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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이전 문제없나?  
VaporFly 조회 : 367, 추천 : 15

주제가 다소 무겁다할지라도 우리의 Vital interest 가 걸린 사안이므로 양해하시고 일독을 부탁드립니다.

현재 문재인 정권은 서울 도심에 주택 공급은 하지 않고, 부동산거래세를 올리고, 대출을 억제하여 부동산을 가격상승을 잡겠다는 시도를 하였으나, 서울 집값은 대책이 나올때마다 더 올라가니 이제는 그 일환으로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발상이 옳은 것인지를 한 번 따져 보자.

나는 노무현 정부 때 충청도로 수도를 이전한다고 했을 때 본능적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라고 느꼈다. 다행이 헌법재판소에서 서울을 관습법상의 수도라는 논리로 수도 이전을 부결시켰다. 이후  내 생각이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가를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여 삼국시대 수도 이전 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와 중국의 수도는 시대별로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를 살펴 보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살펴봐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유럽중의 이태리를 둘러봐도 전부 북부가 잘 살고 있다. 남부는 대체적으로 가난하다, 이태리가 그랬고 미국도 남북전쟁 당시 북쪽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했다. 우리 한반도는 북이 공산주의 독재, 인민억압을 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체제를 선택한 남쪽이 부유하고 북이 가난하다. 이건 지리적 특성이 어니라 정치적 체제 선택에 따른 차이다.


백제 수도는 처음에 위례성(한성,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 공원 부근)에서 , 웅진성(공주)으로, 다시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했다.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한지(BC18~AD475)  493년만인 , 475년 개로왕 때 고구려 장수왕의 3만군의 침입을 받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당하자, 그의 아들 문주왕이 웅진성으로 천도했고. 그 후 성왕 때 보다 넓은 터전을 찾아 사비성으로 63년만에 천도해서 122년 만인 660년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망했다.

백제는 한성을 잃고 다급하게 도읍을 위례성에서 약 130여 km 떨어진 남쪽 웅진성으로 천도하였으나, 웅진성에서 뜻을 펼치기에는 부족하다 싶어 또다시 남서쪽으로 천도하여, 성왕 때 말고는 힘 한 번 크게 써보지도 못하고 고만고만하게 유지되다 망했다.

백제 말에 의자왕은, 구국의 충정으로 목숨을 걸고 간하는 성충과 흥수의 말(주1) 은 듣지 않고 간신배의 말만 듣고 충신을 투옥하고, 귀양을 보내고, 자식 41명을  최고 품계인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와 왕실로부터 마음이 돌아서게 했고, 나당 연합군의 침공을 피해 웅진성으로 찾아온 의자왕을 웅진 성주 예식이 체포하여 당에 투항한 사례를 볼 때, 집권 초기에 비록 선정을 펼쳤다 하더라도, 후기에는 실정(失政)한 것으로 보인다.

사비성으로 천도 후에 안정된 정권을 바탕으로 성왕 때 처음으로 고토 회복 전쟁을 벌여, 한강 하류지역을 잠시 회복했으나, 이태만에 진흥왕에 내주고, 이듬해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면서 고토 회복의 불씨는 사그라지고, 나라의 운명은 어찌되던 자신들의 권세만 추구했던 토호 세력들의 발호에 왕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의자왕대에 합천 대야성을 취하여 잠시 불꽃이 타오르는 듯 했지만, 부여 도성이 안전하다고 여겼는지 방심해서, 불을 살리지 못하고 스러졌다.

한성 백제 때 임진강을 경계로 고구려와 접했는데, 남으로 천도 후의 백제 영토는 현 충청남도 서산, 당진을 북쪽 경계로 하고, 동으로 충북 청주, 옥천, 전북 무주, 장수, 남으로 섬진강 서쪽 지역으로 좁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영토 방위에 사활을 걸고 국론을 한데로 모은다면 영토의 보존 및 확장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수도가 침략 세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있게 되면, 경계심은 점차 누그러지고 집권 세력간의 내부 권력 다툼으로 인하여 분열되기 쉽상이다.

산라도 통일 이후 북방 진출의 원대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왕실이 동쪽 변방 경주에만 머물다 하대에 왕권을 두고 왕족간에 피 터지는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태종무열왕의 9대손이자, 증조부 이찬 김주원이, 선덕왕 사후 왕위 계승 후보 1순위 임에도 상대등 김경신(38대 원성왕)의 세력에 밀려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손 김양은 왕실내 권력 장악의 복심을 감추고 정국을 예리한 눈으로 주시하다, 김우징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청해진으로 가서 장보고 대사의 군사 5천을 빌렸는데, 그때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들이겠다고 약속을 했다.

정변 성공 후 신무왕 김우징이 3개월 만에 죽자 그의 아들 경응(문성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 즈음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들이는 일을 조정에서 논의하였으나, 장보고를 해도인이라고 하며 신분을 문제 삼아 귀족들이 반대하여 국혼이 무산되었다. 청해진에서 독자적인 군사 1만을 보유한 장보고가 국혼이 무산된 일을 빌미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여, 김양이 자객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살해하는 등 왕권을 둘러싸고 피튕기는 권력 투쟁이 일어났으며, 그렇게 되어 왕권은 약화되었다.

왕권이 약화된 틈을 타서 귀족들이 발호하여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하였고, 땅을 빼앗긴 농민은 노비, 도적이 되어 나라의 세수는 줄어 들었다. 세수 확보를 위한 과도한 징세가 농민 봉기의 원인이 되었고, 왕권은 지방에 미치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지방 호족들이다. 그들은 재력에 군사력까지 갖추어 지방 백성들로부터 세금까지 징수하였다. 이런 바탕으로 후삼국 시대를 맞았고 힘이 극도로 약화되어 숨만 붙어 있던 신라는 결국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며 운명을 마쳤다.

작고한 작가 최인호씨가 한국 역사상 유일한 코스모폴리탄이라고 극찬했던 장보고는 서,남해의 해적을 소탕하여 뱃길을 안전하게 하였으며,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을 근절하고, 당과 왜의 중계무역과 직접무역을 관장하여,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였고, 그를 바탕으로 산동반도에 적산법화원, 전남 완도, 제주에 법화사의 사찰을 세워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고, 중생을 제도하는데 힘을 힘을 기울였고, 청해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해상제해권을 장악하여 해상왕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완도가 낳은 국제적 인물이다.

그런 장보고가 신라 귀족의 정치적 야심에 의해 안타까운 희생을 당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신라로서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장보고의 군세가 막강하여 권세를 잡고자 하는 왕도의 귀족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음 또한 간과하지 못할 부분이라 하겠다.

신라는 문무왕 이후 왕권을 강화에 성공한 강력한 군주 신문왕 때서부터 통일 국가를 새롭게 운영하는 차원에서 변방에 치우친 700여년 묵은 왕도 경주를 떠나 한양으로 전략적으로 천도해서, 장기적으로 북진 정책을 추진했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변방에서 사치와 향락에 빠지지 않고 새롭게 국가를 경영할 수 있었다고 본다.

백제의 남쪽 천도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과 그 이북을 점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진흥왕은 한반도 변방 동남쪽에 머물던 신라의 영토를 한강 유역과 그 이북 포천,가평,춘천,화천,양구와 함경도 마운령, 황초령까지 넓혀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 비문에 “삼가 옛일을 생각건데 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건하였다. 그는 북부여에서 났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다. ~ 중략~, 부여의 엄리대수라는 강의 나루에 이르러 ,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따님을 어머니로 하는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엮고 거북이를 띄워라 라고 소리치자 갈대가 엮어지고 거북들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을 건너,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라고 되어 있다.

고구려는 BC37년 홀본성에서 추모왕이 나라를 창건하고 제2대 유리왕 때 남쪽인 현 길림성 집안현 국내성으로 천도 했다.(AD3~AD427).
장수왕 때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평양성으로 천도해서(427년) 241년만인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했다.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운명을 달리했지만 만주에 국내성을 수도로 하여 서쪽의 위나라, 후연 등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나라의 기틀이 잡혔다.

평양성으로 천도한 장수왕 때 부왕 광개토태왕이 개척한 영토와 남진정책으로 그 영토가 최대치로 확장되어 전성기를 맞았으나, 그 이후 수,당의 연속된 침입으로 국력이 약화되었고, 영류왕 의 당에 대한 지나치게 굴욕적인 사대정책으로 인해 권력층에 내분과 갈등이 생겨서 민심이 이반되었다. 이를 기회로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켜 반대파를 일소하고 무능한 왕을 죽였다. 새왕을 옹립한 연개소문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연개소문 사후 막강한 권력이 아들 3형제에게 세습되었고,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각각 갈라져 권력이 분산되었다. 그 분산된 권력이 나당 연합군의 침략에 분열되어 668년에 망했다.

장수왕의 남진 정책은 백제와 신라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영토가 좁아진 백제, 영토가 제일 작은 신라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고구려 남진 초기에는 나제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고구려에 대항했으나, 진흥왕이 한강 하류지역 백제땅을 공격하여 신라땅으로 만들어 버리자 동맹은 깨어진다. 이에 성왕은 백제,왜,대가야와 연합하여 태자 여창으로 하여금 충북 옥천 신라 관산성을 기습 공격하여 건곤일척의 복수전을 벌인다. 초기에는 기습으로 백제가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진흥왕의 발빠른 대처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 장군의 한강 방어군을 긴급 투입하니 전황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거듭된 전투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태자를 격려하러 관산성으로 가던 성왕은 김무력 장군이 심어둔 매복군에게 피살되고, 그 시신을 북청(관청이름) 계단 아래 묻어서 밟고 다닌다는 소식에 백제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복수심에 절치부심하던 백제는 의자왕대에 이르러서야 신라의 대야성을 침공하여 성을 함락시키고, 김춘추의 사위와 딸을 죽였다. 이를 안 김춘추는 가슴 깊이 원한을 품었고, 복수하기 위해 당을 끌어들여 백제를 망하게 하였다. 이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마저 정벌하였고, 승리한 당이 백제에 웅진도독부,  신라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에게 당의 관직인 계림대도독직을 내리고, 고구려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조선반도를 당의 지배체제로 만들어 버리자, 국운을 걸고 전쟁에 참여한 신라는 군사와 전쟁물자를 막대하게 쏟아 붓고도, 실제적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당의 속주가 되자, 문무왕은 계산에 착오가 있었음을 깨닫고, 당을 이 땅에서 몰아 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문무왕은 10여년 간에 걸쳐 당 군대의 군량과 의복등 보급품을 지원하고, 백제,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느라 백성과 나라 살림이 말이 아닐 지경임에도, 사즉생의 결단을 내려, 그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당을 상대로 7년간의 치고 빠지는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675년 9월 경기 연천군 매소성에 주둔하던 당의 20만 대군(삼국사기, 당 역사서 4만) 물리쳐 나당 전쟁의 결정적 승기를 잡는다. 패배한 당은 평양의 안동도호부를 이듬해 2월 요동으로 옮겼다.  676년 3월 토번(티벳족)이 침공하여 장안을 위협하자, 당은 토번 전선에 주력하면서 기가 한 풀 꺾였고, 676년 11월 기벌포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신라가 승리를 거두자 당은 이 땅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신라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었다.

장수왕의 남진 정책이 부메랑이 되어 고구려 멸망을 가져왔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그럴만한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장수왕의 평양천도 -> 장수왕의 백제 한성 침공 -> 한성 백제의 웅진 천도 -> 나제동맹 결성 -> 나제연합 고구려 한강유역 점령 -> 신라 한강하류 점령으로 나제동맹 결렬-> 백제의 신라 관산성 침공 -> 관산성 부근에서 백제 성왕피살-> 의자왕의 신라 대야성 침공-> 김춘추의 딸과 사위 피살 -> 김춘추의 복수심으로 나당동맹 결성-> 나당 연합 백제 침공 -> 백제멸망-> 나당연합 고구려 침공-> 고구려 멸망의 역사적 사건들이 마치 꼬리를 문 것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 출발이 장수왕의 남으로의 천도였다.

훈족의 서쪽으로의 이동이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나비 효과를 보인 것이다,

신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한가지를 꼽자면 지도층이 분열되지 않고 사이가 좋았다는 점이다.
신라 왕족과 가야 왕족의 혼인으로 맺어진 신라 지휘부의 김춘추, 김춘추의 처남 김유신, 김유신의 외조카 김법민은 그 결합이 공고했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는 지도층이 분열되어 외부의 침략을 받자 그 취약점이 바로 들어났고 그로 인해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지도층의 결합이 단단하면 뜻을 한 방향으로 모아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있으나, 분열되면 쉽게 무너진다.
이 역사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남쪽으로 수도를 천도한 두 나라 고구려 백제는 망했고, 진흥왕대에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한 신라는 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통일의 의의:
김춘추가 애초에 통일을 염두에 두고 외세를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벡제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처음에 고구려에 가서 군사지원을 요청했지만 연개소문이 거절하자, 왜로 건너가서 지원을 청했다. 하지만 역시 거절 당했다. 이에 김춘추는 당으로 가서 극적으로 군사지원을 이끌어 낸다.
그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다.

그저 백제를 멸하고 위기에 놓인 신라를 구해야겠다는 결심이 외세와 동맹의 발로였고, 백제, 고구려를 멸하고도 당이 약속대로 물러나지 않자, 당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대당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후세에서 말하는 통일이다.

만일 신라가 당의 지배 야욕에 굴복했더라면, 우리는 2,000년간 나라를 잃고 살았던 유대인처럼 살았을 것이고, 현재 우리는 중국어를 쓰는 중국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백제를 치기 위한 군사지원을 요청하러 고구려에 온 김춘추를 연개소문이 감금한 사례를 볼 때 그의 정치적 안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만일 연개소문에게 큰 꿈이 있었더라면 김춘추의 제안을 받아들여 백제를 멸하고, 그 다음 신라를 멸하여 고구려가 한반도 일통천하의 주인이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김춘추의 제안을 역이용하여 통일의 대업을 이룰만한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사학자였던 신채호, 박은식은 민족사관에 입각해서 신라의 통일을 외세를 끌어 들였다고 평가절하했는데, 이는 삼국의 시대적 배경을 헤아리지 않고, 일제 식민지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민족적 염원이 절실했던 시기의 관점에서 형성된 사관으로서, 균형 잡힌 사관으로 보기 어렵다..

신라에 의해 통일되기 전에 삼국은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고, 서로 살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는 적이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통일신라 이후에 함께 오랜 동안 같이 살면서 생겨난 의식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혹자는 국력과 영토가 제일 강하고 넓었던 고구려가 통일




청풍

시사/정치글은 시사게시판에서 작성해주세요.

그리고, 전문이 다 안 나오고 잘린 것 같네요.
20.07.26
10:16:28




VaporFly

전문이 실리지 않고 자꾸 잘리는군요.
수도 이전 문제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사안이므로, 이해를 돕고자 올린글이니 양해바랍니다.
20.07.26
10:36:59




청풍

글이 자꾸 잘리는 건
조치가 안 되나보네요.

글 작성에 많은 번거로움이 발생하고 있는데 안타깝네요!

VaporFly님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으시네요! 그점은 정말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07.26
11: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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