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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하코네 출신 올림픽 최고 성적 수립자는 남승룡
작성자 운영자
일본 정월 초이틀부터 열리는 풍물시인 하코네 역전 경기가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연도의 응원 자제를 부탁하는 등 이례적으로 개최됐다.  최종 10구간에서 역전한 코마자와대학이 13년만의 부활 우승을 완수했다.  텔레비전 시청률도 과거 최고인 32·3%(왕복 평균)를 기록했다.

하코네 역전(驛傳)은 1912년의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일본인 최초 마라톤에서 올림피안이 된 가나구리 시조(金栗四三)가 20년 와세다, 게이오, 메이지대, 도쿄 고등사범학교(현·츠쿠바대)의 4대학 대항 역전대회 개최한 것이 시초이다.  2004년의 제80회 대회부터는 최우수 선수에게 「가나구리 시조배」가, 시조의 고향인 쿠마모토·카즈미 촌장(和水町長)으로부터 수여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매년 "뒷무대"를 체험한 대회 관계자의 말은 흥미롭다.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자위대의 지프차가 레이스를 선도했지만 여성 대원이 방한복만 입고 승차하여, 도쿄 오오테마치(출발점)에서 하코네 아시노코(아시노 호수)의 결승점까지 약 7시간 가깝게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관계자 차량에 올라 차를 마시며 대동했는데 그 동안 볼일도 못 보고 진땀을 흘리곤 했다고 한다.  나중에 대원에게 물었더니 3일 전부터 수분은 거의 섭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연 그렇구나!" 하고 감탄했다.

엔트리는 과거 학교당 14명이었지만 지금은 16명으로 늘었다.  선수의 출전 구간 변경 마감은 대회 당일 오전 6시 50분까지(출발은 오전 8시).  여기에는 드라마 있다.  하코네 출전을 꿈꾸며 고된 훈련을 견디며 훈련해도 겨우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 티켓을 받은 4학년 주자가 여럿이다.  12월 29일에 각 구간의 출전선수가  발표되는데 그 기쁨을 가족이나 은사 등에게 전하는 순간은 평생 추억에 남는 순간이다.  다만 당일 임박해서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인이 만전을 기한다고 해도 조금만 열이나 감기 증상이 있으면 5km만 달리면 탈수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전 선수, 그리고 선배의 뜻이 담긴 어깨띠가 연결되지 않는 사태만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독은 깊은 고민에, 비정하다는 말을 들어도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출발 한 시간 전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가 고개를 숙인 모습,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수 없이 지켜보며 승부의 세계의 냉엄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금년도 왕로에서 41명, 귀로에서 46명이 선수 교체를 경험했다.  3학년 이하는 내년에 다시 기회가 있겠지만 4학년 이하는 정말 힘든 시간일 것이다.

하코네 역전 출전자 중에서 마라톤을 포함하여 총 76명이 올림픽 육상경기에 출전했다고 한다.  최고 성적은 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에서 남승룡(메이지대) 선수가 획득한 동메달이다.  다만 기억이나 기록에 남지 않더라도 4년간 전력을 다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졸업하고 실업단에 가더라도, 혹은 육상경기에서 은퇴하더라도 맹훈련을 이겨온 자부심을 안고 살아간다.  올림픽에서도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가슴을 펴고 각각의 세계의 금메달을 목표로 살아갈 것이다.

하코네 역전을 달린 한국(조선) 선수들



물론 해방전 이야기다.  하코네 역전대회 한국인으로 처음 참가한 선수는 1922년 제3회 대회에 주오대(中央大) 앵커(마지막 구간 선수)로 참가한 이명식(李明植)이다.  그는 1:22.47로 전체 10명중 3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권태하(権泰夏, 1906∼1971) 선수가 메이지 대학(明治大学) 소속으로 1927년부터 32년까지 6년 연속 출전하며 28년 제9회 대회에서는 4구간에 출전하여 1:14.24로 구간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33, 31년 대회에서 앵커(마지막 주자)로 참가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던 권태하는 손기정, 남승룡 등과 함께 '조선마라손보급회'를 조직하고, 대한육상경기연맹 9대 회장을 지내는 등 마라톤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의 친일행적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32년에는 권태하외 정상희(鄭商煕) 선수도 참가했으며, 33년 주오대(中央大) 안상기(安奭基)가 앵커로 참가했다. 1935년에는 센슈대학 이구하(李亀河) 선수, 1936년 조인상(趙寅相) 선수가 와세다대(早稲田大)대표로, 메이지대학 남승룡도 3구간을 달려 1:19:19분으로 완주했다.  
전남 순천에서 출생한 남승룡은 일본 아사부(麻布) 상업학교를 거쳐 메이지(明治)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1932년 조선육상 선수권대회에서 5000m와 10000m에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고, 1934년 9월 미•일 대항 경기 대회 5,000m 경주에서 15분 40초의 기록으로 우승하였고,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경주에서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다음해인 남승룡은 37년 제18회 하코네 역전에 참가하여 3구간을 달렸다.  

릿쿄대학(立教大)의 김도진(金道鎭), 요코하마 전문학교 김삼식(金三植), 센슈대학의 최경해(崔景海), 38년에는 최경해와 김삼식 요코하마 센슈대학에는 2명의 선수가 참가했으며, 주오대의 주상영(朱尚英), 이희태(李煕台) 등 30년대 후반에는 수많은 한국 선수가 하코네 역전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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