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깨어 다시 잠 이루지 못할 때 콤터 켜는 일 이제 무심한 버릇이 되었네...
타임 킬링으로는 그만이라 하겠지만 이것도 일종의 중독일시 분명하니 좀 찜찜하기도
하다 . 대개 신문 잡지 뒤적이기와 마찬가지로 중구난방 흥미거리를 쫓다 보면
뚜렷이 남는 것도 없이 두어시간이 후딱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책이
한수위가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비교적 독자의 흥미 보다는 저자의 소신 위주로
문제를 제기하고 집중적으로 꾸준히 다뤄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아니한가?
여섯시에 화들짝 자리 털고 일어나 어제 저녁 사둔 찹쌀떡 반인분쯤 잘 씹어 삼켜
둔다. 물론 제대로 차려먹는 식사엔 못 미치겠지만 간편식으론 쓸만 하지 않은가?
몇번 먹어 보니 근기 뿐만 아니라 속이 편하단 점에서도 내겐 유리한 거 같다...
지하철 강남역에서 부터 많은 달림이들이 눈에 밟힌다. 풀코스, 10킬로를 합하여 2만
여명이나 참가한다고 하니,과연...겨울과 다름없는 새벽 추운 날씨에도 잠실 종합운동
장을 온통 북새통으로 만드는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도 짐 맡기는 곳 등 운영이 깔끔
하니 믿음이 간다.찬 공기에도 피부 적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선뜻 옷을 벗는데
댄싱 걸들을 따라 열심히 율동하다보니 견딜만하다. 학생 체육관 출발지로 이동해 사
회자의 지시대로 함성도 지르는데 마라톤에 문외한인듯 조심스러운 멘트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와 닿기도 한다. 드디어 출발...몸이 가볍지 않아 약간 당황스럽지만
내 페이스를 지키고자 수많은 추월들을 방관하며 달린다. 5킬로 넘어 천호역에서 우회
전, 길동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 10킬로에 53분...수서 인터체인지에서 좌회전하고
직선도로를 달려 가는 중에 17킬로 넘어 선두주자들이 25킬로에서 반환해 돌아오는데
거의 전부 흑인 선수들이라 대열중에 <우리 선수는 하나도 없네...> 나지막한 탄식이
일어난다. 20킬로에 1시간 46분...아직까지는 페이스에 흔들림없이 달려 온 셈이다.
20킬로를 지나니 돌아오는 선행 주자들이 한없이 쏟아지며 전의를 자극하는데 뛰쳐
나갈 힘이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이다. 중간에 누군가 불어주는 섹소폰 소리 구성지니
그만은 위로이고 반환점을 돌고 나니 벌써 피로가 느껴져 아차...? 하며 30킬로까지
약간 암울한 기분이 된다. 2시간 42분...문득 4시간안에 들어 갈 수 있으면 되었지
뭔 욕심을 더 부리고 있는 겐가? 페이스를 늦추니 거꾸로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는지
더 달리련 욕구가 생겨, 이거 속에 청개구리라도 댓 마리 들었나? 실소하게 된다.
이때부터 한두 달림이를 젖히기 시작하는데 재미를 붙인다. 35킬로에서 처음으로 물
한 모금 하고... 대개 마지막 10킬로에 10분쯤 까먹을 셈으로 달리는데 그렇지 않은 경
우도 있는 모양인가? 즐기는 레이스가 된다. 40킬로에서 결승점까지 막판 스퍼트...
응원 나오셔서 운동장 초입께에서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K형님께 손 흔들어 주고
접어드는데 페이스가 줄잖고 계속되니 자신도 약간 의아스럽다.힘차게 골인...3시간
48분 32초...그 후 많은 분들과 인사 나누는데 만족한 입이 자꾸 벌어지려 한다..
에고 이 경박한 버르장머리...하면서도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개인최고기록(3시간
28분)에도 다시 한번 다가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노욕으로 마음이 부풀기 때문이다.
뭐 한발 한발 못 이룰 바도 아니지...60대에 썹 쓰리하시는 분도 있지 않은가...? (89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