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몸매의 갈색 피부. 약간 아래쪽을 향한 시선. 구도자처럼 변하지 않는 엄한 표정. 담담하게 달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20km 부근부터 독주 태세에 들어가 그대로 골 테이프를 끊었다. 로마 올림픽에 이은 2연패 달성. 하지만 상상을 넘는 충격은 골인 후에 일어났다. 그대로 20m가량 달려 필드에 들어선 아베베는 잔디 위에서 템포 있게 정리 체조(워밍다운)를 시작했다. 앞으로 구부려 양팔을 돌리고 잔디 위에 누워 두 다리를 빙빙 돌렸다. 기분 좋은 듯 온몸을 푸는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42.195km를 주파하면 소모돼 기진맥진할 것이라는 믿음을 깨뜨렸다. 당시 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처음 만난 세계라는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 후 얼마간 일본 아이들은 학교에서 도쿄 올림픽 놀이를 즐기며 영웅들의 흉내를 겨루었다고 한다. 아베베라고 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양손을 들어 골 테이프를 끊은 후 곧 바로 담담하게 정리 체조하는 일련의 동작이 정석이었다.
모국과 로마 올림픽의 인연
세계가 아베베에게 충격을 받은 첫 번째는 4년 전 60년 로마 올림픽이었다.
아베베는 32년 8월 7일 에티오피아의 자트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이날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이 열리고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열강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며 아프리카에서 독립을 지켜낸 유일한 나라였다. 그러나 아베베가 태어난 3년 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했다. 무솔리니의 명을 받은 군대가 독가스를 뿌려 어린 아베벨라 마을 사람들을 더욱 외딴 땅으로 몰아넣었다. 아베베에게 로마는 연고지였다.
이전까지 마라톤은 대회 중반에 있었다. 그런데 로마 올림픽에서는 마지막 날로 설정돼 마라톤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연출로 바뀌었다.
우승후보의 필두는 소련의 세르게이 포포프. 58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의 기록 2시간15분17초는 공전의 세계기록이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라이벌은 모로코의 라디 벤 압데셀람. 그동안 프랑스 대표로 뛰었던 라디가 조국 독립에 따라 처음으로 모로코 국기를 가슴에 품은 올림픽이었다.
각국 기자들이 상위 20위 정도까지 예상했지만 그 중 아베베의 이름은 없었다.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의 친위대 병사였던 아베베는 최종 선발회에서 2시간 21분 23초의 기록을 세웠다. 포포프에는 못 미치지만 충분히 주목할 만한 기록이지만 서방 기자들은 스톱워치가 고장난 것이라며 아베베를 인정하지 않았다.
발바닥에 놀람
레이스를 앞두고 아베베가 직면한 문제는 신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2011년 출간된 [아베베 비킬라 - 맨발의 철학자]의 영광과 비극의 생애에 아베베의 딸 차가의 술회가 나온다.
"가져온 슈즈를 전부 신었기 때문에, 발에 맞는 신발을 찾으러 아버지는 쇼핑하러 나갔다. 발에 적응시키려고 레이스 며칠 전부터 신었는데 아버지의 다리는 발끝이 가늘고 호리호리해 신발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물집이 생겨서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맨발로 뛰는 선택을 했다. 평소에는 맨발로 뛰었기 때문에 아베베에게는 이상한 결단이 아니었다.
이 책에는 레이스 아침 의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 함께했던 라이벌 라디의 회상도 소개돼 있다.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두껍고 시커멓고 석탄 같은 발바닥이었다. 단단하고 군용 트럭의 타이어처럼 단단해 보이는 가죽이었다"
아베베는 레이스 전 자신을 마라톤의 길로 이끌고 지도해 준 스웨덴 트레이너 온니 니스카넨으로부터 마크해야 할 선수 몇 명의 이름과 참가번호를 통보받았다. 26번 라디도 그 안에 있었다. 그런데 레이스가 시작되자 상정에는 없는 185번의 모로코 선수와의 데드 히트(접전)가 되었다. 26번 라디는 자기 앞에 있나? 아베베는 레이스 내내 혼란스러웠다. 상황을 파악한 것은 레이스의 후이지만 아베베가 나란히 달리던 185번이 라지였다. 라디는 이틀 전 1만 m 레이스에서 단 번호표를 바꾸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2km. 아베베가 스퍼트를 걸어 라디를 뿌리치고 그대로 골로 뛰어들었다. 세계는 맨발의 왕자 탄생에 열광했다. 기록은 2시간15분16초 2. 아프리카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순간이었다.
아베베는 건네주는 담요를 손을 들어 가볍게 거절했다. 여유는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웃음꽃이 피더니 이내 오열로 바뀌었다. 아베베의 뺨에 눈물이 맺혔다.
최종순위
1 Abebe Bikila Ethiopia 2:15:16.2 WR
2 Rhadi Ben Abdesselam Morocco 2:15:41.6
3r Barry Magee New Zealand 2:17:18.2
역대 올림픽 마라톤의 역사와 드라마라를 연도별로 정리했습니다.
제 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