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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동네잔치 같은-춘천 숲길 달리기 대회에 다녀와서
이정범  2024-05-23 12:10:38, H : 1,333, V : 13


  시골 동네잔치 같은
    -춘천 숲길 달리기대회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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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이 대회에 간다
매년, 3월에 거행되는 서울 동아국제마라톤대회와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거행되는 서울 중앙마라톤대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참가한 대회일 것이다

동아와 중앙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이미 더 이상 참가하지 않고 있으니
최근까지 참가하고 있는 대회 중에서
앞으로도 가장 참가하고 싶은 대회를 꼽으라면
그 몇 개 중에 이 춘천에서 거행되는 숲길 달리기대회를 꼭 넣고 싶다

그러니까 동아와 중앙은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더 이상 참가할 일이 없는 과거형 마라톤대회가 되어 버렸고
춘천 숲길 달리기대회는 앞으로도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계속 참가할 현재진행형 대회인 셈이다

춘천 하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꽤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성이 매우 양호하다
수도권 전철망을 이용해서 대회장 가까이 굴봉산역까지 갈 수 있고
대회장은 그 굴봉산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400m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나 같은 노년 세대는 몇 번의 환승만 하면 그 먼 거리를 공짜로 갈 수 있다

양호한 접근성 외에도 이 대회의 장점은 많다
서울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로 갈아타고 몇 정거장만 지나면
시야 가득 5월의 녹색 숲이 펼쳐지고
대성리를 지나면서는 시원한 북한강 줄기도
바른쪽 창문 밖으로 간간히 펼쳐진다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그 어느 대회장을 오가는 길보다 압권의 절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절경에 정신없이 두 눈을 홀랑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내려야 할 굴봉산역이다

대회장은 말이 춘천시이지 전형적인 시골 동네 한복판에 있다
춘천 남산초등학교의 서천 분교다
매번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대회는
시골 동네에서 펼쳐지는 잔치집 풍경 같다
경기 후에 제공하는 먹걸이가 하나같이 소박한 것이
시골잔치스럽다

잔치국수에 두부 김치에 붙침개에 막걸리가 전부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시골 동네의 인심과 성의가 듬뿍 담겨 있다

그 외에도 참가비 4만 원에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기념품으로 잡곡 2kg짜리 한 봉지도 주고
경기 끝난 후에는 누구나 경품으로 최소한 질 좋은 타월 한 장도 받을 수 있고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특별히 전에는 가평 잣을, 작년부터는 잡곡을 주고 있다

대회 규모가 작은 것 쳐놓고는
참가자 입장에서 이토록 실속 있는 대회도 없다
이 대회에 침가하면
입은 입대로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온갖 호강을 누리게 된다

   2
평상시처럼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대회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오전 5시 20분쯤 집을 나선다

남위례역에서 오전 5시 41분 첫차를 탄다
남위례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는 상봉역까지는
두 번 환승하며 별 감흥 없이 지하를 달리는 조금쯤은 지루하고 답답한 길이다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본격적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상봉역 대합실에서 준비해간 떡 한 팩과 바나나 한 개를 먹고
오전 6시 53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전철에 몸을 싣는다

신내역을 지나며 멀리 북한산 줄기가
갈매역을 지나며 불암산 봉우리가 바로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수도 서울 북쪽과 동쪽을 그 우람한 근육질의 몸으로
든든히 지키고 있는 것 같다

퇴계원역을 지나며 창문 밖으로는
사람이 사는 집보다 산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고압적이고 거만한 아파트숲이 점점 드물어지고
낮은 주택들이 점점 많아지며 겸손한 자세로
나무와 산과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둥글둥글하고 몽긋한 봉우리들이
마치 평평한 대지가 피어 올리는 녹색 꽃봉오리 같다

매년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매년 느낌이 다르다
산천은 별 변화 없이 의구依舊한데
자연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시선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달라지는 새로운 맛에 이 길을 가게 된다

저 자연을 바라보며 내가 평화를 느낀다면
그 평화의 대부분은 저 녹색 숲과 바다가 생산하는 것이다
복잡한 것 속에서는 평화를 느끼기 쉽지 않다
녹색 숲이나 망망대해 같이 두 눈을 시원하게 적시는
지극히 단일한 색으로 통일된 단순한 공간에 내 몸이 놓여야
온전하게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 너도나도 산과 바다로 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마석역을 지나자 짙은 안개가 시작된다
북한강이 가까워졌다는 증표일 것이다
대성리역을 지나며 이제 시선은 오른쪽 창문 밖으로 이동한다
북한강 물줄기가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루는 압권의 절경이 펼쳐진다
산세는 더욱 웅장해지고 물줄기는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한다

청평역을 지나며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가평역을 지나며 멀리 명지산 줄기
둥글둥글하면서도 몽긋몽긋한 봉우리들이 능선 위에 솟아 있다
지극히 몽환적인 山水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인간이 꿈꾸는 세계
인간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세계는
저 몽환적인 세계가 아닐까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잃고 있다 보니 어느새 굴봉산역이다
도착 시간이 오전 7시 51분이니 한 시간 동안 눈이 엄청 호강을 누렸다

   3
역을 나오면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좌측에
굴봉산역 일대 안내도가 그려진 입간판이 서 있다

오늘 대회 코스는
대회장인 서천분교에서 임도 입구 까지 왕복 7km 정도의 포장도로와
새덕산 일대 비포장 임도 13km로 구성되어 있다

이 13km 정도의 임도는 정중앙은 아니지만 해발 490m의 새덕산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임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발 410m의 한티 고개를 정점으로 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도록 경기 코스가 설계 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한티 고개는 새덕산 정상과 해발 520m 봉화산 정상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굴봉역을 벗어나 서천분교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개울 건너 앞산에서 뻐꾸기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백 미터쯤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마을 어느 촌가에서 수탉 노랫소리도 들린다
마을 방문을 환영한다는 반가운 목소리일 것이다

지금까지 꽤 여러 번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처음 겪는 지극히 보기 드문 일이고 이례적인 일이다

길가 감자밭에는 감자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어느 집 마당 한 편에는 함박꽃도 형형색색으로 예쁘게 피어 있다

사람만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오늘 잔치를 위해 열과 성을 보태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오늘 대회에 참가하는 러너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즐기며 누리면 된다

   4
경기는 오전 열 시에 20km 부문부터 출발이다
대회 복장으로 3km 정도 가벼운 조깅과 함께 짧은 인터벌 몇 개를 하고
출발선 앞쪽 부분에 선다
작년보다 참가선수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선수들도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전체적으로 훨씬 젊어진 것 같다

선수들만 많아지고 젊어진 것이 아니다
나보다 빠른 고수들도 엄청 많아졌다
출발하여 1km 가까이 달리니 내 앞에 있는 러너가
족히 80 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작년보다 배 정도 늘어난 수치다
그렇다고 나의 달리는 속도가 작년보다 느려진 것도 아닌데

내 입장에서는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트레일 러너 저변 확대나 전체적인 경기력 향상 측면에서는
매우 고무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다

출발 후 5km 지점까지는 급경사 구간이 여러 군데 있다
내 앞을 달리는 고수들의 3분의2 정도는 이 급경사 구간도
걷는 법 없이 계속 달려 오를 것이다
작년 대회만 해도 서너 번 걸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운영방식을 바꿔 작년 보다 두서너 번은 더 걸었다
급경사 구간을 억지로 달려 오르는 것과 빨리 걷는 것의 속도 차이가
힘드는 정도에 비해서는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급경사 구간에서 빨리 걸으며 거친 호흡도 안정시키고 힘을 비축하여
달릴 수 있는 구간에서 좀 더 빨리 달리는 것이
계속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속 달리는 것보다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엎치락뒤치락 달리는 십여 명의 러너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내가 달려야 할 길과
내 앞을 달리는 선수한테만 집중하며 달린다

입상과는 거리가 먼 대회지만
그래도 내 눈에 보이는 선수가 계속 앞에 있어 주니
경쟁심과 함께 승부욕이 조건반사적으로 발동된다

작년만 해도
올해보다 참가 선수가 적고
내 앞을 달리는 고수도 작아서인지
구불구불한 임도 곳곳에서는 내 앞을 달리는 선수가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때가 꽤 여러 번 있었는데
올해는 내 앞을 달리는 선수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5
산악달리기는 같은 거리라도 평지에 비해 훨씬 에너지 소모가 크다
작년에는 에너지젤을 하나만 준비하여 경기 종반에 현저히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올 대회는 두 개를 준비하여 12km 지점 근처와 17km 지점 근처를 지나며
각각 섭취하였더니, 확실히 경기 종반에 체력이 확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페이스를 적절히 유지하며
힘겹게 16km 지점 근처 비교적 평탄한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내려서서
3km 넘게 비교적 편안한 호흡의 편안한 속도로 달리니
저만치 굴봉산역이 보이고 마침내 서촌 분교 앞 결승선을 통과한다

쇄석이 깔린 임도를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달릴 수 있을까
경기 전에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올해도 무사히 완주한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대견스럽다
다시 한 번 내 생각대로 움직여준 내 몸에게 박수를 보낸다

골인 후 백 미터 정도 가벼운 달리기로 몸을 푼 다음 기록을 확인하니
2시간 1분 43초가 걸렸다
작년 대회보다 기록이 6분 35초나 앞당겨졌다
놀라운 사실이다
km당 페이스가 작년보다 20초나 빨라진 것이다

올 대회 날씨가 작년 대회보다 좋았던 것도 아닌데
올해도 싱글렛 상의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상당히 더웠고
코스도 작년과 똑같았는데

빨라진 기록만큼
내 몸이 젊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무엇이 좋아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기록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니

이 대회를 준비하며
훈련을 효율적으로 했거나
달리기에 필요한 내 몸의 특정 부위나 기관이 좋아졌거나
대회 1주일을 앞두고 작년보다 테이퍼링을 잘 했거나
작년보다 올해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하여 경기를 운영했거나
아무튼 나의 달리기에 발전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 이 대회를 치르며 거둔 최고의 수확은
단순히 빨라진 기록뿐만 아니라
나의 달리기와
달리는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이 강화된 자신감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내 삶에 대한 의욕이나 의지나 욕망도
한층 강고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내년 이맘때는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해보다 더욱 좋아진 몸으로
다시 이 대회 출발선에 서고 싶다

 (2024-05-23 14:13:33)

울트라급 참가기 잘 보고 갑니다


황씨
 (2024-05-23 14:17:41)

2310번 굴봉산 역 전에서 사진 찍은게 있는데요
보내 드릴께요 ham5150@korea.씨오앰(콤)여기로 받을 메일이나 전화번호 주시면 보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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