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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2836, Vote: 3, Date: 2015/03/02
제 목 시민러너 가와우치 유키가 있기까지(2)
작성자 운영자
대회가 주는 보너스는 가족여행


가족이 도치기현으로 여행했다.  가족이 함께한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2004년 8월 31일 미카 씨 제공)

매일 연습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군요.

달리기 연습을 한다면 매일의 일과처럼 할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중간하게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래 마라톤 선수로 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지구주대회나, 스포츠 소년단 대회나, 사이타마현내의 어린이 마라톤같은 대회를 위한 연습을 반복했을 뿐이에요

그런 대회는 1년에 몇번이나 있었나요?

저학년 때는 년 2,3번 정도였어요.  고학년이 되면서 현내에서 열리는 시민대회가 있으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유키 씨가 잘 따랐군요.

집안 모두 응원을 겸해 가벼운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차를 타고 가니 가벼운 여행의 기분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점점 현밖의 대회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응원한 후 온천에 들어가서 식사도 하구요(웃음).

본인의 성격적인 부분은 어떤가요? 한다고 정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타입인가요?

도중에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뭐든지 우선 끝까지 해내는 타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끝까지 해!"라고 다그칩니까?

제가 다그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유키는 야구도 했는데 구기종목은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계속했어요.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하는 성격은 천성인 것같아요.




엄마는 육상, 아버진 권투선수 출신

유키 씨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습니까?

조각그림(퍼즐)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하게끔 놓아두면 열중하여 완성될 때까지 계속 했습니다. 항상 덜렁거려 침착성이 부족한 아이였습니다만 퍼즐을 시키면 얌전하게 열중하기 때문에 이것이 좋겠다 싶어 자주 시켰습니다.(웃음)

끈기랄까, 집중력이 있었네요.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집중합니다.  본래는 가만히 있지못하는 타입입니다.

남편과 사이에서 어떤 교육방침이 있었어요?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남자아이인만큼 무슨 스포츠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어머니 본인은 어떤 스포츠를 했나요?

중고교때는 육상부에서 중거리 달리기, 800m나 1500m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미련도 남아 있고... 유키가 나 대신 달려 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로 하코네 역전을 마친 뒤 오다와라중학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카와우치 유키 선수(2007년 1월 3일 미카 씨 제공)


미련이 있었군요?

좀 더 성실하게 했더라면 고교대항 대회 등에는 나갔지 않았을까 생각해요(웃음). 그렇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그쪽이 즐거워져서 어느새 육상클럽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잘했더라면 좋았을텐데라며 자주 생각합니다.

남편의 스포츠경험은?

"복싱을 했습니다.  대학때까지 복싱을 했는데 프로의 세계에서는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그만둔 것같아요.  남편도 나처럼 딱 이것이다라는 게 없었던 같아요.  

유키 씨는 부모님 모두 스포츠에 대한 미련을 안고 있군요

뭐, 그런 셈이네요.  달리기가 아니라도 좋은데  축구나 수영 등등 여러가지 시켜보고 가장 두각을 드러낸 것이 달리기였어요.  단체경기보다 개인경기, 개인경기 중에서도 러닝이었습니다.



좋은 의미로 아들에게 배신당해

어머니가 중거리 육상선수 출신이라 유키 씨의 장래성을 간파한 거군요.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좋은 뜻에서 배신당했어요(웃음).  원래 대학(학습원 대학)이라고 해도 육상에 강한 대학이 아니라서 그냥 즐기면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중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대학 졸업후 이번에는 그냥 자기 나름대로 느긋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더니 왠지 좀 이상하게 상황이 흘러갔어요(웃음)

여러단계가 있었네요

전통적으로 육상이 강한 대학에서 실업단으로 진출한 선수들이 일본대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유키나 저도 일본대표는 유키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상급 선수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스포츠의 목적은 건강유지나 즐기기 위한 것이지요

그렇지요. 진지하게 운동하는 것은 학생시절까지이니까요.  어떤 운동이든 좋으니까 그 정도는 계속 하기를 바랬었죠


마라톤 남자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대표로 결정된 후 기자회견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는 카와우치 선수(2013년 4월 25일, 사이타마 현 카스카베 시의 현립 가스카베 고등학교에서)

스포츠를 통해 인생 지도 같은 것도 몸에 붙겠지요.

거기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무슨 스포츠든 계속하는 편이 좋고, 장래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 스포츠를 계속하는 것은 어렵잖아요.  그래서 학생시절에 마음껏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옆에서 보셨으니 유키 씨는 초등·중학교·고교·대학중 어디서 급성장했습니까? 기록의 의미에서도 그렇고 인간성의 부분에서도

그건 역시 사회인이 된 후부터입니다.  대학시절부터 『어라? 혹시나?』하는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부상도 많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아왔기때문에 대학에 들어가면 이제 그만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가족은 하코네역전에 출전하는 게 목표였어요.  부모로서 남자 3형제를 두고 있어 누군가 한 아이라도 좋으니까 하코네 역전에 나가길 바랬습니다.   실제로 대학시절에 유키가 하코네에 출전했기때문에 부모의 목표는 거기서 달성된 셈이죠.



러닝의 방향전환과 아버지의 죽음

유키 씨는 고등학교 시절 부상이 많았는데 대학에 가서도 육상을 포기하지 않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육상 명문학교로 진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며 육상을 하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상 등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일이 겹치면서 육상 명문학교에서는 자신의 실력이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명문교가 아니라 육상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대학에 가서 자유롭고 또 즐겁게 달리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잘 된 것같아요.

자유롭다는 말은 안주하고 싶다는 의미 아닌가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을 단련한다고 할까 .  하코네 역전은 아니지만 전국에 많이 있는 시민마라톤에 나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것이 고교생활의 마지막인가요?

그렇습니다.   본인이 여러 대학의 오픈 캠퍼스에 가서 자신이 진학할 곳을 정했어요.

그때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육상을 했던 유키 씨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나요?

남편은 육상에 대해 몰랐는데 유키가 초등학생이 되어 달리기를 하게면서부터는 완전히 빠졌습니다.  평일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쉬는 날에 유키와 함께 연습하고 응원을 다녔습니다.

남편은 유키 씨에게 무슨 말을 했습니까?

뭐랄까 『힘내라-』나 『 더 잘 할 수 있어 』라고 격려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러닝 상담 상대이기도 했습니까?

그랬습니다.   저는 잔소리가 심하니까 아버지가 상담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아버지가 경기전에 마사지 해주었는데 그 때 마사지를 하면서 이것 저것 상담에 응해 주었습니다.


2011년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에서 일본인 최고인 3위로 골인한 카와우치 유키 선수=사다스 히토미 촬영(2011년 12월 4일)


  상담이라고 해도 남편은 기술적인 지도를 한 것은 아니군요?

그래도 역시 아들에게는 아버지는 큰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여러가지 의미로 듣는 입장이었습니다.   세상 이야기나 푸념 등 뭐든지 들어주더군요.  수다를 좋아하는 유키는 까칠한 저보다는 무엇이든 얘기를 들어주는 아버지에게 편안함을 느낀 것이지요(웃음).

남편이 사망한 것은 2005년 2월, 유키씨가 고교 3학년말이었군요.

밤중에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구급차로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심근경색이었어요. 수술로 목숨을 건졌지만  혼수상태로 23일간 버티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군요.

다른 형제들의 슬픔도 컸지만 유키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보낸 세월이 동생들보다 길었습니다.  대학이 정해져 남편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대학 입학식이 3남 중학교 입학식과 겹치는 바람에 대학입학식에는 아버지가 참석한다는 것까지 정해놓았어요.

유키 씨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저도 충격이 커 저도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도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고 영결식에서 저 대신 유키가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유키가 스스로 말했습니까?

당일 유키가 『내가 대신 여러분께 인사할테니 걱정마!』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인사였어요?

『감사합니다』와  『아버지를 잊지 마세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등 학교 3년 치고는 의젓했네요.

글쎄요. 그때 유키는 역시 자신이 장남으로 가장 꿋꿋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같아요.

가장을 잃은 후 유키씨가 달리기를 그만두려고 하지않았나요?

아무래도 그것도 생각한 것같지만 마라톤 명문학교에 들어간 것도 아니어서 대학(학습원 대학)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빈 시간에 연습을 할려고 생각한 것같아요.  육상경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더군요.

18세의 한창일 때 대학에서 친구교제도 많아지고 환경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것인가요?

그렇겠죠. 고교시절의 유키는 정말 어두운 아이였어요.   육상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그 육상에서 전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한 후  고교시절보다 연습 시간이 줄었는데도 기록이 향상되었어요.  

요즘 "펀런"이라는 말이 있는데 혹시 그건가요?

그냥 달리는 것이 순수하게 즐거워졌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정말 그만둔다고 몇번이나 생각한 것 같았어요.   그러나 달리는 것이 즐거워지면 결과도 나오는 것같아요.  따라서 더욱 재미있어 진 것같아요.

힘든 일을 계기로 좋은 방향으로 전환되었군요

옆에서 보니까 그것을 매우 잘 느꼈습니다.  점점 표정이 밝아져 갔습니다.  입학해서 바로 기록대회에서 좋은 기록이 나와서 연습을 잘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습량이 줄어든 만큼 부상도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 지도(코치)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러너 가와우치 탄생

달리기 주자에게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어려운 질문이군요.  저는 유키에게는 대학시절의 감독님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후에도 1, 2년은 그 감독님으로부터 훈련메뉴를 부탁해서 받았고 함께 대회에도 나갔습니다.   일대일로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의견이 맞지 않게되면서 결국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그 감독님을 만나 기록이 향상된 것은 틀림 없습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어디에선가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는 감독님도 의욕이 넘쳤으므로 거절하진 못한 것 같아요 "

그랬군요? 혼자서 하고 싶어했군요?

부언하자면 사실 누군가와 같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혼자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같아요. 그래서 동료와 같이 연습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 졸업했으니 대학후배들과 연습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독과 일대일로 하는 지도체제가 되니까 모두와 같이 소속되어 활동하지 못하니 왜 이렇게 해야하나 하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 나올 때 공무원을 택했습니다

대학시절 초기에 실업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면 그쪽으로 갔을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좋아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제안이 없었어요.  대학 2년때 학생회 선발에서 하코네역전에 출전했지만 3학년때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디에도 스카우트 제안이 없었어요.  취직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공무원이 안정된 직장이기도 하고 직업으로써도 해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했다.  정치, 사회, 지역정책의 일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공무원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아버지· 아시오 씨(왼쪽)옆에서 종알거리는 카와우치 유키.  오른쪽은 미카 씨의 부모(1990년 12월, 가족 여행지에서. 미카 씨 제공)



공무원이라면 연습시간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나요?

거기까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시민주자로 뛸 생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키씨가 기숙사 생활이나 혼자 생활한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어요. 『자취 정도는 할 수 있다 』고 하는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요리의 재능도 있을 것 같나요?

고교, 대학 때는 일로 정신 없는 저 대신에 식사를 준비해 준 적도 있었습니다.  유키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제가 다리 골절로 2개월 정도 움직이지 못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동생들의 도시락을 매일 싸주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전혀 요리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하려고 하면 할거예요.

지난해 유키 씨의 힘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저도 보았습니다.

심폐기능이 너무 높아 마라톤에 적합한 신체라고...

스포츠심장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 아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년 건강검진하면 꼭 이상증세로 걸렸습니다.  심장비대가 의심된다고요.

그것은 이상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재검진에서 육상경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아아 그렇다면 괜찮다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심폐를 단련한 결과입니까?

아마 그렇겠죠. 유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한 운동을 해도 심박수가 낮게 유지되는 것은 유리하잖아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상입니다.  운동을 하니까 괜찮다고 해서 불안은 해소된 느낌이었습니다.

유키씨 본인도 좋은 심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어머니로서는 몸을 혹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들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머니로서는 걱정이군요.

역시 걱정이 됩니다.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은 유전되니 조심하라는 의사 이야기를 들었기때문에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합니다.  심장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걱정됩니다.  지금도 괜찮으려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장에의 부담에 대해서 유키씨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슬슬 여름철 대회참가는 그만둘까 하고 갈등이 있는 것 같아요.


런던올림픽 대표 선발팀에서 빠진 후 기자회견에서 카와우치 유키 선수(2012년 3월 12일 사이타마·카스카베시에서)=코바야시 타케히토 촬영


여름철은 심장에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까?

열사병이나 탈수증상을 일으키기 쉬운 체질인 것같아요.   역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은 어렵고 여름 레이스에서는 전혀 성적이 나오지 않기도 해서 여름철 레이스를 그만둘까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재의 심경은 어떤 것인가요?

올해 아시아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으므로 여름철에 훈련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여름철에는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같아요.

그런데 이제 국민의 여망을 짊어지고 있으니까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여름공략이 유키씨의 2014년의 고비인가요?

아시안대회 일본대표에 뽑혔고 국가대표팀에도 들어갔습니다.   국가대표팀에 들어가지 않고, 지금의 환경에서 더 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것같습니다.

더 위를 지향한다는 것은 올림픽 말씀인가요?

본인은 가능하면 나가고 싶지 않은 것같아요(웃음). 다음 세계육상도 북경이고, 올림픽은 리오, 모두 더운 곳 에서 하니까요

도쿄 올림픽도 덥겠죠.

도쿄올림픽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더운 것이 우선 싫어요. 가능하면 여름에는 뛰기 싫다는 게 본심입니다.

시민주자로서의 자부심을 집에서도 말하곤 합니까?

본인이 그다지 말하지는 않아요.  실업팀 선수든 시민선수든 목표는 같습니다.  수단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업팀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 길을 목표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 자신도 유키에게 배운 것이죠.

시민주자의 신분으로 정점을 지향하는 것에 사명감 같은 것이 있나요?

확실히 지금은 있습니다.  자신이 그런 자세를 보임으로써 뒤를 잇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목표를 세우고 또 그것을 달성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씨에게 있어 달리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네요?

고등학교, 대학과 강호 명문학교에서 훈련해도 결국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고 달리기가 좋아 계속 달리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유키로 인해 그런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인생의 선택지는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열심히 해왔는데 그만두는 사람들에게 유키는 늘 아깝다고 말해왔습니다.

올해 매우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지는 않나요?

본인은 즐긴다고 합니다.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가요?

"그렇습니다(웃음).  바빠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닙니다.  지금 생활이 그렇습니다(웃음)"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어떤 며느리를 보고싶습니까?

하하하. 나는 이제 정말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키라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누구라도 좋습니다(웃음)

유키씨가 좋아하는 타입은?

특별히 따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키가 자주 하는 말이『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냥 그 사람도 시민주자로 함께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좋대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잘 없어요…… 좀처럼 없어요. 있으면 좋을텐데요(웃음).  유키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남편을 지원해 주었는데 몇년 지나면 『또 가?』라고 하는 아내도 있다는군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니까 아내가 될 사람은 몇살이 되어도 현역으로 뛰는 사람을 정하고 싶은 것같아요.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도 언제까지나 즐기며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같아요.

아직 없나요?

없습니다(웃음). 찾고 있는데 그것만은 마음대로 안되네요(웃음)

올해는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상태에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럴 시간이 전혀 없잖아요.  보통사람처럼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요.

언젠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 그런 만남이 가능하겠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기다려보겠습니다만 30세가 되어서도 독신이라면 선이라도 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유키와 함께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꼭 소개시켜 주세요(웃음).

카와우치 유키씨의 어머니로서 강연하거나 취재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교육위원회로부터 강연을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가노현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유키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하고 최근의 생활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청중의 반응은 어땠나요? 질문도 있었나요?

질문도 있었죠.  아이 교육의 문제입니다만 저는 별로 특별한 교육을 한 것은 없어요.  여러분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마웠지만 그런 내가 강연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었죠.

특별한 교육방법이 없었다는 것인가요?

없어요(웃음)

유키씨의 재능을 꽃피게 했잖아요.

그것도 아니에요. 제가 돌본 것은 초등학생 무렵이고,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좋은 성적을 남긴 것도 없어서...


2015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13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둔 바로 다음주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하프마라톤에서 다시 우승했다.


유키씨는 여기 와시노미야(사이타마현 구키시)에서 초등학교때부터 살고있으니까 유키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유키가 여기서 여러분으로부터 사랑을 받고있고 또 응원해주시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동네 사람들 덕택에 성장했다는 생각입니다.   되도록 어려서부터 지역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고 또 무슨 행사가 있으면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습중에도 많이 격려해주셨습니

다. 지금도 정말 많이 응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도 응원하고 있어요.

어머니로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응원하고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남의 일에 이렇게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도쿄에 살았다면 좀처럼 있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살기 편리한 곳에서 이사왔을 땐 불안감도 있었지만 정들면 고향이라고 지금은 애착이 있습니다.

유키씨에게도 고향이이네요.

하지만 4월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이 인터뷰를 4월 이전에 이뤄졌음, 역자註)

무슨 일이죠?

유키는 현재 근무한지 5년이 되므로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전근요?

"네……. 음, 어디로 간다해도 현내지만 학교관련 인사는 임박해질 때까지 모르죠.

전근으로 선수생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다소 고려되는지?

"글쎄요. 그건 아직 모릅니다.

본인도 걱정하고 있나요? 훈련 시간이 줄면 어떻하나 하고....

어떤 환경이 되더라도 환경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때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즉,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인가요?

"그렇네요.. 정해지면 물론 이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직장이 멀어지면 자택에서 통근은 포기하겠죠. 하지만 아마 본인은 독립하고싶은 생각이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하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 어수선해지겠지만요...

다시 여쭙습니다만 유키씨의 어머니로서 특별한 마음가짐이라는 게 있습니까?

특별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아무것도 변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회에서나 밖깥에 있는 저 아이를 보면 다른 아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습니다.  역시 계속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걱정도 되니까요. 그래서 대회에 따라가는 일이 있어도 같은 기차는 안타고 가더라구요.

동생들을 포함해 3형제의 어머니이니까 이들로 부터 느끼는 행복이란 어떤 것입니까?

저의 행복요?  뭘까요?  제 스스로 이런 경험은 쉽지 않을 것이고 그런대로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네요. 이런 것도 없었다면... 남편을 정말 일찍 잃었으니……역시 아들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도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카씨(유카의 어머니)는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까?

유치원 직원을 그만둔지 1년이상이 됩니다.  둘째아들이 이제 막 사회인이 됐어요. 남편이 죽은 후는 정말 바쁘게 지내와서 이제 좀 차분해지고 싶습니다.  겨우 한숨 돌린 상황입니다.   온화한 날들이 온 기분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래도 틈이 있을 때 아무 할 일이 없으니 또 뭔가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2013년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에서 역시 일본인 최고 3위로 골인한 카와우치 유키 선수(2013년 12월 1일, 사다스 히토미 촬영)


요즘은 달리기를 할 기회는 있습니까?

저요? 이제는 더 없네요.

대회에 나가 보겠다는 생각은?

"골절을 입어 그런지 그런 기분이 나지 않는군요(웃음).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이 부러졌거든요. 수술해서 아직 플레이트가 부착되어 있는채로입니다.   하루에 1번은 걷을려고 하고 있는데 운동 부족이에요...긴 거리를 걸으면 좀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런 일도 있어 기가 약해졌습니다.  골절 1년쯤 전에 3km대회에 나갔는데요. 일단 6위 입상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달리기입니다.

미카씨에게 "달리기"는 무엇입니까?

달렸기 때문에 지금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달리지 않았다면 아이들도 안 달렸겠지요.  지금도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중학교나 고교시절처럼요?

네. 아들들의 레이스에 응원하러 가면 여러분들이 생기있는 얼굴로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아, 좋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카와우치 집안은 달리기와 교육이 밀접하게 얽혀있군요.

글쎄요. 달리기와 함께 가족이 성장해 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 경우는 아이들이 각인각색입니다.

미카씨도 그렇군요.

저도 물론입니다. 애들을 보살펴준 것은 초등학교까지 였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아들들이 달리기를 계속해왔으므로 가능한 한 대회에 응원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달리기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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