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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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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말이야. 우리집 딸내미 민지가 뉴욕마라톤에 나가는 것같아"
급변하는 상황에 당황해하면서 우두커니 서있는 승범에게 사장이 던진 말이다.
"따님이요? 운동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실텐데요.."
랜드빌드 개발에 막 입사했을 때 승범은 서오릉 근처에 있는 사장의 자택에 초대받아 놀러간 적이 있다. 사장은 산 중턱에 넓은 부지에 세번째 부인과 딸 민지와 가사 도우미, 타미의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사장은 상당히 시간이 지나 겨우 얻은 외동딸 민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붇는 딸바보였다. 민지는 아직 초등학교 6학년으로 승범의 면전에서 정원 나무에서 떨어져 코등을 깨 반울상이 되어 있는 민지를 보면서
'까불대더니 동작도 꿈뜬 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승범과 민지의 첫 만남이었다.
"응"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최근에 유진이라는 대학 친구의 꼬임에 매일 죠기잉을 하고 있다네"
사장은 '조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죠기잉'이라고 했다.
"2년에 걸쳐 알바비를 모은 것같아. 갑자기 유진이와 뉴욕마라톤에 나간다"고 해서 말이야..
"뭐 걱정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뉴욕에 간다면 말입니다"
"안돼!"
사장이 외쳤다.
"내가 감시하고 있어. 마라톤 참가는 변명이야. 이 녀석 존인가 조지인가 라는 녀석과 인터넷으로 편지를 주고 받고 있는 것 같아"
"네~"
승범이 마지못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점점 사장의 초조감은 더해져가는 것 같았다.
"이해가 늦구나 심과장, 이봐 민지는 2년전 뉴욕에 단기유학을 갔잖아"
"네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그 때 존인지 조지인지와 사이가 좋아진 것같아. 미국에서 돌아온 후 바로 그 녀석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거든"
"다시 말하자면?"
"다시 말하자면, 민지가 이번 뉴욕에 가는 것은 존인지 조인지 그 녀석을 만나기 위해서야. 그것을 반드시 막는 것이 자네의 역할이야!"
"싫습니다. 따님은 벌써 스무살을 넘은 어른입니다. 조인지 존인지와 사귀고 있다고 해도 뭐라고 하겠습니까?"
"만약 민지가 조인지 존인지 그놈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겠다고 하면"
사장은 애처롭게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외로워 죽는다 말이야"
언제까지 아이를 데리고 있을 셈인가? 박 사장은 부모라기 보다는 할아버지 정도의 나이다보니 민지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승범은 체념했다. 사장이 맘대로 항공권을 사고 마라톤의 출전권까지 사놓은 것이다. 사원인 승범은 분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사장은 이 부동산 개발회사의 헌법이다. 이 헌법의 이념은 "내 갈길을 간다"이다. 헌법만이 자신의 길을 가고 사원의 기본적인 인권은 종종 외면당한다.
"그러면 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요?"
승범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내가 친구 녀석인 유진이는 매수했네"
사장은 득의해 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고급 백 하나를 사주었지. 마라톤이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는 민지가 조인지 존인지 그 녀석과 만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어. 문제는 마라톤 중이다. 각각의 달리는 페이스가 있으니 유진에게 거기까지는 부탁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이제 자네가 나서야겠네. 심과장. 민지를 찾아내게, 마라톤 도중에 존인지 조인지를 만나지 못하도록 옆에 딱 달라붙어 감시하는 거네!"
정말 재미없고 한심한 사명을 안고 승범은 뉴욕마라톤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파에서 민지를 찾을 리 없다. 아니 파도가 아니라 그냥 바다이다. 만날 장소도 정하지 않고 약속도 없이 이 인산인해속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절대 불가능! 승범은 처음부터 단념했다. 귀국해서 사장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보다 레이스다. 승범은 태연히 주위의 참가자를 둘러보았다.
100kg는 넘을 것같은 뚱뚱한 미국 아주머니가 출발을 기다리면서 사과를 와작와작 베어먹고 있다. 저 아줌마가 달린다면 풀코스 첫 도전인 나도 어떻게 되겠지. 한 때 장거리에 귀의한 바 있는 몸이다. 대학의 육상부에서는 하루에 토탈 30km부터 40km는 달렸다. 공백과 나이, 체중증가 등의 이유는 있지만 그래도 2시간대로는 달성하고 싶다.
마음을 달리기에 집중시키기 위해 승범은 몸을 구부려 신발끈을 다시 졸라맸다. 현역 선수였을 때부터의 출전하기 전 의식이었다. 순번에 맞게 끈을 끼어 정성을 쏟아 세심하게 맸다. 최고의 달리기가 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레이스를 펼칠 수 있도록...
신발끈에는 대회용 기록계측의 칩이 달려있다. 신발은 학생시대부터 쭉 같은 메이커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 신고 있는 것은 파란색에 흰색 라인이 세 줄 들어있는 디자인이다. 가볍고 착용감과 기능성이 좋은 것은 물론 승범은 라인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빛을 닮아 흐르는 물과 같기도 하고 어디까지고 뻗어가 내달릴 수 있는 길 같기도 하다. 레이스 전에 신발끈을 다시 매고 흰색 라인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면서 바람이 되어 강과 길을 빠져나가면서 만나는 여러가지 이미지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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