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완주의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십시오. 완주자는 물론 중도포기자,
자원봉사자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No. 121
Read: 3875, Vote: 17, Date: 2007/03/29 12:47:24
글 제 목 황금돼지가 물고 온 써브 3의 꿈
참가대회 2007 서울국제마라톤
작 성 자 남수만 (smnam@yooshin.co.kr)
카테고리 풀코스
주위의 기대가 부담이었는지 간밤에 꿈을 꾸었다.
그렇게 뒤척이며 부시시 일어나 전장에 나가는 장수인양 하나둘 군장을 챙긴다.
뭐 생기는 게 있다고 과거시험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처럼 진작부터 일어나 걱정스레 지켜보는 옆지기의 정성도 기록에 대한 부담을 더한다.
당신을 믿는다나??? 반드시 해 낼거라고...
아마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내게서 어떤 예감이랄까 용기같은 것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황금돼지해를 맞아 갑장인 집사람과 쌍돼지들의 이벤트를 멋지게 기념해 보자고 시작한 써브-3에의 도전.
그러나 작년 동아대회를 앞두고 지독한 감기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여 좌절감을 맛본 이후로 절치부심 춘천에서의 3시간3분으로 행여 이번 동아에서의 꿈의 기록에 대한 기대가 없지도 않았지만 아직은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할 멀고 먼 써브-3의 꿈....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긴장되고 가슴 졸인다.
그 기다림의 흥분이 매니아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라 하면 지나친 궤변일까?

짐을 맡기고 물통하나 들고 가볍게 몸을 풀면서 비슷한 시기를 함께 살았을 많은 아빠들에게 찐한 동지애를 느끼며 힘차게 화이팅을 외쳐본다.
후회없이 멋진 모습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보여주자고......
준비한 간식과 이온음료를 털어 먹고 빈 통에 마지막 힘을 다해 생리현상을 해결한다.
신체구조상 남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좌측에 청계천변을 끼고 10키로지점을 42분에 달리고 있었다.
개발시대의 상징이었던 청계천고가와 콘크리트 구조물을 거둬내고 새롭게 단장한 그 거리를....
어둠침침한 세운상가며 낙원상가 골목주변을 기웃거리면서 괜찮은 빨간 물건들을 흥정하던 때가 있었지.
괜시레 쓴 웃음을 흘려본다.
3년여전 회사 동호회원들과 임진각에서 10키로를 55분에 뛰고 나서는 거의 반 초죽음이 되어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서는 중얼거렸더랬다.
“이건 미친 짓이다.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운동이 아니다.“ 라고
그러고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하나 빼어 물고는 풀코스를 뛰고 들어오는 주자들의 힘들어 보였지만 행복에 겨운 그 충격적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시작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덧 종로를 달리고 있었다.
벌거숭이 모습으로 교통지옥이었을 그 거리를 뛰어 다닌다는 야릇한 기분을 느끼며 30여년전 종로에 즐비했던 음악다방에 죽치고 앉아 호텔캘리포니아를 몇 번이고 신청해 들으면서 솔담배 빼어 물고 인생을 고뇌하던 바로 그곳,
첫미팅에 가슴설레며 어슴츠레한 취기 속에 날치기 당한 첫키스의 달콤한 추억이 배어 있는 바로 저기 뒷골목, 코파카바나였던가?
어두웠던 시절 최루까스에 눈물 훔치면서 민주화를 외치며 쫒고 쫒기던 그때 그 신설동 사거리를 지난다.
세월은 강산을 몇 번을 뒤집었어도 그 거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 변한 게 없다.

대공원쯤에 이르니 길거리에 시민들이 봉달이가 역전우승을 했다며 중계방송을 한다.
그 소리에 갑자기 신바람이 났는지 힘을 더 내 본다.
20-25키로까지 구간을 20분도 안되게 달리는데 Lap표지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봉달이, 그 나이에.....
뜨고도 감은 듯 헷갈리는 눈이며 대강 제멋대로 자라버린 턱수염, 온갖 풍상을 다 짊어지고 살았을 법한 균형 안 잡힌 그 얼굴을 보면 볼수록 안쓰러운 생각이 듦은 그 잘난 우리들만의 잣대이리라.

30키로 즈음에 오른편 성동교를 지날 무렵, 중량천 너머로 언덕위에 낯익은 건물들이 한 눈에 잡힌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고 불 밝히던 그 곳을 지나면서 짜릿한 전율같은 것이 느껴진다.
지천명을 바라보며 이렇게 쭈그러진 모습으로 이 곳을 다시 찾게 될 줄이야.
건물 속에 수많은 후배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 마지막 힘을 더해본다.
그렇게 30키로지점을 2시간 6분에 통과하면서 오늘은 웬지 기적같은 일이 벌어질 것같은 직감을 느낀다.

그렇게 한강물을 건넜다.
2년여전 첫풀을 뛰면서 저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도록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스쳐간다.
잠실역 못미쳐 회사직원들과 동호회원들이 펄쩍뛰며 반겨준다.
그래 이 분위기만 유지하자. 무리하지 말고....
얼마만의 써브-3인가
꼭 한 번은 해 보고 싶었던 그 고지.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멀고 험할 것이기에 그저 그 주위에서만 맴돌다 그러다 말 것같은 체력의 한계와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라톤한답시고 많은 시간을 죽이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 해오며 생활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에 주중 훈련은 절대 1시간을 넘기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부족한 훈련량은 주말을 이용해서 변화주와 산악훈련위주로 지루하지 않게 보충해왔다.

40키로 지점을 어렵지 않게 넘어서면서 오늘의 기적을 확신했다.
잠실운동장이 시야에 잡히자 전력을 다하면 몇 초정도는 더 당길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
거리에 응원나온 시민들에게 반갑게 눈인사도 보내고 하이파이브도 해주고.....
운동장을 들어서면서 아빠를 남편을 연호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금 이 시간 소리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을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얼떨결에 시작한 마라톤에 처음엔 만류도 있었지만 하나둘 변화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이젠 한결같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잘못된 사람 많다 하시며 성화하시던 어머님은 환갑이 다 되신 본당신부님께서 마라톤 완주메달을 들어 보이며 아이처럼 자랑하던 말씀을 들으시고는 생각이 달라지셨다.
결코 잘 나지도 가진 것도 없는 놈에게 시집와서는 하고 싶은 일 다 접고 넉넉치 않은 살림 꾸려오면서 꿋꿋이 가정을 지켜주고 아이들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키워준 사람,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며 살아온 회한의 20년을 함께 한 집사람 얼굴이 떠오르며 주책없이 콧등이 시큰거린다.
무슨 일이든지 우리아빠가 최고인줄만 아는 아이들.
배번에다가  “♥이쁜 세경이네 아버님 화이팅♥” 낙서에 사진까지 귀퉁이에 붙여 넣고는 힘 내시라던 작은 녀석.
대학엘 들어가더니 이젠 아빠가 남자로 보이는지 좀은 서먹하고 얼굴도 보기 힘든 큰 녀석의 모습을 인파 속에서 그려낸다.
그런 가족들이 있기에 쉬지 않고 이 길을 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달릴 것이다. 삶이 그렇듯이...
그렇게 바깥레인을 돌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마지막 결승점을 넘어섰다.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난 언제나 꼴찌였다.
그 옛날 아주 궁핍했던 시절에 공책하나 연필 한 자루는 어린 내게 대단한 선물이기도 했겠으나 항상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던 소싯적 가을운동회.
그때는 남들만의 잔치였으나 오늘만은 내가 주연인 듯한 환각 속에 힘차게 함성을 질러본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렇게 달릴 수 있는 육체를 가진 것만으로도 하늘과 부모에 감사하고 행여나 건강한 육체가 나의 자랑인양 뽐내거나 남보다 조금 빠르다는 것이 마치 인생의 기록인양 거만해 하며 으시대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단 1m라도 남이 대신 뛰어 줄 수 없듯이
아무리 우리네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고 멈추면 안되는 것이고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정숙경
218.237.189.20
여러번 섭-3 근처에서 맴돌던 시간대가 안타까웠는데 멋지게 성공하셨습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유지하셨던 그 시간들이 부러울뿐입니다.
07/03/30
일산
222.101.104.247
아마추어에 꿈을 이루셨네요 언젠가함께 주로에서 달렸으면 좋겠네요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즐런하세요 07/03/30
테세우스
150.150.151.212
바람처럼 꿈처럼 어쩌면 구름위를 뛰노는 기분처럼.... 섭3는 노력하는 자에게 신이 내리신 최고의 선물이겠죠. 수고하셨습니다. 07/03/30
Ironwall
211.187.195.19
왜 달려왔는지....앞으로도 왜 달려야 하는지 알게 하는군요. 찡 합니다. 사진이... . 어떤 분인지 궁금하군요..저도 그 또래인데.. 주로에서라도 뵐 수만 있다면 인사라도.. 07/03/30
김종열
58.151.236.209
오랜된장이 깊은맛을내듯이 썹3도 구력앞엔 어쩔수없는 모양입니다..축하드리고 많이부럽습니다...번호표에 붙어있는 이쁜딸사진이 초고였습니다. 07/03/31
멀릴이
59.14.122.171
Good....찡,,,, 07/03/31
박지은
61.255.141.41
누구보다도 바쁜 회사생활에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너무나 열심이신 평촌마라톤클럽 부회장님이십니다. 정말 존경하구요. 이런 분과 가까이서 함께 달리는 달리미로서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07/04/01
이성철
210.96.167.254
글도 썹-3감이군요.... 건달하시길........... 07/04/02
남승우
220.95.164.142
갑장에 종씨라...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은 달리기 실력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필력이 내게는 없는 것 같네요. 클럽에서도 존경받고 달리기도 잘하고.... 많은 것이 부럽네요. sub-3 달성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07/04/02
박노부
59.14.117.45
축하 합니다! 그길고 긴 먼길을 달리며 수없이 교차되는 마음속의 상념들을 상상해 봅니다..! 꼴찌의 발란...... 다시한번 축하합니다.....! 07/04/10
최재학
221.148.7.13
축하 드립니다..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느낌입니다..또 다른 황금돼지가 몰려오는 꿈을 위하여 준비합시다.. 07/04/10
백승성
121.152.69.194
자랑스럽구나 친구야!
덕분에 시작한 마라톤...고맙구나 친구야!
언젠가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우정을 위하여
즐건을 하련다.보스턴 참가를 그리면서...
* 오늘에야 글을 읽고 보내니 미안하기도 하구나ㅎㅎㅎ
0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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