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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금나무와 직박구리 |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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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05:55:14, H : 4,824, V : 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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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나무와 직박구리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소공원이 있다. 가운데는 농구 코트와 어린이 놀이 시설이 있고 주변에는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다. 이 나무숲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는데, 마가목과 능금나무도 있다. 이 마가목과 능금나무는 12월이 되면 나뭇잎을 다 떨어지고 붉은 열매만 남아 있다.
같은 붉은 열매이긴 하지만 마가목 열매는 옅은 적색이고, 능금열매는 짙은 적색이다. 모양과 크기도 다르다. 마가목 열매보다 능금 열매가 훨씬 크다. 그런데 이 두 나무의 열매는 직박구리가 하나같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마가목 열매는 겨울이 지나기 전에 다 떨어지지만, 능금나무 열매는 색깔이 까매지도록 겨울 지나 이른 봄, 꽃이 필 때까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데도 나뭇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먹고 있는 직박구리를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다. 한겨울에도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그 악착이, 열매를 붙잡고 있는 나무의 사랑인지, 아니면 어미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열매의 안타까운 몸짓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 악착이 경외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이 능금나무는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오고,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친구다. 마라톤 훈련 직후나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마라톤 경기 후 귀가하기 전에 꼭 들리기 때문이다. 그 능금나무에서 몇 발자국밖에 안 되는 곳에 윗몸 일으키기 등 근력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있다. 운동기구에서 근력운동을 할 뿐만 아니라 운동기구 옆에서 마무리 스트레칭도 해 준다.
이 능금나무는 세 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런데 세 그루 모두 해거리를 심하게 하여 한 해 꽃을 많이 피우고 가지마다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면, 다음해에는 겨우 몇 송이의 꽃을 피울 뿐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능금나무 세 그루가 매년 동시에 해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해를 달리하여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그루 중 어느 해는 한 그루만 꽃과 열매를 많이 생산할 때도 있고, 어느 해는 두 그루가 가지마다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때도 있다.
능금나무 꽃은 하얀 색깔인데, 이른 봄에 꽃이 만개한 능금나무를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벚꽃이나 배꽃과는 다른 이미지다. 화사하면서도 매우 청초한 여인을 연상케 한다. 아,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그냥 그 하얀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고 싶을 때도 있다. 청초하게 아름답고, 서럽게 아름답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해 가을에 그 세 그루 나무 중에 한 그루가 탐스럽게 익은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소공원에 거의 행인이 없는 이른 새벽 열매를 두 되 정도 몰래 따 술을 담근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 나무 열매가 마가목 열매인 줄 알았다. 마가목 열매를 술에 담가 마시면 그렇게 향기도 좋고 맛도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소공원의 나무를 관리하는 담당 공무원이 그 나무 밑동에 마가목이란 명찰을 걸어놓았던 것이었다.
그 술은 다음해 5월 석가 탄신일 전날인 바로 위의 형 생일날 가져갔다. 나는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막걸리를 마셨는데, 형이 맛있다고 하기에 통째로 주고 왔다. 그런데 그 나무 열매를 딴 죄 때문일까. 그 해 늦가을 개최된 메이저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매우 힘든 경기를 치르고, 기록도 형편없이 나왔다. 또한 그 마가목 나무 명찰은 어느 날 가보니 옆의 진짜 마가목에 옮겨져 있는 것이었다.
12월 들어 유난히 능금나무에 자주 찾아오는 직박구리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직박구리는 능금나무가 낳은 자식이 아니지만, 능금나무가 품고 기르는 자식이 아닐까 하고…. 또한 능금 열매는 직박구리가 유난히 좋아하는 열매이거나, 더 범위를 좁혀 12월의 열매가 가장 맛있기 때문이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나무에 마땅히 먹을 열매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어쩐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다. 능금나무의 마음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겨울 지나 꽃이 피는 4월이 되도록 추위에 얼고 얼어 까맣게 색깔이 변한 열매. 그것은 집 나가 오래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며 타들어간 어미의 마음일 수도 있고, 자식이 먼 길에서 돌아오도록 켜놓은 등불일 수도 있고, 돌아와서 먹으라고 차려놓은 밥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런 생각을 가지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나뭇가지에 앉아 능금나무 열매를 따먹고 있는 직박구리와 능금나무를 바라보면 눈물겹다. 아니 애처롭다. 능금나무와 직박구리는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오히려 나를 애처롭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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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2014-12-16 09: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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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정범씨를 처음으로 일요일날 전마협송년회에서 뵙는데 전 하도 글을 심도 있게 잘 쓰셔서 모습이 도인 처럼 생기실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달림이 모습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 건강한 하루되세요 감기조심 하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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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온의시인 (2014-12-16 14: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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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감성이 풍부하시네요.
마온의 시인으로 추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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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2014-12-16 14: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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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댓글 주신 '글'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마협송년회에서 저를 보셨다는 것은 뭔가 혼동이 있으신 것은 아닌지요. 저는 그런 자리에 간 적이 없거든요.^^ 혹시 다른 자리에서 저를 보신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전마협송년회에서 본 이정범은 제가 아닌 동명이인이든가....아무튼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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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2014-12-16 15: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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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째 댓글 주신 '마온의 시인"님! 그렇게 어여삐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것은 제가 아니라 님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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