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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을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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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04:47:07, H : 4,974, V :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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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날씨가 선선하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함마저도 느낀다. 러너들에게는 요즘처럼 달리기에 적합한 계절도 없다. 섭씨 15도 내외에서의 달리기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달리며 행복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계절은 가을이라 달리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인데, 그 행복감을 더욱 업그레이드시키는 즐겁고 기쁜 일이 생겼다. 나는 주로 위례신도시 창곡천과 휴먼링을 무대로 달리기를 하는데, 창곡천 상류를 거쳐 청량산 줄기 산기슭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얼마 전에 문을 연 대원사란 사찰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대원사는 예전 성철스님이 출가했던 지리산 산청 쪽의 대원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지 공통점이 있다면 조계종에 적을 둔 사찰이라는 것 하나 뿐…. 그런데 이 대원사가 조그만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나에게는 둘도 없는 보물덩어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원사가 나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은 내가 불교신자라서가 아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고, 그저 오래전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고 수십 년 동안 틈틈이 공부를 해 온 일개 서생에 불과하다. 불교가 나에게 소중한 것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불교가 담고 있는 심오한 철학적 깊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집 가까이, 내 달리기 무대 가까운 곳에 사찰이 들어선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 있는 일인데, 지난여름 대원사 앞마당 서쪽 편에 약수터가 생겼다. 한 달 이상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24시간 계속 샘물이 흘러나올 만큼 수량이 풍부한 약수터다.
그렇게 대원사 샘터가 새로 열리면서 창곡천을 흐르는 물의 발원지는 대원사 서쪽 편의 계곡에서 대원사 약수터로 바뀌어버린 꼴이 되었다. 위례신도시에 처음으로 문을 연 사찰에다가 창곡천에 첫 물을 공급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창곡천 상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e 편한 세상 테라하우스’에서 대원사까지는 경사 35도 이상의 제법 가파른 언덕길이 200여 미터 펼쳐져 있다. 지형적으로 창곡천은 탄천 합수 지점에서 2km 가량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다가 휴먼링 동쪽 입구부터 ‘e 편한 세상 테라하우스’까지 800m가 넘게 경사도를 더욱 높인다.
때문에 창곡천은 짧은 언덕 인터벌 훈련을 하건 긴 언덕 지속주 훈련을 하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마라톤을 해 오면서 내가 경험해본 여러 코스 중 언덕훈련하기에 최적의 코스라 할 수 있다. 이 창곡천 외에도 위례신도시 복판에는 성곽처럼 4.6km 정도의 산책로인 휴먼링이 조성되어 있다.
남쪽과 북쪽에 각각 창곡천과 장지천을 끼고 있는 이 직사각형 모양의 휴먼링은 다섯 군데 짧게는 100여 미터, 길게는 600여 미터 되는 언덕이 있어 굳이 구릉지대나 야산이 아니더라도 크로스컨트리 훈련이나 산악훈련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완성단계에 있어 달리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불편이 없다.
때문에 긴 평지 훈련을 빼놓고는 모든 훈련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마라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긴 평지 지속주 훈련을 하거나 LSD를 하려면 창곡천을 달려 탄천으로 나가면 된다. 내가 훈련(달리기)을 시작하는 창곡동 주민센터 부근 창곡천에서 탄천 합수지점까지는 2.4km 정도에 불과하다.
아무튼 지난여름부터는 이른 아침 달리기를 하며 이 대원사 오르는 가파른 언덕에서 가끔 달리기도 하고 창곡천에서 훈련을 마친 후 언덕을 걸어 오르며 뭉친 다리 근육도 풀고 약수도 한 잔 마실 겸 매번 대원사 약수터를 찾는다. 더구나 이 대원사에서는 약수 외에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여럿 있다.
매 번 갈 때마다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에 맞게 반야심경 독경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국악기에 음률이 실린 명상음악이 조용히 울려 퍼지기도 한다. 뜨겁게 몸을 달궜던 달리기 후 냉수 한 바가지와 함께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들떴던 마음을 한결 같게 차분히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달리기로 세척된 몸과 마음을 다시 한 번 거듭 비우게 한다고나 할까.
그 뿐만이 아니다. 대원사 앞마당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전망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좌로는 인릉산 줄기부터 시작하여 우측으로 관악산과 인왕산과 구룡산과 대모산과 북한산과 남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해발 100m도 안 될 것 같은 산기슭에 위치한 사찰이 그 같이 엄청난 풍경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마치 소백산 부석사에서 주변에 펼쳐진 장엄한 산줄기를 보는 것 같다.
그 여러 산 중에서도 압권은 시야 정 가운데에 자리 잡은 구룡산과 대모산이다. 두 개의 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봉우리가 하나같이 성숙한 여인의 아름답게 잘 발육된 젖가슴 같다. 이 세상의 중심은 여자이고 여인의 젖가슴이라는 듯이 모성을 자극하며 늠름하게 우뚝 솟아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산 중에 관악산과 북한산이 남성적인 산이라면, 구룡산과 대모산은 지극히 여성적인 산이다. 가을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거나 근육질의 남성적인 산보다는 여름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여성적인 산이 좋다. 그래서 구룡산과 대모산은 이 가을에 쓸쓸한 남자라면 가까이 다가가서 안기고 싶은 산이다.
대원사 앞마당에 오를 때마다 이런 기막힌 풍광을 즐길 수 있으니 어찌 이 가을 매일 매일의 달리기가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이 신도시에 오게 된 것도, 창곡천과 휴먼링에서의 달리기가 대원사까지 확장되며 연결된 것도, 나의 마라톤을 관장하는 그 누군가의 주도면밀한 기획에 의해 하나하나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내 마라톤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고 또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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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 (2018-10-01 1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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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우리들에게는 달리기하는 장소가 거주요건중 최우선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도 지난 봄에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집값이 다소 비싼 곳으로 무리를 하면서까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를 한 최고의 이유는 달리기에 최적인 곳을 오래전에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장점을 충분히 이용하면서 만족스럽게, 날마다 맘껏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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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ㅅ (2018-10-01 14: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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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만으로도 그곳으로 이사가고 싶어집니다.
선배님 글을 읽는 순간 불교에서 가르치는 種德收福 사자 성어가?
평소 베푼덕 많아 당연히 받으시게 되는거라 믿습니다.
요즘 같은 좋은 시절이 러너에겐 가장 행복한 시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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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런 (2018-10-01 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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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후기에 기록같은거
올리시지 말고 펀런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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