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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5792, Vote: 4, Date: 2016/03/03
제 목 보스턴 첫 여자완주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작성자 운영자


깁은 즉각적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끌었다.  메사추세츠 주지사인 존 볼프(John A. Volpe)는 피니시 라인에서 그녀를 맞아 악수를 했다.  고향마을 거리에는 그의 부모와 인터뷰하려는 기자들로 넘쳤다.   그해 일본선수가 보스턴마라톤을 석권했는데 일본 신문과 깁 부모님과 연관이 있는 말레이시아의 신문도 깁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해 1위부터 4위까지 일본선수가 휩쓸었고 한국의 김봉래 선수도 참가하여 10위를 차지한 바 있다.  TV 쇼프로그램인 "사실을 말하면 (To Tell the Truth)"은 그를 주제로 페널리스트들이 3명의 여자중 누가 진짜 보스턴 마라톤을 최초로 달렸는지 규명하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   그는 상금으로 받은 $66를 터프츠 의료센터에 기부했는데 이는 혹시 나중에 올림픽 출전권을 받을 경우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유명한 스포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는 그의 완주를 가장 잘 요약했다.  "지난주 아담하고 예쁜 23세의 금발 여성이 장거리달리기를 하기에는 여자는 너무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경기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깁은 "정확히 내가 바라던 바였다"고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 AAU(Amateur Athletics Union 아마추어 육상협회)가 여성이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의 수정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 많은 고무된 여성들로부터 격려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처음으로 집근처 몇블록을 달려보았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마치 X점에서 Y점으로 달리는 것이 자신의 자립을 찾아가는 첫 발자국 같은 것이었다"고 깁은 말했다.

깁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요즘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잘 모를 것이다.   여자가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는 쿠키를 구웠으나 마라톤은 완주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여성들도 곧 그의 뒤를 따랐다.  1967년 다시 보스턴마라톤을 달렸을 때(3:27) 그는 또 다른 여성과 함께 했으며 1968년 3시간 30분으로 완주했을 때 4명의 여성과 달렸다.   1972년 AAU가 보스턴마라톤과 다른 마라톤대회에 여자부문을 허가함에 따라 작은 도랑물이 홍수로 변하듯 참가자가 늘었다.   하지만 깁은 그들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보스턴 마라톤 첫 여자완주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캐서린 스위처(Katherin Switzer)"라고 대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최초 여성 완주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메사츠세츠주 사이라쿠스 출신으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던 20세의 캐서린 스위처는 한 해뒤인 1967년 깁보다 1시간 늦게 보스턴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녀는 참가신청서에 성만 기재하고 이름은 알파벳 머리글자만 작성, 남자로 가장하여 참가번호표를 받았다.   당시 대회 조직위원장인 족 셈플(Jock Semple)이 화난 얼굴로 그녀를 물리적으로 주로에서 끌어내기 위해 함께 달리던 그녀의 남자친구와 몸싸움을 하는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여성 달리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스위처는 작가로, 연사로, TV 진행자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갔으며 1974년 뉴욕마라톤 우승, 1975년에는 보스턴마라톤에서 준우승했다.  그 덕택에 러너스월드가 선정한 '10년간 가장 훌륭한 여성 러너(Female Runner of the Decade (1967~77))"로 뽑혔고, TV 진행자로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여러권의 베스트셀러 책을 쓰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녀는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최초의 여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0수년동안 깁은 자신의 업적이 "도둑맞은 줄"을 몰랐다.  그동안 그는 학위를 마쳤고, 지속해왔던 결혼생활을 정리했으며 또 의과대학과 로스쿨에도 진학했으며 다시 재혼을 통해 1975년 아들을 갖는 등 매우 바쁜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1979년 가족과 함께 TV로 보스턴마라톤 중계를 보는데 진행 앵커가 "잠깐 동안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첫 여성에 대해 소개하겠다"며 스위처가 소개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67년 레이스에서 조직위원장인 셈플이 그녀를 주로에서 쫓아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후 이를 바로잡고자 10년에 걸쳐 TV방송이나 잡지, 책 출판사에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의 99%는 전국을 돌며 자신이 최초의 보스턴 마라톤 여자 완주자라고 주장하는 스위처 본인이다.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면 "아뇨 깁이 저보다 1년 먼저 완주했어요'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TV에 출연하면 항상 보스턴마라톤을 가장 먼저 완주한 여성으로 소개된다"고 깁은 토로한다.  



80년대 초반 깁은 잡지 [Ms]에 잘못된 기사에 대해 항의하자 작가인 마를린 시몬스가 전화를 해서 "당신이 최초의 여성 완주자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무시하라고 요청해왔다"고 했다.  

시몬스는 그것을 정정하는 기사를 몇번 더 작성한 바 있고 이제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깁이 점차 제대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보스턴 마라톤 주최측인 보스턴 육상협회(BAA)도 깁을 인정하게 되었다.   깁은 1966년부터 68년까지 3년간의 레이스에 대해 소급해서 1위상을 수여받았고 1986년, 96년 그리고 2001년 대회에 초청을 받아 완주 20주년, 30주년 35주년 기념식에 참가했으며 보스턴 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올해는 그녀의 완주 50년을 기념하여 차를 타고 레이스를 맨 앞에서 이끄는 그랜드 마샬(Grand Marshal)에 선정되기도 했다.  

"바비 깁의 완주가 마라톤에 여성이 참가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용기와 결단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고 보스턴 육상협회의 조안 플라미니오(Joann Flaminio)회장은 평가했다.  "마라톤이 있는 주 내내 협회는 로드레이스에 영향을 미친 비비와 다른 여성들을 기릴 것이다"고 했다.  

아직도 여전히 건강하고 운동을 즐기는 깁은 매일 한시간씩 달린다.   그녀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UC샌디에고에서 ALS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보스턴에서는 조각 예술과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비록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그녀의 이름을 모르지만 1966년 4월 19일에 그녀가 남긴 족적은 아직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 보스턴마라톤의 26,598명의 완주자중 45%가 여성이다.   장거리 대히에서 절반 이상의 참가자가 여자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내가 자랄 때는 여자들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남자가 달릴 때 연도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자들 처럼 아름답고 튼튼하고 자신감 충만한 여성 롤모델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데 기여했다"고 깁은 소감을 마무리했다.  

보스턴 이전 최초의 여자마라톤 완주자는 누구?

2003년 4월 런던마라톤에서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는 2:15:25의 놀라운 기록으로 세계기록을 수립했고 13년동안 깨지지 않고 이어져오고 있다.   요즘 세대들은 여자 마라톤대회가 당연시 되고 있지만 여자 공식마라톤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32년전인 1984년 LA 올림픽에서였다.   수십년 동안 여성은 마라톤대회 참가 조차도 금지되었다.  

그럼 1966년 보스턴 마라톤에 여성으로 첫 도전한 로버타 깁 이전에 다른 마라톤에는 여자 도전자가 없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1896년 사만타 레비시(Stamata Revithi, 일명 멜포메네 Melpomene)가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대회가 열린 다음날 올림픽 코스를 달렸다.   스타디움 입장이 금지되어 스타디움 밖을 돌아 마라톤 거리를 맞추었다고 한다.   물론 비공식 참가이다.

영국의 비올렛 피어시(Violet Piercy)는 공식적으로 마라톤 기록이 측정된 최초의 여자 참가자였다.  1926년 영국의 치스윅(Chiswick)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3시간 40분 22초로 완주했는데 연구가들은 당시 마라톤거리가 22마일(35km)였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여성주자인 데일 그레이그(Dale Greig)는 1964년 영국 라이드(Ryde)에서 열린 와이트 마라톤(Wight Marathon)에서 3시간 27분 45초으로 완주해 세계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세계기록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보스턴마라톤도 공식적으로 여자부문을 개설한 것은 1972년이 되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여자마라톤이 도입된 해는 LA올림픽보다 한 해 앞선 1983년으로 당시 조폐공사 임은주 선수가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48분 13초로 우승한 바 있다.  
바람의아들 여자들이여 ~
달려라
세상이 바뀔것이다!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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