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
Read: 2435, Vote: 2, Date: 2005/12/10 10:40:31
글 제 목 찢어진 운동화(2)
작 성 자 소백산에서
지구대로 돌아온 동준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휘파람을 불며 퇴근 준비를 하는 동준에게 호상이 말을 건다.

“최경장님.. 이따 끝나고 쐬주 한잔?”

“소장님이 쏘신다면이야 좋지요..”

“그럼.. 그 순대국 집에서 기다릴께요”

“참, 소장님 저 집에 다녀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릴텐데...”

“걱정말고 다녀와요. 나는 김순경하고 먼저 가 있지요 뭐..”

김순경이 동준을 바라보며 얼른 다녀오라고 한다.

동준은 바쁘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현관문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데, 문이 열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준호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준호야, 밥 먹었냐”

“네,”

“준호야, 혼자 있을 때는 아파트 현관문 꼭 잠그랬잖아...”

준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텔레비전에 빠져 있다.

집안 여기저기에 널려져 있는 준호의 옷가지와 숙제공책을 치운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능숙하게 시작한다.

벌써 3년째 해 오는 일이다.



3년 전, 동준은 이혼했다.

동준이 경찰에 들어와 처음 발령받은 원주시 문막읍에서, 같은 읍의

농협에서 근무하던 은희를 처음 만났다.

은희를 처음 본 순간, 이 여자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예뻤고, 찾아갈때

마다 환하게 반기며 웃어주던 그 미소에 마음이 끌려, 거의 매일

농협을 드나들다 시피하고, 끈질기게 구애를 한 끝에 은희와의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결혼후의 은희는 농협에서 근무할 때처럼 꼼꼼하지도,

가정적이지도 못했다.

준호가 어린이집을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은희의 외출은

잦아졌다.

어린이집에서 동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집에 아무도 없는데,

아이를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일이 많아졌고, 그때마다 동준은

“퇴근하면서 받으러 갈 테니, 그때까지만 데리고 있어 달라고 했었다.

은희의 외출이 잦아지면서부터 결혼생활은 삐걱거렸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은희는 동준의 잔소리를 소심함과 의처증이라며 몰아부쳤고, 동준은

최소한 아들 준호 만큼은 챙겨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준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은희는 싸늘한 표정으로 대담

하게 이혼을 요구했고, 은희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짐작한

동준은 두말하지 않고 이혼해 주었다.

주위에서는 바보 같은 놈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혼해 주는 놈이 어디

있냐고 했지만, 동준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은희를 보내주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은희를 잡는다고 해서, 은희에게 준호의 엄마로서,

동준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준호를 위해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와 몇 달 동안

밥을 해주고 빨래도 해 주고 있었지만, 이혼한 아들의 썰렁한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손자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준호를 시골로

보내던지, 니 동생한테 맡기던지 하라”고 하셨다.

빈집에 덩그러니 앉아 손주놈 기다리는 게 지옥이라고 하셨다.

준호를 시골로 보낼 처지도 못되고, 동생도 고만고만한 조카들을

키우는지라,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하루, 이틀 준호를 직접

돌보다 보니,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엄마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준호는

의외로 차분하게 동준을 잘 따라 주었고, 동준도 그런 준호를

위안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 준호에게

“아빠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숙제 해 놓고 먼저 자라, 문단속 하는 거

잊지 말고...”

“네, 다녀오세요”

준호가 한 손에 리모콘을 들고 흔들면서 현관까지 마중 나온다.



동준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순대집으로 들어서니

호상과 김순경이 먼저 시작하고 있다.

“어, 얼릉 와”

호상이 엉덩이를 들어 자리를 만들어 준다.

“벌써 시작했네, 이 새끼... 한잔 쏜다는 게 고작 순대야...”

동준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호상과 동준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도 같이 다닌

불알친구다.

둘은 중학교까지는 친하게 지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동준이

육상을 시작하고 호상이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하느라 만날 시간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는 한 동네에

산다는 말이 무색하게 일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하는 사이가 되었다.

둘이 다시 만나게 된 건, 동준이 원주경찰서 문막지구대로 발령을

받아 경찰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호상은 동준보다 몇 개월 일찍 경찰에 입문하여 문막에서 먼저 근무를

하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갑게 지내고 있었다.

호상은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진급도 빨랐다.

동준이 은희와의 결혼과 이혼 등,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말년 경장인

반면에, 호상은 재작년에 경위로 승진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신림면에서 두 번째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호상은 지구대 사무소장으로, 동준은 직원으로...,

근무시간에는 호상과 동준은 서로 존댓말을 써주지만, 사석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새끼부터 시작해서 이 새끼로 끝이난다.

호상이 동준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묻는다.

“야, 근데, 준호는 잘 지내냐?”

“응, 혼자 밥 찾아 먹고 텔레비전보고 있더라. 먼저 자라고 했다”

“허..., 참...”

호상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 뱉는다.

“동준아, 니 얼릉 재혼해야지, 언제까지 준호 데리고 혼자 살래...”

“준호도 이젠 머리가 컸으니, 니 맘을 이해할 꺼야, 더 늦기 전에

좋은 여자 골라봐라, 준호도 엄마가 필요하잖아...”

“새끼... 지는 아직 장가도 못 갔으면서...”

“내가 장가를 못 간 거냐 임마.. 안 간 거지..”

동준은 소주잔을 비우고, 호상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내 걱정하지 말고, 니나얼릉 장가가라”

동준이 술병을 내려놓고, 담배를 빼어 문다.

하얀 연기가 백열등 전구 불빛으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마라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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