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 마라톤의 역사와 드라마라를 연도별로 정리했습니다.
No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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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올림픽에피소드] 55년만의 완주
작성자 운영자
2020년 올림픽을 앞둔 일본이 마라톤, 올림픽을 주제로 2019년 1월부터 대하드라마를 시작한다. [이다텐, 도쿄올림픽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일본의 마라톤 선수가 최초로 참여한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을 시작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까지, 올림픽을 대회를 중심으로 본 일본의 50년 근현대사를 다룬다.

그동안 전국시대와 에도막부 말이 주를 이뤄왔던 대하드라마에서 33년만에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1912 스톡홀름 올림픽의 일본 국가대표 카나구리 시조와 1964 도쿄 올림픽 개최의 중심 인물인 타바타 마사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2020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여 만드는 작품인데, 1964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고 주도했던 것이 자민당 정부가 2020 도쿄 올림픽도 자민당 정부가 개최할 가능성이 커서 어용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카나구리 시조는 누구이며 당시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요즘은 모든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 취재의 대상이 되어 특정 선수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지만 100년전의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던 것같다. 마라톤을 55년만에 완주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 올림픽 마라톤에서의 일이다.

당시 스톡홀롬 올림픽 마라톤은 살인적인 더위로 마라톤 참가선수가 대회 다음날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대회일 섭씨 40도를 육박했다. 이 대회에서 68명이 출발했으나 절반인 34명이 중도에 포기할 정도의 잔혹한 레이스였다. 일본 선수 시조 카나쿠리 선수도 열사병으로 26.7km 지점에서 기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나쿠리 선수는 불운은 더위 뿐 아니라 당시 일본에서 스웨덴까지의 이동은 배와 열차를 이용했는데 이동하는데만 18일이 걸렸다고 한다. 게다가 스웨덴은 백야로 인해 밤에 충분히 잠도 자지못했다. 또 대회당일 숙소로 그를 데리러 오기로 한 차량이 오지않아 그는 경기장까지 달려서 가야만 했다. 이런 악제가 겹쳐 그는 대회를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당시 올림픽 마라톤을 끝내고 조직위는 무더위로 완주하지 못한 34명 선수의 행방을 찾았다. 모든 선수를 다 찾았는데 유독 일본대표인 시조 카나쿠리(金栗四三)선수만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고 경찰을 동원했지만 경찰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올림픽이후 수년이 흘러가면서 카나쿠리의 행방에 대해 스웨덴 내에서는 이런 저런 헛소문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두사람의 스웨덴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인지 일본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어 스웨덴 어느지방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과 또 다른 사람은 스타디움을 찾으려고 로테브로 거리를 헤메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의 행방이 미궁에 쌓인채 1962년 한 스톡홀름의 한 신문사는 올림픽개최 50주년을 기념하여 자사 기자를 일본으로 보내 카나쿠리를 수소문하도록 했다. 그는 큰 어려움없이 타마나시의 한 공립학교에서 지리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카나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카나쿠리는 당시 레이스를 반쯤 주파했을 때 더위로 열사병에 걸려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어, 근처 한 민가의 정원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고, 그 가족은 그를 안내하여 음료를 제공하면서 쉬게 했고, 자신들의 침대에서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가 깨어났을 때 가족들은 옷가지와 스톡홀름까지의 기차티켓도 주었다. 그는 완주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당황하고 창피해서 이 사실을 숨긴채 조용히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카나쿠리는 지난 50년동안 이 "사라진 일본인"이 스웨덴 전국에서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그의 나이 76세가 되던 1967년에 그는 스톡홀름 로테브로가의 한 백화점 오픈행사에 초청되어 스톡홀름으로 갔습다. 그때 주최측은 그를 스톡홀름 스타디움으로 데려가 피니쉬라인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사라진 전설"은 스웨덴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그때 스웨덴 방송은 그를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데려가 골인이벤트를 가졌다.

당시 장내 방송은 ""일본의 가나구리 선수, 지금 골~인! 완주 시간은 54년 8개월 6일 5시간 32분 20초 3, 이것으로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 대회의 전 일정을 종료합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 방송에 대답이라도 하듯 카나쿠리翁은 "긴 여정이었다. 그 사이에 손자가 5명이나 생겼다"고 유모스러운 멘트를 남겼다고 한다.

이로서 카나쿠리의 55년 마라톤레이스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아마 이것이 지금까지 올림픽마라톤 출전선수의 "최장시간"기록이 아닐까 생각된다.

1911년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카나쿠리는 당시의 세계기록(당시는 40.225km)를 27분이나 단축한 대기록을 수립했으며 일본인 최초의 올림픽 대표가 되었다.

그 후 제6회 베를린대회는 제1차 대전으로 인해 중지되었고 제7회 앤트워프 올림픽(1920)에서 출전하여 우승이 기대되었으나 2:48:45의 기록으로 아깝게 16위에 그쳤다. 제8회 파리올림픽 대회때(1924)는 이미 33세의 나이. 마라토너로서의 원숙기를 지나 32.3km 지점에서 포기한 불운의 올림픽 러너였다.

그는 1984년 11월 13일 93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 전성기의 카나쿠리(왼쪽)과 54년 8개월만에 골인하는 가나쿠리翁의 모습(오른쪽)

태허 그런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긴 스웨덴 사람들이 더 멋있네요.

그건 그렇고, 이봉주선수의 선전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08/02   
전차수 올림픽에만 연속 4번 출전한(?) 대단한 선수였군요.
스웨덴 사람들이 8년후에도 계속 관심이 있었으면 우승후보인 그의 이름을 쉽게 알았을 텐데...
올림픽 50주년을 맞아 그의 "전설"을 발굴해 낸 신문사가 재밌습니다.
골인 이멘트를 만든 백화점/방송사도 그렇구요.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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