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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숭이 2017-01-12 08:06:22, 조회 : 412, 추천 : 5

춥다.  11월 초순 스테이튼섬은 추웠다.

그래도 뉴욕에 스테이튼섬이라는 섬이 있고 그곳이 뉴욕마라톤의 출발지점이고 또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스테이튼섬이라는 것을 승범이 안 것은 바로 조금 전이었다.  

어제 저녁 승범은 뉴욕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마자 여행사 직원에 이끌린 채로 참가번호를 받으러 갔다. 그렇게 큰 건물이 뉴욕의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승범은 알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 한 번 코엑스에서 '부동산박람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런 유명 국제박람회같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넓은 행사장내에는 [뉴욕 시티마라톤]에 협찬하는 기업들의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각각의 취향을 살려 부스를 꾸미고 기념품을 나눠주는 등 시민마라톤을 활성화하고 참가자를 응원하려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참가 번호표는 두텁고 부드러운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번호표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인종도 연령도 실로 다양하고 누구라도 마라톤을 자신있게 달릴 것같은 표정이다.

승범과 같은 여행사의 멤버는 20명 정도로 정년퇴직한 후 10년이 지난 부부나 일부러 휴가를 냈다는 직장인, 조깅 동반자 몇명과 네이버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라는 젊은 여성 등 전국에서 모였다.  매일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몸매의 사람도 있는 반면 기록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달리는 것이 좋아 안 달리면 금방 죽을 것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정말 각양각색이다.   공통되는 것은 즐거워하는 표정과 고양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텐데도 마라톤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것을 보니 마치 10년 지기처럼 보였다.  마라톤을 잘 모르는 승범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종교집단 같이 보이기도 했다.  

승범이 자기 소개를 하면서

"아뇨 저는 사장의 명령으로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참가하게 되어..."

라며 머리를 긁적이자

"네?  어떤 사장입니까?"

"그것 참 별나신 분이네요.  그래도 매우 즐거운 대회이니까 걱정 말아요" 라고  모두 웃으며 격려해주었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만 있어 안심이 되었다.  뉴욕마라톤은 인기가 있어 출전하고 싶어도 추첨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은 승범은 약간 뒤가 켕기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할 수밖에 없다.

번호표를 손에 든 승범은 옛날 경험도 있고 장거리 선수였던 시절의 불꽃이 가슴속에 재연되는 것을 느꼈지만 그날 밤 너무 피로해 저녁도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자고 말았다.   어쨋든 자지도 못하고 짐을 싸 비행기 안에서도 노트북으로 쉬지않고 회사의 서류를 작성했다.  

다음날도 호텔방에 처박혀 메일을 쓰거나 시차와 피로에 못이겨 낮잠을 자면서 보냈다.  과연 사전 연습도 해보지 않으면 무리일 것같아서 애용하는 신발과 훈련복을 몸에 걸치고 저녁에 슬금슬금 거리로 나왔다.

호텔은 브로드웨이에 붙어 있고 94번가와 95번가 사이에 있다.  가게가 줄지어 선 시끌벅적한 브로드웨이쪽으로 마음이 끌렸으나 인적이 많았다.  빌딩숲이 서있는 95번가를 브로드웨이를 등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뉴욕은 위험한 도시라는 나름대로의 인상이 있어 마피아가 금방이라도 총을 쏘지나 않을까 생각했지만 물론 그것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 것이다.   한국의 대도시처럼 자동차와 사람이 분주하게 오고갔다.  

바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공원에 맞닥뜨렸다.   이곳이 아마 소문으로 듣던 센트럴파크.  그리고 오른쪽 저편 불빛이 반짝이는 마천루가 즐비해있다.

'내가 정말 맨하탄에 있구나!' 그렇게 되뇌었다.  승범은 왠지 감격하여 마천루에서 나오는 불빛에 끌려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았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위해  센트럴파크의 긴쪽 경계선을 따라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거리를 가볍게 왕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도중에 한 모퉁이에서

'혹시 이게 존 레논이 살았던 그리고 [로즈마리의 아기]에 나온 그 다코다 하우스?!'  그렇게 보이는 건물이 있었지만 용기와 영어실력이 짧아 행인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저게 다코다 하우스라고 마음속으로 상상할 뿐이었다'

학생시절에 제법 본격적으로 달린 적은 있지만 공백이 10년이나 된다.   나이가 들면서 군살도 붙어 다리는 생각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처럼 산 신발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승범은 쓴웃음을 지었다.  취직을 계기로 달리는 것을 멈추기로 맘먹었는데 미련이 남아 매년 신발을 사고 가끔은 집 주변을 조깅 하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생때의 스피드나 열의와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이다.  불안으로 전신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호텔로 돌아온 승범은 영어가 능통한 일행을 따라 나왔다.  가까운 상점에서 새우를 토핑한 피자를 테이크아웃했다.   그 사람은 피자는 먹지말고 전야제와 파스타 파티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그게 뭔지 몰라 거절했다.  걸으면서 피자를 먹고 혼자서 방에 돌아온 승범은 호텔 욕실에서 수도꼭지와 한참 씨름을 한 후 겨우 물의 온도를 맞추었다.  

낮선 거리를 방황한 탓일까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육상 장거리에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선수로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자신.  사장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아 수행해야 하는 자신.   이것저것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다소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는 바로 자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승범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이 름
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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