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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이정범	2024-07-08 05:51:47, H : 1,360, V : 7

그의 죽음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아침 해서는 안 될 살생을 했다
아무리 미물이고 나한테는 해충이지만
모기를 죽였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챙겨보는 유튜브를 시청하며
너무 재미있어 낄낄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 귀에서 왜~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모기라는 것을 알아챘다
반사적으로 왼쪽 손이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번개같이 날아갔다
모기는 찍소리도 못하고 단 일격에 방바닥에 널브러져 죽어 있었다

모기가 아침 식사의 상대로 나를 고른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내가 비록 나이가 칠십이 넘었어도 명색이
달리기 운동으로 단련된 마라토너가 아닌가
모기는 늙어 보이는 나를 얕잡아보고 먹잇감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더구나 소리 없이 급습한 것도 아니고 자신만만하게 큰소리까지 내며

모기가 전생에 나와 무슨 악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왜 하필 우리집이고 나인가
늙은이의 피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佛家에서는 해충도 함부로 죽이지 말라지만
나는 모기에도 자비를 베풀 만큼 관대하지 못하다
습도도 높은 더운 여름 아침에 모처럼 유튜브 삼매경에 빠져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집에 침입해 나를 공격한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죽은 모기를 내려다보니
조금쯤은 측은하고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지도 먹고 살겠다고 먼 길을 달려 나에게 왔을 터인데

피 몇 모금 그냥 모른 체하고 줘서 보낼 걸 하며
먹고 사는 같은 생명체에 같은 운명체로서
내 왼손이 사나웠던 것은 좀 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모기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 몇 모금 주기 싫으면 그냥 손 한 번 휘저어 저리 가라고 하면 될 일이지
한 번뿐인 목숨을 왜 그토록 매정하게 거둬들이냐고

그러면서 갑자기 사는 일이 슬퍼지고 모기가 불쌍해 보였다
나는 진심으로 모기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 생에서는 죽은 모기가 사람으로 태어나고 나는 모기로 태어나
나에게 복수를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것을
죽은 모기가 제발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모기의 시신을 거둬 쓰레기통에 넣고
나의 죄를 사면받기 위해
매일 아침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아내에게 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고해성사하듯이 이실직고했다
엉겁결에 모기 한 마리를 살생했다고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벌을 내린 것이 아니라
역시 하나님 말씀을 매일같이 듣는 기독교 신자답게
넓은 사랑의 마음으로 잘 했다 칭찬을 해 주었다
아내의 나에 대한 마지막 칭찬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에게 모기는
사탄보다도 더 기겁을 하고 증오하는 적이었다


이사오 (2024-07-08 09:00:38) 코리아의 세르반테스 이정범, 모기와 같은 무시무시한 적을 상대할려면 군장을 갖추고 칼로 맞섯어야 하는데, 맨손으로 때려 잡다니? 모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되는군요.


이정범 (2024-07-08 11:48:21) 헉! 코리아의 세르반테스 좀 거시기하네요^^ 웃자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나도 이 더위에 한 번 웃어보자고 올린 글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웃을 일을 만들어가며 이 고해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덜 괴롭게 건너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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