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런던 마라톤은 출발 총성을 전후하여 모든 화제가 일변했다. 출발 전 코스기록 보유자 킵초게의 인터뷰, 역대 2위 기록 소유자인 베켈레, 은퇴 레이스를 가지는 모 파라 등, 올림픽 마라톤 여자 챔피온 쳅치르치르 이야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2시간 남짓후 그 화제는 마치 다른 대회의 결과를 보는 듯이 일변했다. 거기에는 온통 켈빈 킵툼과 시판 하산의 이야기 뿐 이었다. 어쩌면 킵초게가 울린 출발 총성은 3만여명의 러너의 출발을 알림과 동시에 세계 마라톤 세대 교체을 알리는 총성이기도 했다.
이번 런던마라톤의 주인공은 2:01:25로 역대 2위를 기록한 켈빈 킵툼보다는 완주와 중도포기의 기로에서 살아남아 우승까지 거머쥔 시판 하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킵툼의 마라톤이 두번째였지만 하산은 데뷔 마라톤이었다. 사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제대로 완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의 우승은 더욱 극적이다.
그녀의 레이스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아슬아슬, 좌충우돌”이었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후 우승을 스스로 믿을 수 없는 듯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은 그 모든 과정을 웅변해주고 있다.
이 번 대회의 여자부는 그야 말로 세계 최강이었다. 디펜딩 챔피언 얄렘제르프 예후알로우(에티오피아, 2:17:23), 도쿄 올림픽 챔피언이자 최근 5경기 연승행진을 이어가는 페레스 젭치르치르(케냐, 2:17:16) 그리고 세계기록 보유자 브리짓 코스게이(케냐, 2:14:04)가 버티고 있어 하산은 스스로가 인정한대로 한껏 주눅이 들어있었다.
사전 기자회견에서 “나는 정말 호기심이 많은 선수다 어느날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라톤에 도전한다고 했다. 그녀의 코치 팀 로우베리(Tim Rowberry)는 마라톤 도전을 트랙 커리어 말년까지 기다리자고 조언했고 그 일로 논쟁을 가지기까지 했다고 했다. 실제 대회전 그의 인터뷰를 들으면 그녀가 과연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히잡을 쓴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그런데 대회 1개월 전부터 라마단 기간(3월 22일~4월 20일)과 겹쳤다. 고강도 아침 훈련 후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낮 시간동안 음식과 음료를 먹지 못 했다. 라마단은 무슬림들이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식사는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 단식을 말한다.
그녀가 각본없는 마라톤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 훈련을 마라톤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여름 세계 선수권대회 트랙 종목에 치중하면서 짬짬이 마라톤 훈련을 했다
○ 대회 1개월전 라마단으로 제대로 음식과 물을 섭취하지 못해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선에 섰다.
○ 대회 10일을 남겨놓고 허벅지 부상을 입었는데 대회일 아침 깜빡 잊어버리고 테이핑을 하지 못했다.
○ 그래서 그는 19km지점에서 레이스 중 2번 멈춰서 스트레칭을 한다. 25km 지점에서 선두 그룹은 28초(약 145m) 앞서간다.
○ 다시 선두를 따라잡았으나 40km 지점 급수대를 놓친 것을 알고 직각으로 꺾어 급수대로 가다 선도 오토바이와 간발의 차이로 충돌을 면한다
○ 피니시 200m전에 선두를 차지하고 트랙 선수처럼 달려 승리를 거머쥔다.
트랙 전문 선수가 잠시 마라톤에 한 눈 팔다 우승한 꼴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건각들이 총 집합한 레이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2시간 18분 33초로 마라톤 데뷔전을 치렀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강력한 상대들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올림픽 챔피언 페레스 쳅치르치르를 포함하여. 하산의 예상 밖의 승리는 마라톤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레이스 중 하나였으며 영국과 네덜란드의 신문 1면부터 뉴욕의 지역 TV 뉴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하산의 경력을 살펴보자. 그녀는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났다. 취미로 달리기를 즐기다 15세때 난민으로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간호사가 되고자 공부를 하면서 달리기도 병행했다. 10년전인 2013년에 네덜란드 국적을 획득했다. 그 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30세의 하산이 이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장거리달리기 선수로 여겨져야 하는지 여부이다. 확실히 그 누구도 하산의 업적에 필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일 세계 기록(그리고 깨진 이후 10,000m 중 하나), 1500m와 10,000m 세계 타이틀, 5,000m와 10,000m 올림픽 타이틀,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마라톤 중 하나에서 우승했다.
대회 후 그의 코치 로우베리는 내년 파리 올림픽에서 1952년 올림픽에서 체코의 전설적인 에밀 자토페크의 놀라운 5,000-10,000-마라톤 3관왕을 재현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녀의 2시간 18분 33초로 하산은 이제 올림픽 마라톤 출전 자격을 얻었고, 여자 마라톤이 처음으로 올림픽 마지막 날에 열리면서 잠재적인 하산 3관왕이 큰 관심을 끌 것이다. 그녀가 만약 “여자 자토펙”이 된다면 명실상부 GOAT(Greatest Of All Times)의 지위를 거머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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