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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놀러 왔다
이정범	2025-01-20 05:09:46, H : 1,315, V : 25

나는 이곳에 놀러 왔다

이 정 범

나는 이곳에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온 것이 아니다
한바탕 신나게 놀러 온 것이다

오전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사는 아파트 바로 맞은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감옥 같은 교실과 교실 사이
10분간 휴식시간인 모양이다

노는 자체가 해방일 만큼 즐거운 거다
마음껏 뛰어노는 자체가 즐거운 거다
아이들에게 운동장은 걷거나 슬슬 조깅하는 곳이 아니다
최대한 속도를 내어 질주하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시간은 너무 길고
노는 시간은 너무 짧다
10분 노는 시간 동안
최대한 빨리 최대한 길게 달려야 한다
공부로부터 최대한 빨리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서

즐거워도 보통 즐거운 것이 아니다
달리는 입에서 웃음꽃이 만발하고 있다
어찌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얼마나 시끌벅적하게 웃는지
웃음꽃이라기 보다는 웃음 폭탄이다
여기저기서 웃음폭탄이 마구 터지고 있다
초겨울 운동장이 웃음 폭탄으로 따듯해지고 있다
노는 것은 이렇게 노는 것이라고
어른인 나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지금이 생의 절정인 것이다

아이들이 저렇게 노는 걸 보면
인간은 이곳에 공부하고 일하러 온 것이 아니다
신나게 놀러 온 것이다

다만 신나게 놀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을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나도 얼른 저 운동장에 뛰어들어가
아이들과 다시 한바탕 달리고 싶다


어렸을적 (2025-01-20 21:40:09) 국민학교때 다 외워야 집에 보내줬던 국민교육헌장의 그 첫구절이 이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것 같고 사람들의 그 정서는 지금도 현역인듯요. 저도 놀러 쉬러 되는대로 꿀리는대로 살려고 온걸 최근에서야 알아챘습니다.


이정범 (2025-01-21 05:47:48) 아, 그랬군요 저는 고등학교 때였는데 아예 윤리(?)과목 선생님이 시험 보기 전에 시험 문제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어 쓰는 것이라고 미리 가르쳐 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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