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완주의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십시오. 완주자는 물론 중도포기자,
자원봉사자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
|
|
|
Read: 1701,
Vote: 6,
Date: 08/04/21
|
|
|
|
|
요즘처럼 수원이 가깝게 여겨진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집 근처 강남역에서 바로
갈 수 있는 직행버스가 있으니 그리 느끼는 걸까...? 횡하니 30분쯤 달렸나 싶은데 벌
써 수원종합운동장이다...요즘 정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심정적인 거리가 좁혀진
까닭도 더해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수 많은 달리미들이 그득 들이찬 운동장 안에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따가운 햇살이 물씬 여름의 기운을 풍겨준다. <오늘 날씨 만만찮겠
는데요...> <글쎄 꽤 더울 거 같죠...?> 4월에 춘설이 내리거나 꽃샘 추위가 유난하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하던가...? 4월이니 봄일시 분명하건만 춘시부동춘
(春時不同春)이라 할만한지 모르겠다. 노련한 꾼들은 벌써 알아 차리고 절로 마음 준비
를 한 겐지 ...<저는 4시간 30분쯤 들어 올라구요..><달리다 힘들면 걸어 들어오죠...>
하는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린다. 지난 주보다 단 몇초라도 빨리 들어와야지 않겠나?
속셈하고 있던 나는 찔끔 한다...매사에 둔하고 시류에 민감하지 못한 성질이 사태파악
에 느리고 어수룩한 걸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까...? 철 들때도 되지 않았나? 한 친구가
웃으며 지청구하던 일이 사실은 농담 아니고 진담 일지도 모르겠네...하는 생각이 스
친다. 하기야 철 들었으면 이리 매주 마라톤 풀 코스에 뛰어 드는 일은 아예 없을지도
모르지...힘들 때일수록 무모함이 환히 드러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까아맣게 잊어
버리는 건망이니 스스로의 과오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미련둥이 아닌가? 하지만
어떤 민족이라도 깨알같은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되살리는 일이 흔하든가? 그랬으면
그 숱한 흥망사란 없었을 게 아닌가?...역사의 도시라선가? 그런 장한(?) 생각도 든다.
8시30분에 출발... 운동장을 외곽으로 한 바퀴 돌고 장안문(북문)과 팔달문(남문)을
지나며 괜히 불타 버린 남대문을 생각한다. 정조가 정말 천도까지 의도한 건 아니리란
생각을 다시 한번 떠 올린다. 그랬으면 이렇게 아담하게 설계하진 않았으리란 추측이
든 것이다. 하지만 사방이 반대 투성이던 상황에서 처음에는 조그맣게 시작함으로써
차츰 반대파를 제압해 나가리란 심모원려深謀遠慮를 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성경
에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되 네 끝은 창대하리라...>란 말씀도 베풀어져 있지 않나...?
그러고 보니 정조가 천주학에 관련되었던 정약용을 끝까지 감싸 주었단 사실마저 상
기된다. 정약용의 거중기가 수원성 축조에 이용되기도 했던 것이고...7.5킬로를 지나
어디 민속관인가 싶은 건물이 나타나 유심히 바라보니 전투 비행장이라 감탄한다.
10킬로에 56분...그리 나쁘지 않다.전체적으로 왕복 코스가 아니라 순환코스에 가까
우므로 되돌아 오는 선두주자 만날 일은 없겠네...그도 하나의 볼 거리인데...약간 심심
하다...20킬로에 1시간 53분...처음으로 물 한 모금 마시고...두번인가 지하도를 통과
했는데 지하가 캄캄하면서도 시원하다 30킬로 성균관대학교 옆 고가상단을 오르는데
한 여름인 듯 절로 헉헉거리게 된다. 32킬로쯤에서 38킬로쯤 까지가 왕복구간인데 반
대편에서 달려가는 주자들이 부럽다. 이젠 정말 마라토너에게 힘든 계절이 시작된 거
아닌가? 아직 그리 심한 편은 아니라 해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마저 느끼게
된다. 중간에 아이스 크림 하나 주는 게 반갑다. 차가운 얼음 덩어리를 커다랗게 입에
삼키니 정신이 번쩍 난다. 얼얼한 게 멍멍해 지기도 하고...이런 맛에 먹는 거로구나
평소 거의 안 먹는 아이스 크림 맛에 새삼 경탄한다. 왕복 구간을 달리는 동안 반대
편 주자와 아는 체하며 화이팅 등을 외쳐 주느라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이제 그를 벗
어나니 남은 거리가 4킬로인데 정말 맥이 타악 풀릴 정도로 지친 게 드러 난다. 잠깐
걸어 볼까 마음을 느꾸니 20~30명 달리미들이 추월해 간다. 벌써 4시간도 지나갔고...
에고 이거 잘못하면 4시간 30분도 턱걸이겠는 걸...몸을 추스려 다시 달리기 시작하며,
자원봉사 학생들에게 미소도 지어주고 손도 흔들어 준다. 달리는 이들이야 제 좋아서
한다지만 죄없는 학생들 정말 더위에 고생이 많네..그런 저들에게 찡그린 얼굴을 보여
줄 수야 있나...? 지당한(?) 생각끝이라 다리가 잠시 가벼워 지는 듯 하다. 한두 사람 너
댓 사람을 젖혀 낸다.이윽고 눈앞에 트렉이 아득히 펼쳐진다. 부상으로 중도에 기권
하신 정승길님 기다리고 계시다 내 이름을 힘차게 불러 주시니 없던 기운이 번쩍 되살
아 난다. 소리란 기운이 전파되는 주요한 통로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골인...하고 나서
님을 부러 찾아 고맙단 악수를 하고, 뒤이어 골인하시는 김무언님 이름을 힘차게 연호해
남은 힘을 나누어 드린다...에구 벌써 이렇게 더우니 정말 더울 여름은 어찌 뛰나...?
탈의실에서 옷 갈아 입으며 동료들 궁시렁 소리를 듣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러는
이 치고 다음주 어딘가 출발선에 서지 않을 이가 없는 것이다. 4시간 18분 48초 (115회)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