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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산 대종주 2편 멀고도 험한 능선길
이정범  2021-06-17 11:15:07, H : 3,879, V : 224


                             덕유산 대종주 2편, 멀고도 험한 능선 길

덕유산 대종주 길은 전북 장수 쪽의 육십령에서 시작하여 무주 시내 남대천이 흐르는 무주교까지 48km나 이어져 있는데, 크게 두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할미봉 서봉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동엽령 중봉 향적봉 설천봉까지가 전반부이고, 설천봉부터 검령 두문산 892m봉 734m봉 단지봉 치목재(터널) 적상산 향로봉 오동재 640m봉을 거쳐 무주 시내 무주교까지가 후반부이다.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조금 더 길고, 전반부는 등산로가 헷갈리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지만, 후반부는 적상산 일부 구간을 빼놓고 등산이 허용되지 않는 비법정 탐방로이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오래 끊긴 길은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지워져 길의 기능이나 지위를 거의 상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 왜 후반부 대부분의 등산로를 폐쇄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덕유산을 관리하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의 인력이나 예산이 모자라서인지, 아니면 국립공원 등산로로서의 경관이나 가치가 떨어져서인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끊긴 산길은 낙엽이 쌓일 대로 쌓이고 풀과 나무들이 들어서서 사람의 길이라기보다는 산짐승들의 길에 가까웠다. 능선 곳곳에 멧돼지 똥이 즐비했다. 군데군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등산 리본이 있어 길을 열어나가는 데 있어서 상당 부분 도움이 되기는 하였으나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곳은 아주 멀찌감치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GPS나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할 때가 많았다. 길을 찾는데 등산로 리본과 GPS, 동물적인 감각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했다.

전반부는 내가 가야 할 길이 내 앞으로 스스로 알아서 다가오는 느낌이었지만 후반부는 나와 아들이 낙엽이나 잡목에 덮여 있어서 보이지 않거나 희미한 길을 보물 찾듯이 발굴해내거나 개척해나가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우리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고,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가고 있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잠시 길에서 이탈되었다가 다시 본래의 길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얼마나 시신경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등산로를 열어나가는데 골몰했는지 단지봉 구간을 지날 때는 갑자기 바른쪽 눈이 쓰라렸다. 맨 처음에는 눈에 티끌 같은 것이 들어갔거나 관목 숲을 헤쳐나가다가 눈이 무엇인가에 살짝 스친 줄 알았다. 그런데 몇십 분 후에 통증은 사라졌고, 나중에 대종주를 끝내고 무주 모텔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산행하며 아팠던 바른쪽 눈과 함께 왼쪽 눈도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덕유산 대종주를 한 어느 산꾼의 후기에는 별다른 등산로 이탈 없이 산행을 했다는 내용도 있고, 아들에 의하면 어느 유명한 산꾼은 그 덕유산 대종주를 13시간(?)에 완수했다고도 하니 그들은 산이나 길을 읽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와 아들은 등산로를 크게 이탈하여 한꺼번에 몇십 분을 헤맨 적은 없지만, 십여 회 정도 잠시 길을 잃어 다시 등산로를 찾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그렇다고 비법정 탐방로의 대부분이 길을 찾기 어렵거나 험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길은 모습이 분명하면서도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활엽수 낙엽이나 솔잎이 걷거나 달려도 좋을 만큼 쌓여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 길을 걸을 때는 너무 행복했다. 삶의 어느 순간 너무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는 분명히 그 행복에 앞서 너무 힘든 시간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가 느낀 행복감은 그가 앞서 겪은 고통이나 어려움이나 고난에 대한 신의 보상이기 때문에...

구간 구간 그런 길을 행복하게 걸으면서 행복은 아픔이나 고달픔이나 괴로운 감정과 별도로 독립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칠고 힘든 길이 있기 때문에 부드럽고 편안한 길도 같이 이어져 있듯이, 힘들거나 괴로운 마음이나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를 치유해주기 위해 행복한 마음이나 감정도 같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함께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길, 세상의 그 어떤 삶도 펀안함이나 행복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고통은 최소화하고 행복은 최대화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할 뿐이다.

후반부의 등산로가 워낙 분명하지 않은 구간이 많아 덕유산 대종주를 하는 산꾼들은 무박으로 한 번에 하기보다는 두 차례로 나눠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한 번은 육십령에서 시작하여 설천봉까지, 또 한 차례는 설천봉에서 시작하여 적상산 향로봉을 거쳐 무주교까지...

그런데 오동제에서 직진하여 640m 봉을 거쳐 무주교까지 가지 않고 오동제에서 우측 무주 당산마을로 하산하는 길도 있다. 마을까지 3.5km이니 무주교까지 직진하는 코스보다 2km 정도 짧다. 그쪽 짧고 편한 길을 택하여 덕유산 대종주를 마감하는 산꾼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번 덕유산 대종주 산행에서 설천봉 이후 구간에서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적상산 법정 탐방로에서만 중년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 두 명만 보았을 뿐 나머지 구간에서는 사람을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법으로 정해놓지 않은 비법정 탐방로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등산객의 접근이 어려운 곳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법으로 정하지 않은 탐방로는 등산 중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해도 도움을 청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발각될 경우 과태료 처벌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의 위험성과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덕유산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은 설천봉에서 검령 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아예 폐쇄하였고, 적상산을 지나 향로봉에서도 오동재로 향한 등산로를 목재 울타리로 막아 놓았다.

그래도 굳이 덕유산 대종주를 하겠다면 그런 위험이나 고생을 각오하고 그런 장벽들을 돌파해야 한다. 사실 도전이란 명분을 걸고 하는 모험이기는 하지만 덕유산 대종주는 사전에 그러한 위험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어디서 어떠한 사고나 낭패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이번 덕유산 대종주를 위해 한 달 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장거리 트레일 런을 하였다. 한 번은 수서역을 출발, 대모산 구룡산 청계산 인릉산을 거쳐 성남시 신촌동으로 하산하여 세곡동을 거쳐 내가 살고 있는 위례신도시 집까지, 또 한 번은 분당 오리역을 출발 불곡산 맹산 검단산 청량산을 거쳐 역시 내가 살고 있는 집까지... 두 번 모두 5~6시간이 소요되는 30km 가 넘는 장거리 훈련이었다.

이번 대종주 산행에 있어 나의 최종 목표는 물론 아들과 함께 무박으로 48km 산행을 완수하는 것이었지만, 최소한 산행 중 체력이 달리거나 방심 및 부주의로 부상을 당하여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설천봉 이후 비법정 탐방로에서 길을 열어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대종주에 앞서 실시한 두 차례의 산악 장거리 훈련은 이번 대종주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데 커다란 디딤돌이 된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발견은 아니지만 이번 대종주를 하며 다시 확인한 사실, 덕유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제각기 그들의 체력이나 의지나 용기로 감당할 만큼의 코스나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날 새벽 비슷한 시간대에 육십령 쪽에서 산행을 시작한 산꾼들도 두 등산 단체에서 버스 3대(?)로 올만큼 많았는데, 대부분은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할미봉 서봉 남덕유 향적봉을 거쳐 무주구천동으로 하산하는 육구종주가 목표였지만, 일부 몇 명은 육십령이 아닌 영각사에서 출발했다. 영각사에서 시작되는 덕유산 종주 산행은 할미봉과 서봉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덕유산으로 오르기 때문에 육십령에서 오르는 코스보다 5km나 짧다. 나도 한 30년 전 아내와 같이 덕유산 종주를 했을 때는 영각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또한 이른 새벽에 랜턴 불을 밝히고 육십령이나 영각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박으로 덕유산 종주를 하러 온 사람들이다. 산행 중 돌발적인 사고나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남덕유만 오르고 하산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남덕유를 지나 향적봉이나 설천봉까지 덕유산 주능선을 걷다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남덕유를 지나 삿갓재 대피소에만 이르러도 그곳에서 1박하고 남덕유쪽으로 하산하려는 등산객이 그 이른 시간에도 몇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전날 구천동을 출발 향적봉을 오른 다음 이곳까지 와서 하룻밤 묵었을 것이다.

무룡산 동엽령 중봉까지는 등산객들을 아주 띄엄띄엄 만날 만큼 호젓한 산행을 하다가 향적봉에 이르면 풍경이 확 달라진다. 향적봉과 설천봉 일대는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등산객과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들로 제법 북적였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노약자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무주 구천동을 출발 백련사를 거쳐 덕유산 향적봉만 오르고 곧바로 다시 구천동쪽으로 하산하는 사람들도 개중에는 얼마 섞여 있었을 것이다.

덕유산 육구종주 또한 무박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향적봉 대피소나 삿갓재 대피소에서 1박하고 2일에 걸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덕유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날씨 좋은 주말이면 하루에도 수천 명 되겠지만, 그중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향적봉만 오르고 하산하는 사람들, 세 번째로는 토요일 일요일 1박 2일에 걸쳐 덕유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 네 번째로는 당일 무박으로 덕유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 순으로 많을 것이다.

그 외에 토요일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향적봉 대피소에서 1박한 다음 다음날인 일요일 설천봉에서 적상산을 거쳐 무주시내로 하산하는 대종주 등산객이 더러 있을 수도 있고, 오늘 나와 아들처럼 아예 무박으로 대종주를 하는 사람도 아주 드물게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체력이나 등산능력, 모험심, 도전의지에 따라 덕유산에 오른 사람들의 분포도를 그린다면 아마 삼각형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맨 밑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 맨 위 정점에는 무박으로 48km 대종주를 한 사람들...운 좋게도 나와 아들은 아마 그 삼각형의 정점에 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자평해 본다. 그 정점에 선 사람은 지금까지 대종주 길이 열린 이래 수십 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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