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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시한부 마라토너
박복진	2015-04-09 10:52:17, H : 4,949, V : 209

많이 불안하다. 안 되는 날은 이래, 저래 안 되는 게 많다. 아침 출근
을 위해 넥타이를 맬 때, 두 번을 고쳐서 매어도 넥타이 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번은 겉의 넥타이 길이가 너무 길어서 허리띠를 타고
넘어서도 한참을 더 남아 보기에 안 좋았다. 그래서 다시 매었지만,
이번에는 넥타이 속 끈 길이가 안타깝게도 겉끈 길이보다 손톱 길이만
큼 길게 삐죽하니 나와서, 다시 고쳐 매는 수고 없이 그냥 버텨볼 요량
으로 목 밑 매듭을 조였다, 풀었다 해보지만 역시 허사였다. 다시 매었
다.

낮에 서울의 동쪽 끝 큰 병원에서 MRI를 찍었다. 이것저것 복잡한
소도구들을 내 발목 이곳저곳에 갖다 대며 누워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그 MRI 기사분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 찍는 이 MRI 사진은
이미 수술을 전제로 하고서 찍는 것으로써, 어떻게 살을 헤집고
들어가서 어디를 수술할건지를 결정하는 참고사진용이다! 라고
말했다. ‘ 선생님,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나가셔서
접수대의 간호사에게 월요일 수술을 취소하시고 그냥 가시지요.’
라고 속으로 요행을 바라는 내 자신이 측은했다.

현실은 나의 바램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의사는
물어 볼 것 없이 예정대로 수술을 하자고 할 것이다. 이 사진 보세요,
내가 그랬잖아요. 일상적인 활동까지는 석 달 정도 걸립니다. 물론
뛰는 것은 그 다음 경과를 보아야 하고요, 라고 말하며 수술 일자를
알려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MRI 사진 판독결과를 토대로
내 수술을 집도하기로 되어있는 정형외과 담당의사와의 면담을
위해 대기실에 있던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같은
병원의 정형의로 근무하는 친구를 찾았다. 어떻게 사정을 해봐야겠다.
이렇게 연약하게 앉아서 비오는 날 남의 밭 고춧대 바라보듯 해서는
안 되겠다. 내 앞에 닥쳐온 내 운명에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
했다.

친구가 진료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나를 맞아준다. 나는 말했다.
“ J 교수야, 한창 진료 중에 정말 미안한데 너무 답답해서 말이야.
어차피 80살, 90살 되면 뛰지 못하게 되는데, 지금 수술하면 이제
평생 뜀질하고는 끝나게 된다고 하니 나로서는 무지 심각 하거든.
아파도 찔룩찔룩 뛸 수만 있다면 그냥 참고 이대로 뛰고, 수술은
90살 그 때 가서 하면 안 될까? 그냥 쩔뚝, 쩔뚝이로 뛸 수만 있으면 .. ”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 이 친구야! 100킬로라니. 그거 서울, 대전
아닌가? 거길 차타고 가지 왜 뛰어? 지금 이런 상태라고. 뼈가 조각
나서 들고일어난 게 안보여? 심각해! 다른 운동으로 바꿔.” 나는 또
말했다. “ 미안해.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 또 미안하지만 지금 뛰지
못한다는 말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말은, 쩔룩쩔룩
아파도 좋으니, 아니 지금부터는 조금씩만 뛸 거니까, 수술만은
안하고 어떻게 안 될까? 수술하면 이번에는 다시 뛰는 것조차 장담
못한다니, 내가 어떻게 하겠나? “ 여기까지 와서는 나는 나 혼자의
감정에 북받쳐서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난
항상 무엇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세포 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사정하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J 교수는 또 다시 마우스를
끌어와 손놀림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금 찍은 수 십장의
내 오른 발목 부위 사진이 지나간 6.25 동란 자료사진처럼 흑백으로만
빠른 속도로 휘익, 휘익! 하고 지나갔다. 두 번에 걸쳐 사진 탐독을
마친 친구 J 교수는 다시 마우스를 밀어놓고 두 팔을 자기 머리
뒤통수에 깍지 끼더니 말을 한다. “허이, 참! 답답하네... 알았어.
내일 담당 L 교수하고 상의해 보고 내가 전화해 주지... ”

그리고 그 다음 날이 오늘이다. 낮에 강남의 삼성동 즈음 길을
걷다가 도로변의 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멍하니 커피를 들고 있을
때 손전화가 울렸다. 조마조마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리던
바로 그 전화였다. “ 네. J 교수님의 친구 분이라고요.. 어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뛰고 싶으세요? 일요일 100키로 울트라도
뛰셨다고요? 뛸 때 안 아팠어요? 그러면 이렇게 하기로 하지요.
일단 수술은 두 달 정도 뒤로 미루지요. 두 달 후 다시 저에게 외래로
오세요. 그 때 괜찮으면 다시 두 달 후 다시.. 이렇게 두 달 마다
저에게 오세요. 일단 월요일 수술은 미룹시다. ”

커피숍을 나오며 손전화를 꺼내 아내를 불렀다.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몹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일요일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을 뛸 때 안 아팠다고 거짓말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 영희야! 나야. 수술 안 해도 된대. 그런가봐.
정말이라니까! ” 안 아팠다고 한 거짓말이 시한부 두 달을
벌어주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안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연장해가는 그 두 달이 지금 달리기 15년째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


사실 (2015-04-09 13:03:43) 적인 본인의 글이라 진정성이 담겨있어 읽기 좋았는데 중간부분 panty부분의 서술은 읽기 불편했습니다 일종의 성희롱같은 느낌 여자런너입니다


성희롱 (2015-04-09 13:08:04) ㄴ 남자인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얼마 전 나이드신 다른 분도 작성글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데, 본인들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남들의 느낌은 다른겁니다. 국회의장이나 사단장 했던 양반들이 하는 실수와 별다르지 않다는 걸 나이가 들수로 못느끼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본인의 뜻이 왜곡됐다고, 그런 뜻이 정말 아니었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는겁니다.


k (2015-04-09 13:18:02) 남자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지만 마라톤, 수술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간호사 팬티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 그러네요.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


달림이 (2015-04-09 13:25:47) 남자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네요.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요. 춘포님.. 한번씩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 내시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풋사과 (2015-04-09 13:39:16) 전 좀 생각이 다른데요.....저 간호사는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글쓴이가 간호사에게 어떤 의사표현도 하지 않았고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 간호사의 신상에 대해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느낀대로 쓴 수필일 뿐이고..문학장르인데 저정도 표현으로 읽는 사람이 불쾌한 건 뭐;; 소설 읽으실 때도 불쾌하시다면야 어쩔수 없지만......


글을 (2015-04-09 13:47:34) 쓸때는 그 주제에 맞게 써야 독자가 감동 내지는 수긍하는 겁니다. 평소 제가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분이 한참 벗어난 얘기를 해서 도대체 무슨 의도로 글을 썼는지 모를 뿐더러 기분도 좀 이상해지네요. 미안합니다만 그 상태서 울트라는 접으시고 풀만 뛰셔도 될듯 한데 무리하실 필요가 있는지요? 건강과 즐거움을 얻기 위한 운동 아닌가요?


풋사과 (2015-04-09 13:48:39) 성희롱이란건 피해자가 있어야 합니다. 저 간호사가피해자가 되려면 1.글쓴이가 간호사에게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고 간호사가 수치심을 느끼거나 2.간호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음을 타인에게이야기한다거나 해서(이런곳에 글을 쓴다든지?) 그 사실이 본인에게 알려져서 수치심을 느낀다든지 이런게 있어야 하는데...사실 이 글에서 저 간호사는 거의 가상의 인물이나 마찬가지고, 글쓴이가 혼자 그리 생각했었다...는 그 뿐입니다. 글을 읽고 제3자가 불쾌했다고 성희롱의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죠


생각 (2015-04-09 13:49:12) 우리는 가끔 관념을 글로 표현하곤합니다. 때로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야설이나 외설이 포장되기도 합니다만, 이 정도의 글을 읽기에 불편하다고 하면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이 글을 수필의 한 장르라고 읽어주시면 엄청 편안할거라는 생각인데, 평소 제가 다소 아쉽게 생각하는것이 우리 런너들은 이런 부분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생경하다는 느낌입니다.


풋사과 (2015-04-09 13:51:44) 문학의 영역에 있는 글에 대해서조차 지나치게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면 가식과 위선에찬 글만 남게 될 것입니다.


생각 (2015-04-09 14:02:00) 풋사과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합니다. 좀더 격한 표현으로 아니라고 하고픈데.... 정말 이건 아닙니다ㅠㅠ 위 글을 읽고 성희롱, 불쾌감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데 대하여 할 말을 잃었습니다. 풋사과님이 설시하신대로 특정인을 두고 언급하신것도 아니고 간호사라는 신분을 폄하내지는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는글도아니라는 사실을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솔직히 이 글은 신문에 연재되는 다소 선정적인 글보다 소박한 글입니다.


박복진 (2015-04-09 14:13:08) 위 두 가지 의견을 주신 모든 분들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제가 작성한 글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정이 안되어 웹 마스터 분에게 이 부분 글의 삭재를 요청하는 이 메일을 보냈습니다. 의견을 주시고 받으시고 하는 이 장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으흠 (2015-04-09 14:48:04) 80~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웃으며 넘어 갔지요. 근데 요즘은 이 수준이면 성희롱으로 즉빵입니다.그리고 별 감흥도 없는 식상한 묘사네요.


수염할배 (2015-04-09 16:59:07) 허허허~ 15년 째? 그럼, 안아프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고.. 글을 재미있게 하려고 한 거 맞지유? 허허허~


혹시 (2015-04-09 19:13:12) 15년 전에도 우리나라 간호사가 바지 압었나요?


풋사과 (2015-04-09 20:56:42) 사실관계를 떠나서 위에분 예리하시네요#ㅎㅎ


애독자 (2015-04-10 08:53:17) 글의 제목이 낯이 익은 듯하여 혹시나 하여 님의 글을 검색하여 보니 역시나 같은 제목의 "원글"(구게시판, 2004.6.22)을 발견. 의아 한것이 그당시는 썬플만 존재. 똑같은(?) 내용의 글에, 1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예리한 비평!.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느낍니다. 만약 처음 글을 옮겨(?) 왔을때, 그 사실을 밝혀다면(예, 이글은 XXXX년도 제글을 다시...)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가님의 신선하고, 좋은 글 계속 기대합니다.


어이없슴 (2015-04-10 09:50:13) 애독자님의 댓글이 아니였다면 현재 일어난 상황이라 판단하였을터... 박복진님의 인품을 깨닭게 해주네요. 님!~ 여기 방문자들을 " 물 "로 생각지 말아주세요.


원문의 (2015-04-10 10:11:05) 간호사의 속옷 재봉선이 없어졌어요...위에 댓글이 뭔 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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