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Read: 2446,
Vote: 3,
Date: 05/12/10
|
|
|
 |
글 제 목 |
 |
찢어진 운동화(3) |
|
|
작 성 자 |
|
소백산에서
|
|
|
|
일요일 아침이다.
보통 때 같으면 준호가 배고프다고 깨울 때까지 늦잠을 자겠지만,
동준은 알람까지 맞추어 놓고 일찍 일어났다.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준호에게,
“준호야 반찬은 식탁에 차려 놨고 밥도 해 놨다. 국만 데워서 먹어,
아빠는 운동 갔다 올게...”
잠에 취해 대답도 하지 않는 준호를 남겨두고 동준은 아파트를 나섰다.
차를 몰아 신림중학교 운동장으로 가니, 대 여섯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다.
저마다 짧은 러닝 팬츠에 민소매 러닝복을 입고 있다.
동준도 차안에서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그들 무리중 한 사내에게
멋쩍게 다가간다.
“저... 마라톤클럽.. 맞아요?”
“네, 그런데요?”
동준이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뒷머리로 가져가며..
“저도 오늘부터 마라톤 해보려구요..”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회장님!, 이쪽으로 와보세요”
그 사내가 회장님이라는 사람을 부르자, 배가 조금 나오고 나이도
있어 보이는 한 남자가 뛰어온다.
“회장님, 이분이 마라톤해보시겠다는 데요”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저는 회장이고... 자, 여러분, 이쪽으로
와보세요”
회장이 회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일일이 인사를 시킨다.
중학교 선생님, 농협직원, 평소 안면이 있던 면사무소 직원도 있다
회장의 소개에 따라 클럽 회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운동장을
두리번거렸지만, 성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달리기는 좀 해 보셨어요?”
“네, 학교 다닐 때 조금...”
“그럼, 완전 초보는 아니시구먼...우리 한번 같이 달려 봅시다”
회장의 말에 따라 일렬로 중학교 운동장을 빠져나가 도로를 달린다.
선두에는 날렵한 마라톤 몸매의 젊은 사내가 섰고, 회장은 맨 뒤에서
동준과 같이 달린다.
천천히 달리고 있지만,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은 탓에 금방 숨이
차 온다.
15년 이상 피워온 담배 탓인지, 호흡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클럽 회장은 동준의 옆에서,
“호흡은 발에 맞춰서 하,하,호,호,.. 하면서 하시고...자세는 상체를
펴고 팔은 가슴높이로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드세요...”하면서 코치를
한다.
동준은 연신 “네, 네”하며 회장의 조언에 맞장구를 쳐준다.
10킬로 정도를 달리고 다시 중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오니, 동준의
온 몸은 땀에 젖어있다.
운동장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클럽 회장이 다가온다.
“아니, 언제 운동 해 보셨어요.. 처음 뛴다면서 10킬로를 잘도 따라
오시네요”
“네, 사실은 고등학교 때 중장거리 육상선수였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굉장히 잘 달리시겠네... 기록은 얼마였어요?”
“네, 고등학교 때 만미터를 32분 정도에 뛰었는데, 다 옛날 얘깁니다.”
“와, 대단하시네요, 10킬로를 32분에 달리시면, 웬만한 대회에서는
우승하시겠네요...”
“앞으로 우리 클럽에서도 서브쓰리가 나오겠는데요..”
회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말을 건네 온다.
날렵한 몸매의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우리 클럽에서 제일 잘 뛰는데, 풀코스 3시간 20분댑니다.”
“최경장님 정도면, 조금만 연습하시면 서브쓰리 충분히 하시겠네요”
“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준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해서인지 다리도 뻐근하다.
동준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오랜만의 달리기 때문이 아니리라..
다음날 출근하여 오전에 교통단속을 하다 점심때가 되었다.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김순경을 반 강제로 끌고 성경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어머, 오늘은 두 분이 같이 오셨네요”
성경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반긴다.
“네, 김순경 뭐 먹을래? 된장찌개?, 김치찌개?...”
“아무거나 먹지요 뭐...”
끝내 못마땅해하는 김순경의 말에 동준은 힘차게
“사장님, 된장 두 개요” 한다.
“여기 된장 끝내준다. 한 번 먹어봐”
스포츠신문을 뒤적이는 김순경을 달래듯 동준이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김순경이 스포츠 신문에 빠져 있는 사이, 동준은 식당 안을 휘 둘러본다.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다.
냉장고 앞 테이블에 놀러 온 듯한 중년의 남녀가 식사를 하고 있고,
그 옆 테이블에는 공사장 인부로 보이는 남정네들 너댓명이 식사를
끝내고 흉측한 모습으로 이빨을 쑤시고 있다.
동준은 주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위에 걸려 있는 성경의 마라톤사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얼굴과 피부가 검기 마련인데, 성경의
피부는 갓 피어나는 새색시처럼 깨끗하다.
중년의 나이를 속일만큼은 아니지만, 러닝복 사이로 감춰져 있는
몸매도 아직은 탱탱해 보인다.
성경의 마라톤 사진을 넋을 놓고 쳐다보는데, 성경이 반찬이 든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동준은 얼른 시선을 거두며 시침을 뗀다.
“김순경, 이 집 된장찌개 한 번 먹어봐, 맛있어...”
“전에 한 번 먹어봤어요”
김순경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스포츠신문을 내려놓는다.
성경이 된장찌개와 밥 세 공기를 내려다 놓고는,
“밥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하면서 되돌아간다.
동준은 밥을 먹으면서 어제 아침에 신림중학교 운동장에 달리기하러
갔었다는 말을 성경에게 하리라 다짐한다.
동준이 밥을 먹기 시작할 무렵, 흉측하게 이빨을 쑤시던 인부들이
입을 쩝쩝 다시면서 식당을 나선다.
냉장고 앞에 앉은 중년의 남녀도 금방 일어설 분위기다.
동준은 일부러 밥을 천천히 먹으면서 타이밍을 맞춘다.
동준이 밥 한 공기를 다 비울 무렵, 중년의 남녀가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갔다.
성경은 그들이 먹고 간 빈 그릇을 쟁반에 담아 주방으로 나르고 있다.
동준이 식사를 마치고, 성경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말을 건넨다
“사장님, 어제 아침에 중학교 운동장에 안 나오셨대요?
“네?, 그럼 최경장님은 나오셨어요?”
“네, 처음 한번 나가 봤습니다.”
“어머, 잘 됐다. 저는 피곤해서 못나갔어요, 그 전날 뛰었더니 아침에
피곤하더라구요. 무릎도 조금 땡기는 거 같기도 하고... 어머, 잘됐다..”
“어때요, 달리기 하니까 기분 좋죠?”
성경은 빈 그릇을 나르다 말고, 어느새 동준이 앉은 식탁 옆에 서서
그 큰 눈을 연신 싱글거리며 말을 건넨다.
동준도 달리기 이야기를 꺼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감이 좋다. 예감이 좋을 때, 밀고 나가야 한다
“사장님, 오늘 저녁에 몇 시에 끝나요?”
“왜요?”
갑작스런 반문에 동준이 멋쩍어 하며,
“그냥... 늦게까지 영업하시면.. 직원들하고 와서 소주나 한잔 할까
해서요..”
하면서 김순경의 눈치를 슬쩍 보니 눈치 빠른 김순경이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신문을 집어 든다.
“어떡하죠, 원래 아홉시면 문을 닫거든요, 아홉시에 문닫고 별일
없으면 달리기하러 가요?
“달리기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그냥 신림에서 제천가는 국도변을 뛰어요”
“혼자요?.. 무섭지 않으세요?”
“후훗.. 다 늙은 아줌마를 누가 거들 떠나 본데요...”
“그래도...”
동준은 같이 달리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같이 달리자는 말을
했다가는 앞에 앉아 있는 눈치 빠른 김순경이 동준의 속내를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고 처음 맞는 기회를 놓쳤다가는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몰라 안타까워한다.
성경이 다시 돌아가 빈 그릇을 나르기 전에 뭔가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순간적인 갈등 사이로, 동준의 멋쩍은 외마디가 불쑥 삐져 나온다.
“저도 같이 뛸께요”
신문을 보고 있던 김순경이 놀란 토끼눈을 하며 동준을 올려다보고는
성경의 눈치를 살핀다.
“어머, 직원들하고 술 마신다면서요..”
“아,... 할 일없으면 술 마시려고 했는데, 달리기한다면 다음으로
미루죠 뭐..”
“그래요, 잘 됐네요. 이따가 아홉시까지 중학교 운동장으로 나오세요”
“네, 그런데, 혼자 뛰세요?”
“아니오, 남자 회원들 몇 사람 나올 꺼에요”
“네....”
“그럼 이따가 운동장에서 뵈요”
성경은 쟁반을 들고 손님들이 남기고 간 빈 그릇을 다시 치우기
시작한다.
동준의 앞에 앉은 김순경은 뭔가 알아챘다는 듯이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동준과 성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동준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계산대위에 올려놓으며,
“잘 먹고 갑니다. 이따가 뵈요”한다
“네, 꼭 나오세요”
성경이 식당 문까지 마중을 나오며 당부를 한다.
동준이 순찰차를 운전하고, 김순경은 말없이 앉아만 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김순경이었다.
“나도 마라톤하고 싶은데.. 나도 밤에 시간 많은데...”하면서
키득거린다.
“야,야.. 어른들 하시는 일에 애들은 신경 꺼라..”
동준이 웃으면서 김순경의 옆구리를 장난스레 친다.
어색한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동준의 입가에서 콧노래가 흘러
나온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