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완주의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십시오. 완주자는 물론 중도포기자,
자원봉사자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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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7,
Date: 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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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밤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느라고 밤 늦게까지 있었던 탓에 아침 컨디션이 몽롱하다. 몸 상태도 안 좋은데, 오늘 대회는 눈 질끈 감고 땡땡이 칠까.. 마음 속으로 잠깐 생각하다가, 오늘 대회 경품이 자동차 인 것을 상기하고는, 뛰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대회장까지 가서 경품추첨 자리에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섭섭하면 하프라도 뛰면 되지.. 하면서 마음을 고쳐 먹는다. 미역국에 밥 한그릇 말아서 후다닥 먹어 치우고는 6시 40분 집을 나선다. 수원종합운동장까지는 20분도 채 안 걸릴것 같은데, 너무 이른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면서, 뉴스를 듣다 보니, 오늘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오늘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겠군.. 혼자 생각해본다.
대회장소인 수원종합운동장에 도착하여 옷 갈아입고, 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맡기고는 대회장 이 곳 저곳을 둘러 본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보면서... 2006년도 대회에서는 오이 한 박스가 당첨되어 기분좋았었는데, 올해는 아무리 경품 당첨자 게시판을 둘러봐도 내 번호는 보이지 않는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초록색 잔디 밭에는 해병대 의장대와 군악대가 도열해 있다. 멋진 제복을 입고 의장대 시범을 보이는데, 동작들이 일사분란하고 절도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거 공연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여 연습했겠지, 오늘 휴일인데 공연할려고 여기 나왔으니 쉬지도 못하고 안되었다. 그들 입장에서 온갖 생각을 다 해본다.
공연이 끝나고 몇몇 아는 사람들 만나서 인사 나누고, 곧이어 자동차 경품추첨이 있었는데, 당첨자가 나오지를 않아 몇 번인가 재추첨한 끝에 어떤 재수 좋은 사람이 받아가는 것을 보고는, 큰 기대는 안했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가슴 한구석에 고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음을 비워야 하거늘, 쓸데 없는 공짜 욕심에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8시 30분, 드디어 출발이다. 맨 앞줄에 서서 출발했는데, 따라가기가 어렵다. 내 주제를 알아야지, 훈련량은 턱없이 부족한데, 선두그룹에서 뛰려고 하냐.. 스스로를 꾸짖으며 스피드를 줄인다. 이내 많은 주자들이 나를 추월해 간다. 3키로 지점, 장안문(북문)이다. 가도에 시민들이 꽹과리를 치며 응원해주니 나도 모르게 스피드가 빨라지려 한다. 한편으로는 시민들께 죄송스런 마음도 든다. 우리 마라톤 환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허구헌날 얼굴은 새까맣게 타가지고는 땀 뻘뻘흘리며 힘들게 뛰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인 양 한심스런 눈길로 쳐다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일요일의 도심 교통통제가 반가울 리 없을 터이다. 죄송합니다. 일년에 하루 몇 시간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시계를 보니 키로당 대략 4분 40초 페이스. 아직까지는 괜챦으나, 어디까지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팔달문(남문)을 통과하고 수원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여, 오산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8키로를 지나면서 백두대간부부 유연자씨가 추월해간다. 오늘은 남편은 어디다 두고 홀로 뛰시나.. 대단하신 여성 주자로서 대회 때마다 주로에서 자주 보는 분인데, 오늘도 나오셨다. 10키로 통과. 시계를 보니 47분. 그럭저럭 괜챦은 기록이다. 이대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는 듯, 얼굴로 땀방울이 뚝뚝뚝 떨어진다. 12.5키로 지점에서 스폰지 두 개 집어들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4분 40초대 페이스를 계속 유지한다. 다른 주자들의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지 이젠 내가 다른 주자들을 계속 추월하는 형국이다. 이래도 되나.. 후반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15키로 지점 통과시간 1시간 10분, 나쁘지 않다.
15키로 지났고, 이제 20키로 지점까지는 마을로 우회하는 코스이다. 동네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탓에 기운도 나고, 또 약간 내리막길도 있는 덕에 스피드가 빨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15키로에서 20키로까지 5키로 구간 통과시간이 지금까지 보다 1분 정도 빠르다. 이제부터는 페이스를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20키로 지나면서부터는 거리 표시판 위치가 잘 못된 것인지, 나의 페이스가 들쭉날쭉 한건지 헷 갈린다. 20키로 ~ 21키로 구간 소요시간이 3분 50초인데, 이건 말이 안된다. 분명 표지판 위치에 오류가 있다. 대한육상연맹 공인코스라는데, 이래도 되냐.. 그렇지만, 그게 뭐 대수냐. 하며 묵묵히 땅만 쳐다보고 달린다. 땀이 비오듯 하는데, 이런,, 소변까지 마렵다. 그러고 보니, 이 대회는 주로 상에서 임시 화장실을 한번도 못 본거 같다. 어쩔 수 없이 노상방뇨 해야 하나... 적당한 장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뛰다가, 드디어 방뇨하기에 근사한 곳을 발견. 보리밭이다. 23키로 부근. 보리밭 사이에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다시 주로로 뛰어들어 달리는데, 이제 속도가 쳐지기 시작하여, 하나 둘, 주자들이 나를 추월해간다. 속도를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25키로에 도착하니,, 이런, 급수대가 없다. 도로 사정상 급수대 설치할 상황이 못되었나 보다 생각은 하면서도, 있어야 할 곳에 있을 게 없으니, 몹시 짜증난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데..
26키로 지점 가까이에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물도 벌컥벌컥 마시고 바나나도 1개 먹는다. 더 먹고 싶지만, 참는다. 이제부터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걷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자박 자박 혼자서 땅만 쳐다보고 외롭게 달린다. 지하차도를 두 개나 지나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그들처럼 조금만 걸어볼까 유혹도 일지만, 이를 악물고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30키로 급수대에 도착한다. 꿀 맛 같은 물을 서너잔 마시는데, 여성 주자 한 분이 통과한다. 누군가가 그녀를 보고 여자부 4위란다.
30키로 지나자마자 긴 고가도로 언덕길이다.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간신히 뛰는 흉내만 내며 언덕길을 오른다. 32키로 지나면서는 겨드랑이에 쓰라린 통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싱글렛 옷 솔기에 팔뚝 안쪽이 스치면서 상처가 났나 보다. 가급적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팔을 벌리고 뛰다가, 인라인 패트롤을 만나 바세린을 얻어 바르니 한결 낫다. 33키로 지나면서 더위사냥 반쪽 얻어 먹고, 기운을 짜내면서 간신히 35키로 급수대 도착. 물 서너잔 마시고 뭉친 다리 스트레칭으로 풀어주고 달리기를 계속한다.
36키로 지나면서 왼쪽 허벅지 근육에 경련이 오는 듯하여 페이스를 조금 늦추다, 괜챦아지면 다시 속도 올리기를 반복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너댓명을 추월했으니, 그래도 남들보다는 아직 체력이 남아있나 보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오늘의 레이스는 그다지 고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마라톤이 고생을 즐기는 스포츠라고는 하지만, 오늘은 그런대로 견딜만 하지 않았나.. 땅만 바라 보며 묵묵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40키로 급수대 도착. 자원봉사나온 여학생들이 꺅꺅 소리지르며 힘내라고 외쳐주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뭐, 장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한편으론 쑥쓰러운 생각도 든다.
남은 2키로를 힘들게 달려 드디어 운동장에 도착, 트랙에 들어서면서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두명에게 추월당한다. 페메가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니야?.. 시계를 보니 약 1분 정도 빠른데... 생각하면서 그들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빨간 우레탄 트랙을 돌아서 드디어 골인. 32번째 풀코스 마라톤 완주. 완주시간 3시간 38분 50초. 칩 반납하고 간식 받고, 옷 갈아입고 나니, 배가 너무 고프다. 간식으로 받은 빵하고 바나나, 우유 먹을까 하다가..., 집에 가서 밥먹지, 간식은 집에가서 아이들 줘야지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출발한다. 달콤한 피곤함이 전신으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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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211.107.8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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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님! 참가후기 잘 읽었습니다. 골인 기다려 줘서 감사합니다. 미안한 마음에 먼저 가라고 해서 다시 미안했습니다. ^^ |
0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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