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완주의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십시오. 완주자는 물론 중도포기자,
자원봉사자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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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25,
Date: 0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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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눙침이 밉지를 않다.
그래 ! 우습겠지, 하긴 내가 봐도 좀 그러니까 우습긴 할꺼야. 다 늙은 여자가 커다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달리는 것인지, 제 자리 걸음을 하는 것인지 애를 쓰는 꼴까지 안 우습다면 그야말로 너무 팍팍해서 이 척박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누?
꽉 끼는 타이츠까지 입어 뭇 사람들의 시선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숨도 찬데다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나보다도 더 못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 달리는 것보다 그들을 헤쳐 나가는 게 더욱 어려울 정도여서 무척이나 힘겹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법, 아니 틀림없이 행복하다.
최악의 황사라지만, 사람들이 치어 제대로 달리지 못하지만, 그게 다 뭐 그리 대수랴 ?
어쨌든 지금 분명 내 발로 이렇게 달리고 있고 무엇보다도 바로 옆엔 어떻게든 내가 편하게 달리게 하기 위한 노심초사 탓에 차가운 강바람과는 어울리지 않게 코끝에 땀방울까지 달고 있는 ‘내 남편’이 있는데...
꽤 가빠진 숨을 내쉬며 연신 ‘다 왔어’를 외쳐대는 그를 쳐다본다.
아직 반도 안 왔는데 왠 ‘다 왔어’ 타령이람 !'
슬슬 이는 장난기에 짐짓 투정을 부려본다.
“다 오긴 뭘 다 왔어 ? 아직 반도 못 왔구만”
“으응, 반환점 다 왔다구, 조금만 힘 내”
능청 떨긴... 하지만 그 눙침이 절대 밉지 않다.
그래도 나 같지 않게 숨이 고른 것을 보면 이제 제법 내공이 쌓인 것 같기는 하다. 하기는 이미 풀코스까지 뛰어 본 터이니 이런 속도에 숨이 가빠질리 없겠지. 그러고 보면 제법 기특하고 갸륵하기도 하다.
2. 내 마음도 적잖이 미안하다.
지난 해 11월이든가 ? 늘 술, 담배에 찌들어 살던 인간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느닷없이 마라톤을 한다고 했을 떄 난 사실 그저 심드렁하기만 했었다.
툭하면 이 일 저 일 벌리길 좋아하면서도 얼마가지 못하고 곧 시들해져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부리기 일쑤인 그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 힘들다는 마라톤을 한다고 했으니 난 그저 저 바람이 또 얼마나 갈까 ?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또 이 것 저 것 막 사 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간께나 찌푸렸었다.
아니나 다를까 ? 그냥 집에 널려있는 신발이나 옷으로 대충 달리면 될 텐데 뭔 놈의 신발은 그렇게 비싸고 장만해야 할 것은 뭐 그리도 많은지, 하여튼 카드께나 긁어대는 통에 애꿎은 나만 또 그만큼 속께나 긁어야 했다.
또 아프다는 소리는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파김치가 되어 들어 온 내게 천연덕스럽게 그 소리를 해댈 때는 잔뜩 밉살스럽다가도 혼자 끙끙대며 물집 터트리고 발톱 빼내고 하는 건 아무래도 안쓰러워 이번에는 지 스스로 나자빠지는 걸 기다리지 않고 몇 번이나 조심스레 그만 둘 것을 권했건만 풀 완주 한번은 꼭 해 보겠다나, 어쨋다나...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맘대로 해보셔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말이면 매번 엄동설한 새벽에 식구들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집을 조심스레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좀 더 일찍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조차 챙겨주지 못하는 게 조금씩 미안해지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분명 풀인지 뭔지 진득하니 뭔가 끝장을 볼 것 같은 생각에 차츰 나도 진정으로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하기는 응원이라 봤자 잔소리 안하는 것밖에 하는 일도 없으니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실 문제는 엉뚱한 것에서 시작됐다.
얼마 안 있으니 하프인지 뭔지 무슨 대회를 나간다고 하면서 그예 나와 막내딸까지 같이 갈 것을 요구하고 나온 것이었다.
아니 달리려면 자기 혼자 가서 잘 달리고 오면 되는 것이지 우리는 왜 끌어당기는데 ?
난 일요일이면 밀렸던 잠도 자야 되고 막내는 교회도 가야하는 데 도대체 거길 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인데 ?
자기 달리고 있는 동안에 이 추운 날 그 허허벌판에서 우리는 뭐하고 있으라고 ?
하지만 우리가 같이 가야 힘이 날 것 같다고 막무가내로 우겨대는 데 싫다고 하면 그 성격에 분명 또 삐질텐데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2월초, 여의도 칼바람 속에서 콧물을 연신 훔쳐대는 딸내미와 덜덜 떨며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오는 데 이 인간은 도통 나타나질 않으니 혹 무리하다 다친 것이나 아닐까 ? 하는 걱정에 괜히 분주히 오가는 앰블런스도 쳐다보게 되고 여하튼 따라온 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
그래도 먼발치에서 헐떡이며 달려오는 그를 발견했을 때는 밉살맞은 그가 왜 그리 잘나 보이던지 그런 웃기는 변덕이 영 쑥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아빠 들어오셨다고 마냥 좋아하는 딸과 그런 우리를 보고서는 눈물까지 맺는 그를 번갈아 보고 있자니 정말 그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내고 온 양 내 마음도 약간의 감동까지 먹고 그만 짠해져버려 그 때부터 우리는 누가 쳐다보건 말건 그가 받은 기념메달을 돌려가며 목에 걸고 요란하게 사진을 찍고 나눠주는 막걸리로 건배를 하는 등 온 식구가 한마디로 오버께나 하고 집엘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번 다시는 안 오겠다는 마음까지 버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인간이 무슨 재미를 붙였는지 동아마라톤에서의 첫 풀 도전 연습차라 뭐라나 하며 거의 매주(난 정말 마라톤 대회라는 게 그렇게 많은 줄 꿈에도 몰랐었다) 이런저런 대회를 나가면서 지난번에 우리 생고생을 아는지라 차마 말은 못하지만 같이 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끝까지 모르쇠하며 딴청으로 일관하면 늘 입맛을 쩍쩍 다시며 혼자서 갔다가 오니 사실 내 마음도 영 불편하고 미안했다.
3. 어디쯤 가고 있을까 ?
드디어 그가 그토록 열망하고 또 염원하던 첫 풀코스 도전의 날인 동아마라톤대회 날이 다가왔다.
진급시험 전날에도 잘만 자던 그가 며칠 전부터는 부쩍 말수가 줄고 긴장으로 잠까지 설쳐대는 걸, 그리고 생전 먹는 것을 탐하는 이들을 경멸해마지 않던 그가 나 몰래 이 것 저 것 챙겨먹는 걸, 주말이면 늘 어울려 다니던 테니스 회원들과의 그 좋아하는 술자리까지 마다하는 걸 보게 되면서 나는 그저 그가 원하는 목표를 꼭 달성하기를 그래서 그가 낙담으로 소주회사 배께나 불리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대회 날 아침, 이번만은 꼭 옆에서 좀 챙겨주고 성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같이 갈까 하고 물었지만 그는 어느새 담담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심으로는 여전히, 그리고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뛰고 와, 무리하지 말고...”
“무리는 뭘, 뛰다 안 되면 마는 거지”
“하여튼 조심해” 그는 묵묵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생전 처음 TV로 끝까지 마라톤 중계를 보았다.
장하디 장한 이봉주 선수. 나이도 있는데 정말 자기관리 잘하고 노력하는. 그래 누구에게도 귀감이 되는 사람이라고 그가 늘 칭찬을 달고 있던 그 이봉주 선수여서 그런지 우승하는 모습이 더욱 새로웠다. 또 기뻤다.
하지만 사실 내 눈길은 언뜻언뜻 가끔씩 비추어주는 일반 참가자들에게 더 많이 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라톤 중계를 본다는 막내 녀석 역시 말은 안하지만 분명 아빠를 찾고 있었다.
그 먼 길을 잘 달리고나 있을까 ?
너 댓 시간을 넘게 저렇게 달려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쯤 그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수술한 무릎에 탈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공부나 하라며 애꿎은 딸만 들볶았다.
다섯 시간이 훨씬 넘었건만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며 진즉에 잠실운동장으로 달려가지 않은 자신을 나무라고 있던 차,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반색을 애써 숨기고 조심스레 결과를 묻자 완주는 했다며 학교 동문들이랑 술 한 잔 하고 들어오겠다는 간단한 통보만으로 할 말 많은 대화가 허망하게 끊긴다.
‘완주했다’가 아니고 “완주는 했다‘라니... 접미사 하나에서 그의 가라앉은 마음이 읽혀져 마음이 개운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일단 무사히 끝낸 것은 확인된 셈이니 마음을 추슬러본다.
그날 저녁, 술에 떡이 되 들어 온 그는 ‘후반에 걷다 뛰다 해 창피하게 4시간 40분에 겨우 들어 왔다, 정말 오기도 없고 정신력도 썩어빠진 놈’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마구 화를 내고 나는 ’그래도 제한시간 내에는 들어왔네, 처음에 그 정도면 잘 뛴 것 아닌가? ‘ 하며 나름대로 위로를 했지만 그는 좀체 분을 삭이지 못하며 씩씩거리기만 했다.
다음날, 하루 새 부쩍 수척해진 것 같은 모습의 그는, 여전히 끝까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걸은 자신을 계속 나무라고 또 창피해서 앞으로는 모임도 못나가겠다고 연신 투덜거리면서도 그래도 한층 차분해져 ‘결국 모든 건 연습부족이었어’ 하며 난데없이 ‘어쨋든 일단 완주는 했으니까 이제 막 바로 세 번째 목표로 간다’며 엉뚱한 포부를 밝혔다.
4. 고생문이 열리다.
그랬다. 내 고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 번째 목표가 뭔데?”
“으응, 자기랑 함께 풀코스 완주하는 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아직은 침착하다.
“근데 왜 두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로 간다는 건데 ?”
“응, 두 번째 목표는 서브 4하는 거였는데 어제 내 꼴 보니 그건 당분간 바라기 힘들 것 같고 해서 우선 세 번째부터 시작해 나가면서 두 번째는 가을에나 바라보려고 말이야”
두 번째고 세 번 째고 간에 일단 어이가 뺨을 때리니 이거야 원...
“근데 왜 나랑 같이 해야 하는데 ?”
“자기가 어저께 못 봐서 그렇지, 잠실운동장 들어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이 전부 다 나와서 울고불고 하는데 나는 혼자 들어가려니까 영 속 상하더라구, 그리고 모임 나가면서 보니까 부부가 같이 달리니까 보기도 좋고 해서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마라톤을 어떻게 한다고 그래 ?”
“자기가 왜 못 해 ? 자기보다 키도 작고 뚱뚱한 여자들도 하는데...걱정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돼”
“되긴 뭐가 돼? 난 못하니까 자기나 열심히 하던지 말던 지 해”
하지만 며칠 후 일요일, 난 집 부근 호수공원의 조깅로를 따라 그의 옆에서 달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 걷는 것만도 못해 보이는 사람들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으니 분명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리는 것일 터임에도 채 얼마 달리지도 않아 이러다가 진짜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고 입에서는 단내가 마구 풍겨 나왔음에도 ‘그것 봐. 내가 자기 원래 소질 있다고 했잖아, 잘 뛰네 정말 대단해’ 하며 연신 설레발을 쳐대는 그 때문에 결국 한 바퀴를 다 돌았으니 그의 설명대로 5Km를 뛴 것은 틀림없었다.
5Km라니 ! 49년을 살면서 가장 멀리 달려 본 거리였다.
그에겐 나 죽겠다며 다시는 이 짓 못하겠다고 했지만 내심으로는 내 자신이 제법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아니 나아가 그의 말대로 정말 내게 마라톤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웃기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그의 감언이설이 상당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 때 그로부터 결정타가 날라 왔다.
“생각해 봐, 윤빈이 체육대회 날 자기가 엄마들에서 1등 해 봐, 걔가 얼마나 좋아 하겠어 ?”
이제 겨우 4학년인 막내 딸, 주책없게 나이 마흔에 낳은 늦둥이,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늙은 엄마를 둔, 그래 결코 내색은 하지 않지만 좀 더 젊고 세련된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녀석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내 가슴은 요동을 쳤으니 역시 그는 교활했다.
“봐. 윤빈이 체육대회 날 부모들 단축마라톤 있지 ? 그 때 우리 둘 다 나가서 나는 남자 1등, 자기는 여자 1등 하는 거야. 그럼 걔가 얼마나 자랑스럽겠냐고, 어때, 내 말 맞지?”
“그깟 달리기 1등 한다고 자랑스럽긴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래?”
‘맞고 말구, 남들은 늦둥이라 얼마나 예쁘겠냐고들 하지만 기실 둘 다 직장생활 하느라 제대로 한 번 챙겨주지도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그래. 한 번 해보지 뭘’
대답과는 달리 그 앞에서는 늘 멍청해지는 나답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약점을 찔러 댄 그의 술수에 그만 맥없이 넘어 간 나는 그 이후 시간이 나면 그와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래봤자 오늘까지 총 서너 번이고 그 것도 5Km 남짓이 고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왕에 하는 것이라면 재미있게 그리고 악착같이 열심히 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기는 했다.
5. 역사 위에 서다.
그리고 오늘 비록 10 Km이기는 하지만 드디어 처음으로 공식대회를 나온 것이다.
뿌연 황사가 노오란 안개같이 휘감고 있는 잠실종합운동장의 트랙 위, 수많은 달림이들 속에서 출발 대기를 하면서 난 그가 오늘 집 부근에서도 달리기대회가 열리는 데 왜 굳이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이곳까지 나를 데리고 왔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랬다. 그는 올림픽까지 열렸던 이 역사적 조형물을 내 발로 직접 밟게 해줌으로써 난생 처음으로 공식 달리기 대회를 참가하는 내 마음 속에 자부심 같은 것을 심어주어 결과적으로 달리기라는 운동에 한층 매료되게끔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이었다.
물론 효과는 만점이었다. 서울올림픽 때를 비롯해 그간 요인들 경호를 한답시고 몇 번 이곳에 와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당히 한 사람의 주역으로서 직접 그 운동장에 서서 웅장한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마냥 벅 차 오르기는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달리기 대회도 입담 좋은 연예인을 동원 사회를 보게 하는 게 참 신기했지만 그래도 배 뭔가 하는 그의 너스레가 분위기를 한층 띄우고 있고 풍선에, 폭죽까지...나도 모르게 그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갔다.
풀, 하프에 이어 드디어 우리도 그의 제의에 따라 뜬금없는 요란한 하이파이브와 함께 나란히 서서 출발을 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왠 오버람 ! 똑같은 복장을 한 두 중늙은이의 이런 행각이 남들에겐 분명 닭살로 비쳐질 것이건만 하기는 뭐 그리 괘의할 필요가 있으랴 ?
6. 좁은 길을 달리다.
그러나 한껏 상기된 마음과는 달리 달리기는 그리 상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한강변의 주로가 워낙 좁은데다 출발한 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좁은 길을 온통 차지하고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며 걷는 이들이 너무 많아 그들을 헤쳐 나가기가 얼마나 힘겹든지 저렇게 처음부터 걸을 것이면 뭣 하러 달리기 대회를 나왔는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주최를 한 그 기업의 사원들이 회사에서 하는 대회니까 마지못해 나와 그렇게 된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 같은 완전 초보자도 이렇게 헤쳐 나가는 게 불편할 정도라면 진짜 잘 달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을 하니 주최 측의 무신경이 아주 거슬려왔다.
그나마 이리 저리 내가 뛸 공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앞 사람들에게 계속 양해를 구하며 애를 쓰는 남편이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마 나 혼자였음 분명 태반을 그들과 같이 걸을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으니 설령 아무리 다른 준비를 잘했다 할지라도 대회 운영 면으로는 거의 낙제점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내게 제시한 것은 첫 대회이니 Km 당 6분30초의 페이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로, 즐기면서 아주 편하게 달리자는 것이었건만 들쭉날쭉 달리다 보니 얼마나 더 힘이 들던지 달리는 내내 즐기기는커녕 그저 이 고생이 언제 끝날까만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쨋거나 내가, 바로 내가 언감생심 공식대회를 나와 그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행복한 충만감과 처음 달려보는 거리에다 더해서 잃어버린 페이스 때문에 더욱 커진 고통 사이를 오가는 새, 어느덧 우리의 동행도 끝물로 접어들어 속칭 토끼굴을 지나고 운동장 입구 큰 길로 접어서니 도로통제를 위해 서있는 경찰관 중에 후배 여경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일요일인데도 출근을 하여 짙은 황사 속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그 녀를 보고 있자니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왠지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하여튼 쓸데없는 눈치 하나는 빨라서 그런 내 기분이 느껴졌는지 그에게서 또 엉뚱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저기 남편 잘 못 만나 고생하는 여자 또 한 명 있네”
요새 유독 일이 잘 안 풀리면서 부쩍 가지게 된 열등감과 내게 미안해하는 마음에서 나온 복잡한 심경의 농담 아닌 농담인지 아는지라 딴 청으로 흘린다는 게 난 그만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만다.
“그 놈의 경기장은 바로 코앞에 있던 것 같던 데 왜 이렇게 먼 거야 ?”
“멀긴 뭘 멀어, 지금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나는 듯(순전 내 생각으로) 벽돌 빛 트랙 위를 달린다. 그리고 그의 주문대로 촌스럽게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결승선을 통과한다. 워낙 힘이 들고 숨이 차서 그런가 생각보다는 별 감흥이 없다.
쭈그려 앉아 내 신발 끈을 풀어주며 ‘목표시간에 딱 맞춰 들어왔다’ ‘자기 정말 대단하다’ ‘다음 달엔 하프 나가자’며 또 속없이 호들갑을 떠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얼굴을 이렇게 유심히 쳐다본 것도 한참이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까무잡잡한 얼굴이었는데 달리기를 한답시고 햇볕에 더 타서 그런지 새삼 나이가 들어 보인다.
또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칩을 반납하려 보조경기장을 향하면서 괜히 발을 더 절뚝거리며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의 팔짱을 낀다.
이 사람은 아마 내가 힘이 들어서 그런가 했으리라 ! 하기는 힘도 들긴 들었지.
7. 또 어디쯤 가고 있을까 ?
당직도 없고 비상근무도 아니어서 모처럼 널널한 일요일 아침, 햇살도 예쁘고 아파트 단지 안이 온통 봄 꽃 천지이니 애랑 같이 하다못해 진달래가 진짜 예쁘다는 뒷산이라도 갔으면 싶었지만 이 인간은 오늘도 꼭두새벽에 삼베바지에 헛 방구 새 듯 사라져 버렸다.
4.29 MBC 대회인가에서 반드시 자기 스스로에게 용서가 되고 납득이 가는 기록을 내겠다, 절대 걷지 않겠다며 장담과 다짐을 하곤 했으니 분명 어디에선가 숨을 헉헉대며 달리고 있을 터, 나는 탁자 위에 놓여진 빈 커피 잔이 영 미안하다.
뭔가 해 멕이긴 해야 할 텐데...
그나저나 지금은 또 어디쯤 가고 있을까 ?(朱)
* 2007 LIG 코리아오픈 마라톤대회 10Km 부문
유 경주 배번 12914, 기록 1시간 05분 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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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221.157.2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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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눈물을 찔끔거리게 만드시다니... 슬픈이야기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나이도 저랑 비슷한 분들 같고, 남편분은 몇년전의 저를 보는 듯 하여 공감이 되어 그런듯 합니다. 글을 어쩌면 이렇게 맛깔나게 잘 쓰시는지 부럽습니다. 약간 무서운 경찰 아주머니께서요. 근처에 사신다면 같이 달리고 싶습니다. 부군의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건주 하세요.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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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124.0.2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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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천사입니다.
당신 때문에 웃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때론
진심어린 감동으로 가슴뭉쿨하게하기도 하겠군요
오래
아주 오래 부부가 같이즐러운 달리기를 하여 더욱
행복한 가정을 꾸리시길 빕니다.
당신 남편은 참 복 많은 분입니다.
부럽습니다.
행복 하세요~``~.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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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218.152.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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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선배의 연륜이신데 정말 부럽습니다. 글 하나에 두분의 완주기를 읽은 기분이구요. 앞으로 계속 화이팅하셔서 꼭 풀코스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힘!!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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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211.34.1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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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보니, 처음 달리기(마라톤)를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달리기를 그것도 45이 되어 고도비만으로 각종 성인병의 초기증세가 나타나, 막다른 길에 선택한 달리기가 만 5년이 되어갑니다. 달리기 다음해 5km대회 부터 시작해 풀코스까지 뛰었고, 올해 풀코스 개인기록을 갱신했고, 100km가 넘는 써바이벌 울트라도 2번 완주했습니다.
집사람도 제가 훈련한지 1년뒤에 따라 달리기를 시작해 풀코스를 8번이나 완주를 했지만 제한시간에 겨우 맞춰 들어옵니다. 그래도 풀코스를 뛰고나면, 몸은 힘들지만 완주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에 활력을 얻는다고 합니다.
자주 주로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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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미
220.86.21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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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읍니다' 님과같이저도 마눌과같이 달리고 싶어 간청해보았건만
쇠귀에 경일기였읍니다
님이 부럽고 남편이 부럽읍니다
항상 즐런하십시요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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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달이
152.99.8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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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년 전부터 안사람과 비록 10km지만 같이 동참해준 것이 큰 힘이 됩니다.
주로에서 뛰다 만나는 사람들중 간혹 여경들이 있던데 늘 즐런하시길......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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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59.2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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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 만큼이나 달리기 실력도 대단해 지리라 믿습니다.
세심한 감정까지 들추어 주신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5키로는 마누라와 자식들 다 뛰어 봤고, 많은 마라톤대회에 데리고도 갔습니다만
마누라랑 같이 달리는 날을 언젠가는 만들어 볼겁니다. 10키로 만이라도.. |
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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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210.95.196.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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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문학적 소질이 있으시거나 공부를 하신것 같군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토리가 보통이 아니신것 같습니다. 정말 저도 와이프와 나란히 달리고 싶습니다. 저는 첫 풀을 완주했고 와이프는 1년동안 5키로를 걷고 있습니다. 지독한 옹고집이죠 ㅋㅋ 그렇게 걷는것도 힘들 텐데. 님의 신랑처럼 저는 와이프를 잘 설득하지 못하나 봅니다. 어떻게 결혼할때는 잘 꼬셨는데 요즘은 말발이 안먹힙니다. 날씬하고 다리도 길고 잘 뛸것 같은데 도무지 요지부동이군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 |
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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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203.247.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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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 이야기 감동 그 자체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행복을 조금씩 느끼고 있는 하프 주자(2시간22분)입니다.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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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222.238.2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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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이구나... |
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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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현
211.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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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의 마라토너가 처음 도전한 기록치고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소질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꼬옥 풀코스 동반완주 하시기를 바랍니다. |
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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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달려
220.124.6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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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하나로 여러사람에게 감동을 줄수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일반사람들에겐 상상이 안되겠지만 아무튼 님의 글 잘 읽었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두분 건강하시고 즐런 하시길 바랍니다. |
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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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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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읽었습니다 **^ 부럽네요 ~~ 두 분이 정답게 달리셨을 그 모습이요
늘 즐겁게 달리시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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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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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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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하도 좋아 읽고난 다음 얼른 마라톤 사진에서 두분의 역주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구수하게 써내려간 글뫼 보다 훨씬 미남 미녀이시더군요..ㅎㅎ
앞으로도 오래동안 함께 즐거운 달리기 나누시길 바랍니다.... |
0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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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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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게 읽고 감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같이 풀코스 동반완주 하는 즐거움을 누리시길 빕니다~~^^ |
0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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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질주
211.171.2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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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습니다.
더욱 더 분발하셔서 아무쪼록 건강하게
동반주가 되길 바랍니다. |
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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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
122.36.1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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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역시 경험 보다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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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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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120.142.18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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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후배)의 부인의 글. 반갑고, 잘 읽었습니다. 남편처럼 글 솜씨 훌륭합니다. |
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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