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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0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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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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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운동화(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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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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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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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동준이 바삐 서두른다.
준호에게 밥을 차려주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린 후,
러닝복으로 갈아입었다.
평상시와 다른 동준을 지켜보던 준호가 밥을 먹다 말고 동준에게
묻는다.
“아빠, 어디가?”
“응, 아빠 운동하고 올 테니 밥 먹고, 씻고 먼저 자”
동준은 준호에게 다시 한 번 당부를 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차를 운전해 중학교 운동장으로 가니 조금 일찍 나왔나보다.
운동장 어디에도 달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운동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사람들을 기다린다.
고등학교 육상선수시절에 수없이 했던 스트레칭을 하다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 했던 스트레칭 동작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 내 다시
해 보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사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동준에게로 달려온다.
어둠 속에서 반짝 반짝, 꺼질듯 이어질듯 빛나는 반딧불은 성경이었다.
“어, 일찍 나오셨네요, 아무도 안 왔어요?”
“네, 제가 너무 일찍 왔나봐요, 곧 오겠죠”
“이상하네..., 조금 기다려 보죠 뭐..”
성경이 다리를 꼬고 허리를 숙이며,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성경은 등산가방 보다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 있고, 그 배낭에
반딧불처럼 작은 형광색 전구가 달려있다.
대퇴부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스타킹 팬츠를 입고 그 위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다.
상의는 연두색 민소매 러닝복을 입었는데, 왼쪽 가슴부위에 작은
글씨로 몇 자 씌어 있다.
아마도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면서 받는 기념품이리라.
“근데, 그 가방은 뭐에요?”
“아, 이 가방이요?, 달리기 할 때 메고 달리는 가방이에요,
이 가방 안에 물도 넣고 먹을 것도 조금 넣고... 이렇게 깜빡이 등이
달려 있으니, 밤에 달려도 금방 눈에 띄어서 교통사고 위험도 없고...
좋아요..”
“네...”
“근데, 이름이 뭐에요?”
“아, 이거요 러닝 배낭인데, 흔히, 울트라배낭이라고 불러요”
“아니오, 사장님 성함이요”
“제 이름이요...?
그러고 보니 최경장님이 제 이름을 모르시네요.. 후후.. “
“제 이름은 유성경이에요”
“네, 저는 최동준입니다.”
“알아요, 최경장님..”
잠시 적막이 흐른다.
서로 몸을 움직이며 어색하게 스트레칭을 할 뿐이다.
동준은 이름을 괜히 물어 보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좀 더 기다릴 수도 있었는데...
한동안의 적막을 깨고, 성경이 동준에게 묻는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안나올 것 같은데... 어떡하죠?”
“그냥 우리 둘이 달리자”는 말이 동준의 입안에서만 맴돈다.
뭐라 말하기도 멋쩍은 어색한 상황에서 동준이 머뭇거리는 사이,
성경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그냥 우리끼리 달려도 괜찮겠지요?”
“네, 그러지요 뭐..”
동준이 조심스레 대답을 하면서
“먼저 가시죠..”
하면서 성경이 앞 설 것을 요청하자 성경은,
“그럼, 제 뒤에 따라오세요, 처음 달리시는 거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따라오시다가 힘들면 말씀하세요”한다.
“네,..”
동준이 대답을 하고 성경의 뒤를 따라 달린다.
중학교 운동장을 빠져 나와 조금 달리다 보니 신림-제천간 국도가
나타난다.
동준이 순찰을 돌면서 수 없이 지나쳤던 길이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만 해도 이 국도를 이용하는 차량들이
많았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론 차량 통행 눈에 띄게 줄었다.
신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원주나 제천으로 나갈 때나 이용하는
시골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준이 성경의 뒤를 따라 달린다.
이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리던 순간이던가...
꿈이 아닐까.. 정말 현실일까..
구름 위를 달리고 있는 듯하다.
아니, 꿈결 속에서 하늘을 나는 듯 하다.
이대로라면 지구 끝까지도 달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동준은 반짝거리는 성경의 울트라 배낭 불빛을 따라 달린다.
반짝거리는 그 불빛이 꺼지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그 불빛이 언제까지나 동준의 앞에서 반짝거리기를 바라고 있다.
여름밤, 시원하게 뻗어 있는 국도 변을 달리니 날아갈 듯 시원하다.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운치를 더하고, 간간이 지나치는
차량의 불빛에 비친 성경의 모습이 아름답다.
성경의 거칠고 고른 숨소리와 동준의 호흡이 하나가 된다.
...하, 하, 호, 호,.... 호, 호, 하, 하....
둘만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리면서
그 거친 숨소리가 오히려,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어색하고 거친 호흡에 익숙치 못한 건 오히려 동준이다.
마침내, 동준이 속도를 내어 성경의 옆에서 나란히 달리며 말을 건네
본다.
“달리는 자세가 아주 좋아 보이네요, 달리기 오래 하셨나 봐요”
“아니에요, 달리기 시작한지 2년 정도 밖에 안 되요”
“그럼, 대회도 나가 보셨어요”
“네, 원주대회 하프 두 번 나갔고, 10킬로 대회까지 합하면 열 번 정도
나갔어요”
“풀 코스는요”
“풀 코스는 아직 뛰어보지 못했어요, 올 가을에 춘천마라톤에 꼭
나가려고 연습 중이에요”
“근데, 최경장님도 달리는 자세를 보니 초보는 아닌 것 같네요.
하긴 경찰관이면 운동 많이 하시겠지요”
“경찰관이라고 운동 많이 할 수 있나요, 오히려 근무가 힘들어
운동할 시간이 없습니다. 야간근무하고 집에 오면 하루종일 잠자느라
바쁩니다. 또, 휴일도 없고, 명절도 쉬지 못하니 규칙적으로
운동하는게 힘들죠”
“네..., 그렇겠네요”
“네, 그래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네, 그렇군요”
동준이 성경의 옆에 나란히 달리며 고개를 돌려 성경의 얼굴을
바라본다.
희고 고운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빨갛게 상기된 고운
얼굴이 달빛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고운 얼굴 어디에도 어두운 삶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동준은 잡티 하나 없고, 그늘 한 점 없는 성경의 고운 얼굴에,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낀다.
“그런데, 사모님은 운동 안 하세요?.. 같이 달리면 좋을 텐데..”
“네?..그게.. 저..기..”
성경의 갑작스런 물음에 동준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성경이 말을 이어간다.
“하긴, 아줌마들이 운동하는 거 쉽지 않지요..”
“네... 그렇죠...”
동준이 작은 소리로 얼버무린다.
동준이 성경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성경 또한 동준에 대해 모르고 있다.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여름밤의 달빛이 둘의 머리 위에서 떠 있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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