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완주의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십시오. 완주자는 물론 중도포기자,
자원봉사자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No. 90
Read: 7674, Vote: 26, Date: 07/03/16
글 제 목 울보, 지지리 못 난 울보...
참가대회 2007. 3. 4 서울마라톤대회
작 성 자 김영복 (kyb1047@yahoo.co.kr)
카테고리 하프코스
1) 3. 5 월요일 아침

머나 먼 이국 땅에서 눈을 감은 한 병사의 추도식을 보다가 스물일곱의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 생각에 그예 눈물을 흘립니다. 언제부터인가 나이 값도 못하고 시도 때도 못 가리고 부쩍 잦아진 눈물 탓에 여간 곤혹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건만 이틀 연속 눈물 바람입니다.

맞습니다. 어제도 저는 참으로 뜨겁게 울었습니다. 마라톤 장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잘 씌어진 마라톤 완주기에 매번 등장하는 - 그래 이제 어느 정도 진부하고 식상해져버린 - 흔치않은 고난을 극복하거나 이런저런 사연에 담긴 감동 같은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2) 3. 4 일요일 아침

여의나루역, 계단을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입구 한 켠 에서 유독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눈에 띕니다. 제가 기다리고 있던 분들이 분명하건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외진 곳에 서서 담배부터 찾아 물며 괜한 긴장을 눌러봅니다.

그렇게 마음을 겨우 다잡은 후 가까이 가 누구랄 것도 없이 무리를 향해 인사를 드립니다. 당연히 초면이건만 오랜 지기처럼 편하고 따뜻하게 반겨주는 탓에 적지 아니 가라앉은 마음은 그 분들 중 곧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두 분 청춘의 익살과 사랑스런 재롱(?)으로 마침내 완전 혼연해 집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시각장애를 갖고 계신 분들이고 저는 오늘 그 분들 중 한 분의 도우미가 되어 함께 하프를 달리려고 이렇게 만난 것입니다. 대회장으로 이동하면서 제 한 쪽 팔을 잡은 분과 간단한 수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눕니다만 사실 제 신경은 온통 발밑의 고르지 않은 노면으로만 쏠려져 있습니다.

결국 제 과한 조심이 그 분에게 전해졌는지 그냥 편하게 가셔도 된다는 약간의 나무람이 날라 오고 무안함에 머쓱해진 저는 그 때서야 오늘 제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해야 될 일을 제대로 깨닫습니다.

맞습니다. 어디서건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것에 그 분은 이제 충분히 익숙하겠지만 따져보면 그건 상대적으로 좀 더 멀쩡한 육신을 지닌 우리들의 같잖은 오만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어쩜 그게 도리어 더 그 분을 아프게 하는 가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과한 배려와 긴장은 모두 버리고 달리는 도중 혹 나의 서투름으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서로의 불편함마저 그저 널널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자고 괜히 상기된 제 마음을 다집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북새를 떠는 틈에서 그들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복잡하게 준비를 해야 되는 그 이들을 보면서 주최 측에서 작은 부스 하나 정도는 따로 마련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까지 없어지는 건 물론 아닙니다. 그런 건 사실 특별한 배려나 수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준비입니다.

오늘 저와 짝이 된 분은 이제 마흔셋이라니 저보다 딱 열 살 아래입니다. 하프는 아직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고 10 Km 최고 기록이 54 분이나 오늘은 첫 도전이니만큼 2시간 20분 내로 들어오는 것이 목표라고 말은 하는데 언뜻언뜻 좀 더 목표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 말에 묻어나옵니다.

아마 비록 하프라고 해도 첫 도전에서 초반에 과욕을 부리면 후반에 퍼질 수도 있다는 주위의 충고 때문에 마지못해 좀 낮춰 잡은 목표인 듯싶습니다. 일단 15Km까지는 매 키로 6분 40초 정도로 하여 2시간 20분 페이스로 가다가 그 때의 몸 상태를 살펴 좀 더 당길 수 있으면 당겨보자는 말로 그를 살짝 달래봅니다. 그냥 달래보는 게 아니라 그게 오늘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분명 마주 보고 하는 것인데도 서로 동작이 전혀 맞지 않은 어설프고도 어색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그가 준비해 온 끈으로 우리는 드디어 하나가 됩니다. 그 순간 겨우 풀렸던 긴장이 온 몸을 엄습합니다.

이윽고 출발, 달린다기보다는 그냥 인파에 떼밀려가는 것이야 새삼스러울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요령껏 피하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하고 계속 부딪혀야 하는 그 친구 때문에 마음이 영 아닙니다. 한 백여 미터를 넘게 그렇게 시달리고서야 우리도 겨우 오롯이 주로를 확보하여 제대로 달리기 시작입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바람 또한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기온은 완연히 봄인지라 반 타이츠의 저와는 달리 스트레치 긴바지를 입은 그가 조금 걱정이 됩니다. 클럽에 고맙게도 자원봉사 해주시는 감독도 따로 있다고 하던 데 이왕이면 이런 세세한 것까지 좀 챙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기록이 제일 늦은 후미 그룹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천천히 달리는 데도 앞의 계신 분들이 주로를 막는 상황이 자주 연출됩니다. 좌로 우로 알아서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으니 저는 계속 “앞의 분들 죄송합니다. 조금만 비켜주십시오” 하고 양해를 구해야 되고 그러면 대부분 한 쪽으로 비켜서면서 우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그와 내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저마다 힘내라며 격려를 해 줍니다.

고마운 마음에 지나치면서 “감사합니다. 힘 내십시오”라고 일일이 외치다보니 제 입은 내내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게다가 나름대로 애를 쓴다고 써도 자꾸 그와 나의 어깨가 부딪히는 바람에 여간 미안하고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그 역시 그럴 때마다 도리어 저 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그가 편하고 안전하게 달리게 해야 되는 게 제 임무이건만 저의 서투른 인도 때문에 그가 오로지 달리는 데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 제 마음 속은 계속 안절부절입니다.

오히려 그가 날 달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어옵니다. 늘 그렇듯 대충 살아가는 이야기들이고 달리기 이야기 들입니다. 서로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도 물론 빠지지 않습니다.

어릴 때 앓은 병 탓으로 명암만 겨우 구별할 수 있다는 그가 겪어왔을 온갖 신산과 힘겨운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자칫 나의 가벼운 이야기가 그에게는 혹여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알량한 생각 탓에 사실 제 말들은 겉돌기 일쑤입니다. 이 것 역시 다 쓰잘 데 없는 오만이요, 편견일터인 데도 좀체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 관광 안내원이라도 된 양 왼쪽엔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바로 오른 편에는 밤섬이 있다는 식으로 화제를 좀 돌려 봅니다. 고맙게도 그는 어떤 이야기에도 다 화답입니다. 그래서 눈에는 들어오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 온 쉰셋의 추레한 중늙은이와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있는 듯한 마흔셋의 노총각(왠지 속이 상합니다)의 대화는 두런두런 계속 이어집니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고 나니 서로 덜 부딪히는 요령도 자연스레 알게 되고 뒤바람까지 불어주어 달리기도 한결 편해집니다. 페이스도 계획에 맞게 딱 알맞습니다.

비로소 제대로 기꺼워진 마음이 되어 성산대교 밑을 지날 무렵, 그새 한 두 방울씩 듣기 시작하던 비가 진짜 비답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봄 비련만 바람 탓인지 빗방울이 제법 차갑게 느껴집니다. 모자도 안 쓴데다 비에 젖으면 무척이나 무거워질 법한 그의 복장이 또 마음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비의 양이 곧 줄어들고 그 것마저 오락가락 하는 게 참 다행입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 탓인지 급수대를 그냥 지나치자는 그를 설득 조금이나마 입을 축이게끔 합니다. 참가인원이 워낙 많아 그런지 급수대 주변 주로에 버려진 컵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무심코 밟고 지나도 아무 문제가 안 될 그런 가벼운 종이컵 하나도 그에게는 모두 기분 나쁜 장애물들 입니다.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느껴지는 이물감에  잠시라도 놀라는 건 아주 당연합니다.

뭔가 밟혀도 모두 종이컵들이니 걱정 말고 계속 달리라고 안심을 시킵니다만 우리 같은 동호인들은 괜히 엘리트 선수들 흉내 내어 폼 잡으며 종이컵 집어 던지지 말고 옆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넣었으면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게 다 겉멋이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그 시간이 기록에 주는 악영향이 얼마나 될까 하는 계산도 해 봅니다. 기껏 몇 초일뿐일진대... 그렇게 따져보면 참 우리들은 어리석기도 합니다. 아니 반대로 참 약기도 한 게 더 맞습니다.

5 Km를 지나면서부터 그의 말수가 부쩍 줄어듭니다. 저 또한 앞의 분들에게 기계적으로 양해를 구하고 감사함을 표시하고 하는 것 외에는 그저 묵묵히 달리기에 열중합니다. 혼자만의 상념에 한껏 젖어볼 수 있는 이런 시간들이 제게는 달리기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다 부질없을 삶의 소소한 편린으로 꽉 차 있는 머리 속을 모처럼 완전히 비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는 벌써 보였어야 할 거리표시판들이 보이지를 않아 그런 오붓함도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평소 같으면 있거나 없거나 그저 같은 페이스로 계속 달리기만 하면 될 법한 일인데도 페메와 도우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오늘의 제게는 별 게 다 아쉽습니다.

이윽고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고수들이랑 마주치기 시작합니다. 폼만 봐도 경이로운 분들입니다. 저 정도까지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그들이 들인 공과 노력을 생각해보면 멋지다고 아니할 수 없는 그런 분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제 보잘 것 없는 기량에 더욱 절망케 만들기도 하는, 그래 내겐 너무 먼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부러운 마음에 듣거나 말거나 바람처럼 지나가는 그 들에게 열심히 ‘화이팅’을 외쳐줍니다,

점차 마주 쳐 지나가는 분들이 많아지더니 급기야는 반대주로가 꽉 차버리고 그러다보니 이쪽 주로로 넘어서 달려오는 분들도 제법 많아집니다. 모두들 앞 주자를 추월해 가기가 만만치 않게 된 터라 약간의 정체가 이뤄집니다. 속절없이 우리도 아주 조금이지만 속도를 늦춰 보조를 맞춥니다.

드디어 반환점을 돕니다. 1시간 10분, 정체 탓에 마지막에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달려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처음 달려보는 거리인 그 친구가 페이스만 잃지 않는다면 목표시간에 맞춰 들어갈 수 있고 조금만 더 분발한다면 제법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마주치는 주자도 많지 않으니 주로도 한결 한산합니다. 본인도 더 빨리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페이스를 Km 당 6분 정도로 좀 올려 봅니다. 거친 숨소리도 하나 내지 않고 잘도 달립니다.

그렇게 한 4Km 정도를 달리니 급수대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자는 말을 안 합니다. 내색은 안했지만 조금 힘이 들었던 게 분명합니다. 물과 스포츠 음료에 건포도와 초코파이까지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 권하는 걸 하나도 빼놓지 않습니다. 굳이 재촉할 일이 없으니 내친 김에 함께 스트레칭도 해봅니다. 그렇게 느긋하니 한 3분을 보낸 그가 갑자기 마음이라도 바빠졌는지 빨리 출발하자며 채근을 해대는 통에 한번 웃어봅니다.

이제 앞에는 걷는 주자들이 부쩍 많아집니다. 그나마 달리는 이들도 거의 모두 우리보다 속도가 늦습니다. 대부분 초반  페이스 조절을 못한 분들일 터 입니다. 날씨가 궂은 탓인지 평소와는 달리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분들이 거의 없어 반대주로가 대체로 비어 있는 게 우리들에게는 참 고맙습니다.

지나치는 분들을 일일이 큰소리로 호명을 하며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하는 이유는 바로 내 옆에서 이제 가쁜 숨을 내뱉기 시작한 그 친구에게 지금 많은 이들을 추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부심으로 자신감을 가지라는 격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는 발에 절망하며 의지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뒤로부터 점차 가까워지는 발 내딛는 소리는 공포이기도 하고, 내 옆을 추월하며 던지는 격려는 허탈함이기도 해 더 힘이 빠지고 짜증스러울 수도 있으련만 우리에게는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너그럽습니다.

고맙게도 저마다 모두 덕담들입니다. 그간 테니스나 골프 등 많은 운동을 해 왔건만 내가 언제 이리 많은 이들로부터 이렇게 단 한 점 사심 없는 격려와 응원을 받은 적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내 옆의 친구가 정말 고맙게 느껴집니다.

3Km가 남았다는 말을 하자 마치 그간 애써 감추고 있던 힘을 모두 보이기라도 할 량인지 그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집니다. 거의 Km당 5분 페이스입니다. 이젠 애써 말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이들과 충돌을 안 하게끔 이리저리 유도만 하며 그의 페이스에 내 몸을 온건히 맡깁니다.

이제 앞에 보이는 주자는 무조건 추월을 합니다. 초보자인 주제도 모르고 늘 과욕을 하는 탓에 부상을 달고 지내던 제게도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런너즈하이라는 게 다가옵니다. 일찍 들어간 주자들이 지기들을 위해 응원 차 마중 나와 있어 그런지 큰소리로 격려를 해주는 분들이 무척이나 많아 발걸음은 더더욱 가볍습니다.

원효대교를 지나니 연도 양 쪽이 모두 응원하는 달림이들이나 그 가족들로 완전 메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환호와 박수소리도 커집니다. 그의 얼굴도 잔뜩 상기됩니다. 결승 아치가 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100m, 90m ,,,그 친구에게 계속 카운트다운을 해줍니다. 한 30여m가 남았을 때는 그에게 묶이지 않은 한쪽 팔을 자랑스레 들어 올리게 주문을 합니다. 쑥스럽지만 저도 함께 손을 들며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2시간 17분, 마지막 급수대에서의 뜬금없는 유유자적이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내 임무는 거의 완수한 것입니다. 한껏 만족해하면서도 더 잘 달릴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표정을 보이는 그가 새삼 귀엽게 보입니다.  

완주메달을 받아 걸어 주자 곧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이 그를 데리러 나타나고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 ‘수고 많았다’라는, 사연 많은 두 시간여에 비해선 비교적 간단한 인사말만으로 그래서 조금은 뻘쭘하게 헤어집니다.

하기는 그 두 마디에 서로에게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게 담겨 있으니 긴 인사는 모두 허망한 형식일 뿐일 터 입니다. 저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 모교 동문회 텐트로 돌아 와 차가운 바닥에 앉아 담배를 찾아 뭅니다.

작년 말에 뒤늦게 맹학교에 입학하여 이제 초등과정을 배운다며 쑥스럽게 미소를 짓던 그 친구가 참 잘 생겼다는 생각이 새삼스럽습니다.

왠지 가슴이 아려 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눈물이 납니다. 슬픔도, 감동도 그렇다고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값싼 동정도 아닌 이상한 눈물인 데 좀체 멈추지를 못합니다.

3) 3.4 같은 날 오후

저는 풀 코스 골인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마지막 안간 힘을 다하고 있는 주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나이나 생김새가 다 다르듯 표정들이 정말 각양각색입니다. 연신 시계를 보며 씩씩하게 스퍼트를 하는 이가 있는 가하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겨우 달리는 시늉만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허리를 꺽은 채 무심코 걷는 이들도, 힘겨워 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라도 할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정말 억지로 발을 옮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동문 선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잠깐 동안의 동반주를 하기 위해 나와 있는 것도 잊고 저는 그들에게 그만 푹 빠져 버립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여보, 여보’를 외쳐대는 내 옆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 친 한 주자의 눈에서 눈물이 솟는 것을 봅니다. 미소는 따뜻하고 자랑스럽지만 분명 눈물입니다. 주로로 달려 든 아주머니는 이제 아예 눈물바람이고 그 사람은 그런 그 녀를 포근히 안아 줍니다. 그리고는 이제와는 아주 다른 의연한 모습으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또 한 주자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제 늦둥이 딸년 정도나 되어 보이는 남자 녀석이 큰소리로 ‘아빠’를 외쳐 댑니다. 그 녀석의 표정이 반가움과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찹니다. 자랑해도 좋을 만큼 잘 생긴 젊은이 입니다. 아들의 부산함과는 달리 다소곳이 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는 여자가 참으로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런 가족을 향해 한마디 할 힘조차 없는지 가지런한 이빨이 들어나는 보기 좋은 미소만 지어보이며 그 친구도 총총히 결승점으로 달려갑니다.

같은 동호회 소속인 듯 깃발을 둔 무리의 구령과 환호 속에 몸집이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엉엉 울며 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엉엉 울고 있는 것 맞습니다. 그 녀의 등에 가볍게 손을 올려놓고  계속 ‘다 왔어, 다 왔어’ 하며 함께 달리는 이는 분명 남편인 듯 합니다. 그이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울컥 목이 메어옵니다. 그 녀의 고통을, 그 이의 안쓰러움을 너무도 잘 알기에 저는 또 대책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 들의 가족 간 사랑이, 동호회원 간 우정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준 마라톤이라는 운동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기만 하는, 물정모르는 제게는 참으로 도리 없는 주책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 형극의 길을 택하고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그 고통을 극복해 내려고 애쓰는 이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고귀함으로 까지 보이는 제게는 참으로 속절없는 주책입니다.


4) 뱀 다리

같이 영화를 보다가도 별 것도 아닌 장면에서 주루룩 눈물을 흘려대는 늙은 남편이 얼마나 징그럽게 보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이제 그만 좀 울어야 합니다만 솔직히 첫 풀에 도전하는 이번 동마 때는 제한시간 내 완주의 기쁨으로 한번 정도는 더 울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 꼭 울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4 여의도에서 함께 달려 준 이 주상 아우님께 그날 고마웠다는 말씀, 학교 공부 재미있게 하시라는 말씀 전합니다.(福).  




이창호
221.150.110.252
저도 오십대 초반이지만 대단한감동을 느낍니다.
자기자신도 추스르기 힘든나이인데 .. 당신의 두눈으로 네개의 다리가 교차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앞에 진로확보자없이 그리 뛰셨군요.
그리고 그리늦지않게 완주. 완주후 끈을통해 느껴지셨을 고마움과 수고. 짧은인사.
맞습니다. 무슨긴말이 필요한가요..
그후. 풀코스주자가 출격후 복귀하는모습. 지옥도. 맨몸으로 자연속에 느껴지는 인간애.. 눈물속에 2번 읽었읍니다. 건강하십시요.
07/03/16
긴골아이
210.118.133.65
동마에 참석하는 울산의 독립군입니다.
올림픽주경기장 결승점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는 님을
뵙고 싶습니다. 즐런 하십시요!
07/03/16
요산
219.248.129.14
눈물이 흐르네요. 그리고 내일 동아 뛰는 제 마음에 벌써 벅찬 감동이 샘솟네요.
김영복님의 행복한 감정에 감동이 됩니다. 좋은 분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7/03/17
김영훈
220.124.74.251
글 읽는 동안 눈물이 핑 도네요.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도 쉽지 않은데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시는 김영복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내일 동마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달리시길 기원합니다.
내일 주로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좋은 글 감동받고 잘 읽고 갑니다.
07/03/17
백두
61.72.207.79
잘 읽었습니다.
동마때 완주 하시고 다시 후기올려주시면
감동으로 다시 보겟습니다.
07/03/17
홍현성(용달사모)
221.148.163.246
영복동문 !
마라톤 대회때마다 꺼내 보고 싶은 감동스러운 글 잘 읽었네. 동마 때 또 한번 뜨거운 눈물을 느껴보세나......
07/03/17
행복
58.235.186.77
마라톤을 눈물로 표현하시는 영복님
봉사하시고 동마에서도 눈물을 만끽하시길....
07/03/17
덕처리
58.120.174.108
1편 수필 잘보고 갑니다. 글만 보아도 준비는 완벽하게 느껴집니다. 즐달하시고
2편 수필도 반드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영복님 화이팅!!!
07/03/17
김춘옥
211.252.104.91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있는 저도 두 분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숨과 날숨을 같이 쉬면서 함께 뛰고 있는 것 같은....그런 느낌이 듭니다. 아름다운 그림이었구요, 가만히 앉아서 감탄만 하고 있는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김영복님.... 건강하시고 행복한 마라토너 되시기 빕니다. 07/03/19
김영아
211.210.107.62
보잘것없는 가벼운 모습이기에, 감히 값싼 동정도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마라톤이라는..부족함에서 배울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을 잊지않겠습니다.
김선생님의 귀한마음에, 제 마음도 보탤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조차, 같잖은 오만이 아닐까....조심스럽게 반성해 보면서...

07/03/21
김용휘
210.223.114.4
영복님, 본 글을 처음 읽고 감동받아 혹시나 싶어 지난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올초 처음 마라톤에 입문하고 불과 2여달사이에 동반주봉사자로 나섰더구만요. 필력도 대단하시지만 삶과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정말 부럽습니다. 영복님의 나이에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한10년 노력해 볼랍니다. 0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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