그리고는 물 한 컵씩을 들고 걸어갔다. 나는 별로 목이 마르지도 않았지만, 생물 두 컵을 억지로 기분 좋게 마셨다. 반환점을 돌자 아내가 물 컵을 집어던지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계속 따라 뛰면서 ‘천천히’를 외쳤다. 그런데 이 와이프란 사람의 구조가 어떻게 된 것인지 ‘천천히’를 외칠수록 더 빨리 뛰었다. 내심 불안했지만 따라 뛸 수박에 없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1km를 앞두고 주저앉았다. 공원벤치에도 수건 깔아줘야 앉던, 여름에도 자동차에 시트를 깔던, 고상하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하던 취향은 어디가고, 아스발트바닥에 빈농가의 담장처럼 주저앉았다.
‘어떻게 하나?’
구급차에 타기는 달려온 거리가 억울하고, 엎고 뛰기에는 안방에서 몇 바퀴 돈다면 모를까 너무 벅차다. 마라톤 사이트에서 주워들었던 짧은 상식으로 주무르고 꺾고 하다보니 내 어깨를 지팡이 삼아 일어선다. ‘그래, 지팡이가 아니라 레드카펫이라도 되어주마.’ 그러나 허벅지가 아프다며 이게 영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짜 패잔병처럼 질질 끌고 갔다. 그렇게 걷다보니 방송소리와 음악소리가 들렸다. 대회장이 가까워진 것이었다. 여자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축생이었다. 방송 소리를 듣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자와 옷매무새를 고치고 뛰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보자 V자를 그리며 활짝 웃었다. 나도 옆에서 깡쭝 깡쭝 뛰어갔다.
앞서가던 부부와 딸도 다시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고 떠났던 곳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그런 것, 모두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끝없이 좌절하고 도전하는 것, 앞으로도 우리의 좌절과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10km를 넘어 하프까지, 하프를 넘어 풀까지, 묵묵히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포스처럼 우리는 그렇게 숙명적 동행으로 살아갈 것이다.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산 정상까지 밀어올린 바윗덩어리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푸시킨의 시처럼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것이다. 신발도 좋은 거 신고, 모자도 멋지게 쓰고, 운동복도 커플로 하고, 고만고만하게 살아갈 것이다. 살다가 죽을 것이다. 떠났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은 아내와 술 한 잔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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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비제
221.140.16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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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 맛 나는 글 읽고나니 마음이 훈훈해지는군요. 지난 번 나의 훈련법에 쓰신 풀코스 완주 비법이 도움이 많이 되어 이 중생도 지난 중마대회에서 난생 처음 풀 코스 도전 완주의 기쁨을 맛보았답니다. 늘 옆지기이신 부인과 더불어 건주하시길 빕니다. |
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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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210.95.19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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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기쁘셨 겠습니다. 우리부부도 중마 뛰었습니다.
와이프는 10km......
저도 겨우겨우 풀 뛰었습니다.
두번 째 지요.
욕심도 있지만, 무리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달리렵니다.
어차피 열심히 뛰어도
만들에서 이만등 사이니까
와이프가 빨리 하프를 뛰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풀 안 뛰고 동반주만 하렵니다.
내년 동마(제 참가 수기가 책자로 나가니까)
그리고 춘마(춘마라 그렇게 좋다니까. 한번만 경험) 까지만 뛰고
하프맡 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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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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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125.182.198.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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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으지네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진함을 느낌니다....아름답군요
저도 어제 첨으로 하프에 도전 했고...초보라 남편이 페메를 해주었는데....
ㅎㅎ마라톤의 쓴맛을 경험했습니다...완주는 했습니다...제남편이 저를 안스러워 했을 내용들이 이글로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하는군요....즐달하시고 행복하세요^^ |
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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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210.95.19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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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뒤따라 가면서 보면 맘이 짠 하더라고요
그러나
그런 아픔을 견뎌야
건강하게 살 수 있지요.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데 인생을 낭비 하는 것 보다야
얼마나 좋습니까! |
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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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랑
210.105.2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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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팍팍 옵니다 |
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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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222.101.8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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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 |
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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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녀
116.33.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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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클릭한 글에서 귀한 선물을 받고 갑니다.
대회 참가 자주 하시길 바래요.
건강 문제로 일년여 달리기를 쉬고 있습니다.
주로와 달리미들의 숨소리,
정겨운 땀내음,그리고 하프 2:00무렵의 주자들의 눈빛이
김성기님의 따뜻한 마음을 통하여 전해지니
뭉클함에 젖어 듭니다.
고맙습니다.
내년봄 무렵 주로에서 김성기님과 부인처럼 보이는 부부 달림이를 보면
힘차게 힘을 실어 드리려 합니다.
부인께서 즐거운 달리기와 함께
55사이즈를 넉넉하게 입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
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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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211.253.6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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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의 따듯한 동행을 담담하지만 넉넉하게 잘 풀어시었네요.
항상 운동이라는 부분에서 일정한 부분을 옆지기에게 빛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김성기님의 글이 많은 여운을 줍니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어서 함께 하지 못하지만 저역시 아내와 따듯한 동행을 꿈꾸어 봅니다.
동마 후기이후에 님의 글을 많이 기다렸습니다.
좋은 후기 부탁 드립니다. |
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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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210.95.19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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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마 후기까지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라톤이
아내와
또
다른
좋은 사람들과 만남의
가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
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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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210.95.19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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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녀님 감사합니다.
공감은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지요.
쉬고 있다니 안타갑습니다.
빨리 회복되어 주로에서 뵙기를....
저는 부부가 나란히 세트복장 하고
뛰는 모습이 제일 부럽습니다.
핑크리본 마라톤에서 소원한번 풀었지요
중마에서는 제가 풀 뛰느라...
하프만 돼도 같이 뛰렵니다.
.....
당신이 10키로에서 하프까지 와라
그러면 내가 풀에서 하프로 마중 나가마.
사실은 욕심이지요.
못 오는 이는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3년전 생각하면 저역시 10키로도 고맙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란 참으로 욕심이 한이 없어서....
'아내는 빨리오느라 오고 나는 천천히 가느라 가지만
그 거리가 자꾸만 멀어진다.' 는 현진건의 빈처에서 처가집
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
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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