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보스턴에 실패했지만 엘리우드 킵초게는 어제 런던에서 코스기록 및 세계기록 보유자의 대우를 받았다. 출발 신호를 울렸을 뿐 아니라 런던마라톤 중계 내내 그의 이름은 참가 선수만큼이나 자주 회자되었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 후 표범처럼 뛰어 들어와 쓰러진 23살 켈빈 킵툼(Kelvin Kiptum)을 맞이했을 때 그는 적잖게 긴장했을 것이다.
테니스에서 로저 페더러가 랭킹 1위에 올랐을 때, 그보다 더 잘 하는 선수가 나올 것을 추측하기 어려웠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그는 28개의 그랜드 슬램 중 21개의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고, 그 중 15개를 우승했다. 하지만 곧 페더러의 GOAT로서의 지위는 라파엘 나달과 노박 조코비치와 같은 선수들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었다.
마라톤에서 킵초게보다 더 나은 선수를 찾기가 한동안 어려웠지만, 어제 2023년 런던 마라톤 이후, 케냐의 킵툼은 확실히 킵초게의 마라톤 세계 기록이 어쩌면 오래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후반을 59분 45초로 주파
어제 런던에서 마라톤계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후반 기록이다. 5개월전 발렌시아 마라톤에서 역사상 가장 빠른 후반부(60분15초)를 달리며 마라톤 역사상 가장 빠른 데뷔(2:01:53)를 기록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다시 그 기록을 59:45초로 줄여, 2:01:25의 역대 2위 기록으로 우승했다.
킵툼은 이제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마라톤을 완주했고 두 경기 모두에서 2시간 01분대로 완주했으며, 두 경기 모두에서 매우 큰 네가티브 스플릿(후반가속형 경주)을 기록했다. 어제 킵툼의 후반전은 지난 가을 베를린 전반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세계기록 수립 때 세운 59분 51초를 뛰어넘어 마라톤 역사상 가장 빠른 후반 기록이다. 그것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든 것은 어제 대회가 비오는 조건에 열려 다른 모든 정상급 남녀 선수들이 페이스를 늦추고 포지티브 스플릿(전반 가속형)으로 달렸다는 사실이다.
런던마라톤 미디어 관리팀이 타이트하게 실시간 중계를 단속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유튜브로 전 중계를 보기가 여의치 않았던 만큼 간단히 레이스를 리뷰해보자.
8명으로 구성된 선두그룹이 61분 40초에 하프를 통과했다(케네니사 베켈레는 6초 늦게 통과). 30km(1:27:23)에서 마지막 페이스메이커(페메)가 떨어져 나갔을 때 선두는 5명으로 줄었고, 킵툼은 마치 페이스메이커가 그를 막고 있다 길을 터준 것처럼 그룹을 깨며 치고나가 마라톤 역사상 가장 화려한 후반 마라톤 쇼를 연출한다.
위 그래프는 킵툼의 이번 런던마라톤과 작년 발렌시아 마라톤, 그리고 작년 킵초게의 세계기록 페이스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킵툼의 30km~35km 스플릿은 13:49였다. 그 후 5km는 14:01이었다. 킵툼은 40km에서 2위와 거의 2분의 차이를 내며 레이스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계속 밀어붙였다. 그는 40km에서 결승점까지 2.195km를 6분 12초(14분 07초)로 전력 질주를 했다. 그리고 골인 후 바로 드러누웠다. 케냐 선수에게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가와우치 유키식' 피니시였으며 그것은 정말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래서 마지막 코너에서 코스 혼돈을 일으켜 잠시 순로를 벗어난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계기록 가능성은?
지금까지 킵툼의 마라톤 경력이 2번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래프에서 보듯 두 대회 모두 페메가 떨어져 나간 후 페이스를 올린다. 작년 12월 발렌시아 마라톤(그래프 빨간색)에서 25km지점에서, 어제 런던에서는 30km에서 페메가 나갔는데 모두 페메가 나간 후 페이스가 올라갔다(그래프 파란색). 페메가 초반에 페이스를 조절, 에너지를 절약했기 때문에 후반 '질주쇼'가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어제 킵툼의 스태미너를 고려해서 킵초게가 세계 기록을 달렸을 때와 같은 조건으로 베를린에 두면 킵툼이 세계 기록을 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겨우 23살이다.
위 표에서 보듯 전체 구간기록에서 작년 킵초게의 세계기록을 능가하는 구간은 없다. 하지만 엄청난 네가티브 스플릿으로 달린 것을 감안하면 전반 전략 수정을 통해 16초를 당기는 것은 충분히 가시권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올 가을 코스 조건이 더 좋은 베를린에서 날씨만 뒷받침해준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어제 레이스 후 언제부터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40,41km라고 하여"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그는 스스로 세계기록을 깨는 데 2~3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의외로 그게 올 가을일 수도 있다.
어제 런던에서 다시 서브-2:02를 반복함으로써 킵툼은 작년 발렌시아 기록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며 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가을 세계기록의 산실인 베를린에서 기록 경신에 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킵초게의 가을 행보에도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가 보스턴과 같이 코스 조건이 까다로운 뉴욕을 피해, 익숙한 베를린을 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자칫 같은 무대에서 기록 경신의 영광을 통째로 바치며 조연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킵초게가 베를린을 선택한다면 마라톤 팬들은 세기의 대결을 보는 호사를 누리게 될 것이다.
켈빈 킵툼은 누구?
킵초게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수들이 트랙의 중장거리에서 경력을 쌓은 후 로드 레이스로 진출하는 것이 관례인 반면 킵툼의 경력은 다소 특이하다. 그는 지금까지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경력이 특별히 없다.
2019년 3월 리스본 하프마라톤에서 59분 54초로 5위를 하면서 첫 국제 무대에 데뷰한 후 2020년 12월에 발렌시아 하프 마라톤에서 6위를 하면서 58분 42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21년, 그는 프랑스 랑스(1위)와 발렌시아(8위)에서 각각 59분 35초와 59분 02초의 하프 마라톤계를 석권했다.
2022년 12월 4일 이 23세의 선수는 발렌시아 마라톤에서 마라톤 데뷔를 했을 때 이변을 일으켰다. 역대 가장 빠른 후반전(60분 15초)과 함께 그는 세계 기록 보유자 엘리어드 킵초게(2시간 01분 09초, 2시간 01분 39초)와 케네니사 베켈레(2시간 01분 41초)에 이어 세계 역사상 세 번째로 2시간 02분을 깬 선수가 되었다. 킵툼의 우승 기록은 코스 기록을 1분 이상 차이로 깨면서 지금까지 가장 빠른 마라톤 데뷔였다. 그는 2022년 세계 마라톤 챔피언 타미라트 톨라를 꺾었다.
그리고 이번 런던에서 후반을 59분 47초를 달려 2위 제프리 캄워르를 거의 3분 차로 따돌리고 킵초게의 코스 기록 2시간 2분 37초를 1분 이상 차이로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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