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 46  
Read: 15055, Vote: 9, Date: 2013/11/11
제 목 심재덕씨의 뉴욕타임즈 기사 전문
작성자 운영자
다음 기사는 2013년 11월 9일자 뉴욕타임즈의 A6면 "토요 프로필(The Saturday Profile)"에 "대회에는 늦깎이 였지만 피니시라인에는 먼저 들어왔다(Late to the Race, but Early to the Finish Line)"라는 제목의 기사로 마스터스 달림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재덕씨에 대한 기사입니다.  뉴욕타임즈가 이렇게 한국의 아마추어 달림이를 대서특필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기사의 전문과 번역문을 게재합니다.  번역의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수정하겠습니다.(운영자 註)



Late to the Race, but Early to the Finish Line

GEOJE, South Korea - SIM JAE-DUK, a South Korean shipyard worker, checked into his motel in Front Royal, Va., on a May evening in 2006, sleepy after his first-ever trip to the United States - on a budget flight that first stopped in Tokyo and San Francisco. Two days later, he set off on the Massanutten Mountain Trails 100-Mile Run and won it, setting a record of 17 hours, 40 minutes, 45 seconds, which has yet to be broken.

[거제, 한국] 한국의 한 조선소 현장근무자인 심재덕씨는 2006년 어느 월요일 저녁 버지니아주의 프런트 로열의 모텔에 투숙 수속을 밟았다. 도쿄와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저가항공으로 미국에 처음와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은 상태였다.   이틀후에 심씨는 '매서누턴 산악 100마일(161km) 런'에 출전하여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은 17시간 40분 45초의 대회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The next day, he caught a flight home.

그리고 다음날 그는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I don’t like missing work because of my running," said Mr. Sim, 44, who works at Daewoo Shipbuilding and Marine Engineering on this island off the southern port of Busan.

"달리기 때문에 일을 빼먹고 싶지는 않다"고 부산의 앞쪽 이 섬에서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는 심씨(44세)는 말했다.

Massanutten race officials and runners recall him as a "total unknown" who spoke no English except "Water, water!" and "Thank you!" But Mr. Sim has become something of a legend among South Korea’s amateur marathoners, whose population has exploded in the past decade. He has been nicknamed the Korean Forrest Gump, after the movie character who runs across America.

매서누턴 대회 관계자와 현지 달림이들은 "물, 물!"과 "감사합니다!"라는 말 외에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전혀 낮선 사람"으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에 걸쳐 폭발적으로 달리기 인구가 증가한 한국의 마스터스 마라토너 사이에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미국을 횡단한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따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Mr. Sim got his start running after six years of nine-hour workdays inside the ships, breathing chemicals and dust through a face mask. His respiratory system was so weak that in 1993, doctors recommended surgery to help him breathe. "Because of breathing difficulties, I always kept my mouth open, looking like an idiot," he said. He also lost most of his sense of smell. (On race days, he asks fellow runners to smell his lunch box to check if any food has gone bad.)

심씨는 얼굴마스크를 쓰고 선박속에서 화학물질과 먼지속에 호흡하며 하루 9시간씩 6년간 일한 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의 호흡기관이 너무 약해 1993년 의사는 호흡기능을 보조하기 위해 수술을 권했다.  "호흡곤란 때문에 나는 항상 입을 벌린 채 지냈는데 마치 바보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또한 대부분의 후각을 상실했다. (대회일에는 도시락을 꺼내 음식이 상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료 참가자에게 냄새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But Mr. Sim, a determined man if there ever was one, refused an operation. "Instead of surgery, I decided to run," he said. "I decided that, even if I died, I would die running, with my lungs full of air." His lung capacity, measured in 2003 at 69.5 percent, now registers as normal, he said.

하지만 전형적인 의지의 사나이인 심씨는 수술을 거부했다.  "수술대신 달리기로 했다.  설령 죽더라도 내 폐속에 공기를 가득 채우고 달리다가 죽겠다"고 했다.  2003년도에 측정한 그의 폐활량은 69.5%정도였으나 지금은 정상이라고 했다.

Despite still working five or six days a week at the shipyard - he now repairs welding machines - he runs three marathons a month; in spring and fall, as many as seven. In all, Mr. Sim has run 210 amateur marathons since 1995, and finished all but three of them under three hours.

여전히 주 5-6일 조선소 현장에서 근무하면서(지금은 용접기를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음), 월 3회의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며, 봄과 가을에는 월 7회까지 달리기도 한다.  1995년이후 지금까지 총 210회의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했으며 그중 3번을 제외하고 모두 서브-3(2시간대 기록)를 기록했다.

With his personal record of 2:29:11, he cannot compete with professionals - the current men’s record, subject to ratification by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 is 2:03:23, by Wilson Kipsang of Kenya. But Mr. Sim’s 90 victories are widely considered South Korea’s amateur best, although there is no official agency compiling amateur data.

현재 그의 개인기록인 2:29:11로는 프로선수들과 겨룰 수는 없다.  아직 세계육상경기연맹(IAAF)의 인준을 받아야 하지만 현재 남자 세계기록은 케냐의 윌슨 킵상에 의한 2:03:23이다.   아직 아마추어 선수의 기록을 취합하는 공식 기관이 없지만 심씨의 90회 우승기록은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로는 최고로 여겨지고 있다.

He sometimes runs a marathon on Saturday and again on Sunday, and has won six such back-to-back marathons. He excels in so-called ultrarunning endurance races, typically double the length or several times longer than the 26.2-mile marathon and often conducted on mountain trails. He has run more than 30 such races at home and abroad and won 10 of them. "I am happier running than walking," he said in an interview at his home.

그는 가끔 토요일에 마라톤을 완주하고 일요일에 다시 도전하기도 하며, 이런 이틀 연속 참가한 마라톤에서 6번이나 우승한 바 있다.  그는 소위 울트라마라톤에서 두각을 드러내는데, 울트라마라톤은 보통 42.195km마라톤의 2배 혹은 그 몇배 더 긴 거리이며, 자주 산악에서 열리기도 한다.  그는 국내외에서 30회 이상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했으며 그중 10회를 우승했다.  심씨의 집에서 가진 이번 인터뷰에서 "나는 걸을 때보다 달릴 때 더 행복하다"고 했다.


Mr. Sim, 44, with a favorite trophy, which he won in 2010. His feats of stamina have won him renown among South Koreans.

MR. SIM grew up in an isolated village near Mungyeong in central South Korea, one of the country’s most mountainous regions, at a time when villagers were still collecting mountain herbs and hunting wild animals for food. He had to walk two miles to school or to the nearest candy store, and recalls chasing rabbits and pheasants over the steep slopes. (This early experience helps him in mountain trail races. He said he felt comfortable in the woods.)

심씨는 한국의 중앙부로 가장 산악지역중의 하나인 (경북) 문경근처 외딴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산에서 약초를 캐고 들짐승을 사냥하는 시기에 성장했다.  그는 학교와 가까운 상점에 가기위해서 2마일(3.2km)을 걸어가야 했으며 가파른 산비탈에서 산토끼와 꿩을 쫓아 다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어릴 때 경험이 산악마라톤 대회에 도움이 되었고 숲속에서는 편안해짐을 느낀다고 했다)  

Nevertheless, he said, he was never good at running in his school years. "I was one of the shortest kids in school, and they seldom let me compete in the races, and even when I did, I never finished even third," he said.

그럼에도 그는 학생시절에는 전혀 달리기를 잘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학교에서 가장 키가 작은 학생중에 하나였고 (달리기)대회에 참가시켜주지도 않았다.   어쩌다 참가했을 때도 3등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Now, his golden business card identifies him as "golden legs" and "iron worker." Among his shipyard colleagues, his nickname is "the iron man."

지금 그의 황금색 명함에는 그를 "황금발" 그리고 "철인 사원"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조선소 동료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철인"으로 불린다.

Beyond his personal exploits, though, Mr. Sim’s hero image owes something to the special place that the marathon holds in South Korea.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위업에 더하여 심씨의 영웅적인 이미지는 한국에서 마라톤이 갖는 특별한 위상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South Koreans still consider the medal the marathoner Sohn Kee-chung won at the 1936 Berlin Olympics to be the first Korean Olympic gold, though Mr. Sohn ran as a member of the team from Japan, Korea’s colonial ruler at the time. A photo of Mr. Sohn from the medal ceremony - holding a leafy branch to hide the Japanese flag on his tracksuit - is one of the most celebrated images of Korean national pride.

한국인들은 당시 한국의 식민지 통치자인 일본팀의 일원으로 달렸음에도 여전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토너 손기정이 획득한 메달을 한국 최초의 금메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메달 수여식에서 운동복에 그려진 일장기를 가리기 위해 월계수 가지를 들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사진은 한국인의 국민적 자부심을 나타내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중 하나이다.

Although South Koreans craved another marathon gold, the sport attracted few participants among ordinary people. That began slowly changing after the South Korean runner Hwang Young-cho won the marathon in the 1992 Barcelona Olympics. But it was the Asian financial crisis of the late 1990s that helped fuel the marathon boom. With their once-proud economy crippled and jobs evaporating, many middle-age South Koreans took to long-distance running and mountain climbing, embracing the physical and psychological challenges of endurance sports.

한국인들이 또 다른 마라톤 금메달을 갈망하고 있지만, 마라톤 종목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참가자들을 많이 끌어들이지 못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의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그것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라톤붐에 불을 붙힌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아시아에 몰아닥친 재정위기였다.  한때 자부심을 가졌던 경제가 무너지고 직장이 사라짐에 따라 중년을 맞은 많은 한국사람들은 지구력 스포츠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도전하면서 장거리 달리기와 등산을 시작했다.

When Mr. Sim ran his first marathon in 1995, it was the country’s first open for amateur runners. It took him 14 years to complete 100 "sub-three-hour" marathons, a first for a South Korean. But with racing events proliferating, he needed only four more years to run his next 100. By then there were more than 120 marathon competitions a year in South Korea, in addition to hundreds of half-marathons and shorter races. The spread of urban health clubs, with their treadmills, helped spur the running trend.

심씨가 1995년 처음 마라톤을 달렸을 때가 한국에서 최초로 아마추어 달림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이었다.  마라톤 서브-3 완주를 100회 기록하는데 14년이 걸렸는데 이는 한국에서는 최초였다.  하지만 달리기 대회가 급증하면서 다음 100회를 완주하는데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때쯤 한국에서 한 해에 수백개의 하프마라톤과 거리가 더 짧은 단축코스 뿐 아니라, 120개 이상의 풀코스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러닝머신을 갖춘 도시의 스포츠센터 확산은 달리기 트렌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At first, there were no marathon competitions ordinary people like me could enter," Mr. Sim said. "Now there are so many you can’t run them all, especially when you have a full-time job, as I do."

"처음에는 나같은 일반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대회가 없었다.  지금은 너무 대회가 많아 모든 대회에 다 달릴 수 없다.  나같이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He also saves money and vacation days to compete in ultrarunning competitions abroad. He has won them in Japan and Singapore, and narrowly missed placing among the top 10 in the 100-mile Western States Endurance Run in the Sierra Nevada in California in 2007 and 2011. He has fared less well in European alpine races, in which he has suffered hypothermia and sometimes had to quit before the finish line, as he did in the 200-mile Tor des Geants race in Italy in September.

그는 또한 외국에서의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돈과 휴가일을 저축하고 있다.  그는 일본, 싱가포르에서 우승한 바 있고 2007년과 2011년에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에서 열린 100마일 웨스턴 스테이트 인듀런스 런에서 상위 10위중에서 아깝게 등위를 놓치기도 했다.  유럽의 알파인 대회에서도 잘 하지 못했는데 그는 여기서 저체온증을 겪기도 했고 9월 이탈리아에서의 토르 드 지안트 200마일 대회에서 처럼 가끔은 피니시라인 직전에서 대회를 포기하기도 했다.

MR. SIM’S fame has attracted corporate sponsors, who provide him with shoes and other running gear and energy supplements. In return, he has appeared in their magazine advertisements and carries their logos on his running shirt.

심씨는 명성덕택으로 기업의 스폰서를 받기도 한다.  이들은 그에게 신발과 다른 러닝복장, 에너지 보조음료 등을 공급하기도 한다.  그 대신 그는 이들의 잡지광고에 출연하기도 했고 달리기 복장에 그들의 로고를 부착하고 달리기도 한다.

He follows a spartan routine. Six days a week, he gets up at 5 a.m. and starts his day with an apple and 50 chin-ups. He runs 12 to 15 miles a day on a treadmill or on the road. Some days, on his way home from work, he runs mountain trails that overlook the cranes and dry docks of Geoje, the center of South Korean shipbuilding.

그는 스파르타식 훈련양식을 따른다.  한 주에 6일을 아침 5시에 일어나 사과 하나와 50회의 턱걸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러닝머신이나 도로에서 12~15마일(20~25km)을 달린다.  어떤 날은 직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한국 조선소의 심장부인 거제의 크레인과 건선거가 내려다보이는 산길을 달리기도 한다.

He said running left his feet perpetually bruised, and he has lost hundreds of toenails. His wife complains that he often misses Sunday church services because of marathons. His 15-year-old son, Young-bo, said he felt proud when his friends marveled at the trophies covering the family’s living room wall, but he, too, wishes his father would slow down a bit.

달리기로 인해 그의 발은 항상 멍이 들어있고 수백번에 걸쳐 발톱이 빠져나갔가고 했다.  그의 아내는 마라톤대회로 인해 일요일 예배에 자주 빠진다고 불평을 한다.  15살박이 아들 영보는 친구들이 자신의 거실벽을 덮고 있는 트로피를 보고 경탄할 때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아버지가 이제는 좀 자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Mr. Sim has no such plans.

하지만 심씨는 그럴 생각이 없다.

"I never finished first in anything until I started running," he said. "Only death will make me stop running."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 어느것에서도 1등을 한 적이 없었다.  죽음만이 내 달리기를 멈추게 할 것이다"고 했다.

도마 나에 영원한 마라톤 우상 재덕님에 건승을 기원합니다! 11/12   
재덕팬 멋쟁이 심재덕씨 내내 건주 하소서.... 11/12   
박환영 대단합니다. 배워야겠지요. 11/12   
달림이 끝내주네요... ㅎㅎㅎ 11/12   
대단하신 분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냥 귀동냥으로 이 분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오늘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마스터즈마라톤의 전설이네요. 오래토록 늘 건주하시기 바랍니다.
11/12   
청송심씨 가문의 영광입니다. 즐런하시고 항상 주로에서 건강히게 뵙옵기를 기원합니다.
청송심씨 파이팅........
11/12   
심만섭 "죽음만이 내 달리기를 멈추게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던 "초심"을 잃지않는 심재덕 달림이에게 박수를 보내며, 늦게 시작한 나에게 용기를 주는 글이다. 욕심보다는 건강을 유지하시길 바란다. 11/12   
와우 한국에 이런분이 계시다니...영광스럽습니다 11/12   
한판석 아마추어 마라톤초기를 이끌며 우승의 주역이였습니다.
늘 건승 하시기를 빕니다.
11/12   
노성효 어쩌면 한국의 자랑이네요.
오랫동안 건강 유지하며 즐런하시길 기원합니다.
힘~
11/12   
가로수 대단하신 심재덕님 멋지십니다. 11/12   
ykl4400 늘 건강히 즐겁게 달리시길 기원합니다. 홧팅! 11/12   
행복한러너 몇일전 뉴스에서, 외국의 86세 할머니께서 풀코스를 완주후
그 다음날에 사망하셨다는 보도를 접하였습니다.
참으로 멋진 할머니입니다. 존경의 기립박수를 보내며
저역시도 할머니처럼 달리다 죽는다하여도 행복합니다~*^^*
심재덕님께도 존경의 기립박수를 많이 보냅니다. 파이팅*^^*
11/12   
이강호 늘 겸손하신 재덕님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11/12   
심재덕 님 화이팅 입니다. 11/12   
박상호 늘건강하시고 울트라마라톤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으면 함니다 심재덕님 화이팅입니다 11/12   
이차영 항상 건강하세요~ 11/12   
송석규 멋지십니다. 항성 멋진 모습에 감동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11/12   
박상국 대단하십니다. 늘 항상 건강하십시요. 11/12   
최양범 대단하십니다~~ 기사 하나하나가 입을 쩍 벌어지게 하는군요
항상 부상 조심하시고 롱런 하시길 바랍니다~~
11/12   
김종대 제가 올해 처음 하프에 출전했죠(3일절 마라톤 울산) 제가 하프로 겨우 걷다 뛰다가 결승점에오니 재덕님이 풀 일등으로 옆라인에서 같이 골인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정말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계속 화이팅 입니다.. 11/12   
거제심 재덕님 언제나 건승을 빕니다!!!
한국의 자존심....마스터즈 우상!!!
11/12   
달리미 심재덕님 당신이 진정한 마스터즈의 영웅이십니다. 11/12   
영광 심재덕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요...영광입니다. 11/13   
박기표 대회시상금도 전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고 하던데.,,,,,,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11/13   
송이 한국의 아버지상.불굴의 의지. 넘 멋지십니다.. 11/13   
유병희 엊그제 다대포 대회 우승을 축하 드리며 잠깐이나마 인사 나눌수 있었기에 같은 달림이로서 영광 이었습니다.
늘 건강 하시고 오래도록 매니아들의 우상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심재덕님 파이팅!
11/13   
이오경 부지런 하심에 존경을 표합니다~~항상 건달하시고 즐런하세요~화이팅!! 11/13   
한상현 존경한다는 말밖엔 드릴말씀이없습니다. 11/13   
ㅎㅎ 대단해요! 11/13   
이동문 심재덕님 우리나라 마스터즈의 꿈입니다^^
부상없이 오래오래 달리시길 바람니다...힘
11/13   
킵상 대한민국 마라토너 심재덕님 화이팅!!! 11/14   
주진환 재덕씨...항상 존경하며 나의 롤모델로 생각합니다. 갑장으로 주로에서 뵈면 인사함 드리겠습니다. 11/14   
정미영 이토록 대단하고 훌륭한 울 재덕아우님을 가까이서 늘 대화할 수있어
영광이고 행복입니당~~~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샬롬~~^&^
11/14   
이찬호 대한민국 마스터즈의 자존심 심재덕아우님 영원하기를~~~~~~ 11/15   
고흥또치 마라토너라 불려지는 때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바로 선배님의 존재가 있기에~~
파이팅^~^
11/15   
출력 출력 가능하게 해 주시면 합니다. 11/15   
올라 우리 달림이들의 화끈한 영웅 입니다 11/15   
박민 모범달림이의 건강한질주 우러러볼따름입니다. 찬사를 보냄니다 11/15   
백광영 심재덕 선배님 우리나라 마스터즈 마라톤의 주요 핵심 멤버이십니다.!!!
화이팅!!!!
11/16   
금오산 많은것을 깨닫게 합니다.
늘 행복한 달림이가 되시고 부상없이 롱런 하시기 바랍니다.
11/18   
수돌이 주로에서 심재덕님을 몇번 봤지만 저런 파워가 어디서 나올까 했더니
멈출줄 모르는 도전 정신에 있었군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1/21   
이진섭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하시고 즐겁게달리세요
죽음만이 내 달리기를 멈추게 할것이다 저두요
11/24   
최고는최고야 타고난 선수 인줄 알았는데 역시 노력 뿐 모든달림이의 우상 심재덕씨
노력에 박수 보냅니다
11/26   
이상신 역시 노력에는 이길자가 없죠~~
영원한 승자 재덕형님~~진주마라톤때보니 역시 감탄이 절로 나더군요~~
12/04   
심재헌 각종 대회에서 자주 뵙지만 참 대단한 마라토너입니다!
그의 노력과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계석 정진하십시요!!
12/12   
도영종 마스터즈의 끝이라고 바야하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건강한 달리기를 기원합니다. 03/25   
오달림 대단한 의지의 사나이십니다. 화이팅! 최고! 03/25   
60대박상호 합천대회에서 힘차게 뛰는모습 멋져습니다 연풀인데도 04/08   
김효준 파이팅! 10/04   
Name
Pass
이전글 -3 남녀중 누가 더 페이스를 더 잘 유지할 수 있나? (5)
다음글 -5 중마 마스터스 우승자 뉴컴 인터뷰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