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3클럽 | 여성 | 울트라게시판 | 시사게시판 | 구게시판 | 홍보게시판 | 불량게시물신고

로그인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완주기 (4)  
박복진 조회 : 338, 추천 : 10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4)

  여기는 세계에서 유일한 360도 지평선 대초원, 몽골의 마넹지역이다. 비가 좀 오면 풀이 사람 허리춤까지 자라, 그래서 이 지역 마넹 소고기 육질이 국내에서 제일로 맛이 있다는 곳이다. 지금은 석 달째 가뭄으로 풀의 길이가 겨우 양말높이까지만 자라있는 곳이다. 달리는 내 속도가 늦어진 건지, 앞선 주자가 빨라진 건지 내 앞 주자가 꼴까닥 지평선을 넘어가니 이제 이 우주에 나 하나 달랑 남았다. 말이 없는 묵언 수도승처럼 아무런 말도, 생각도 없이 얼마를 달려 나갔다. 그야말로 지평선만 존재하는 마넹 대초원의 특별 은혜를 흠뻑 받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자 내 앞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학교를 파하고 동네 골목에서 뛰놀던 나에게 어머니가 가만히 다가오셨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고 조용히 끄셨다. 나는 재미있게 뛰놀고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왼발 오른 발이 엉긴 채 마지못해 어머니를 따라갔다. 비녀를 꽂은 엄마의 돌돌말린 쪽진 뒷머리에 한낮 칠월 중순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 꽂혔다. 세월에 눌려 저절로 삐딱해진 양철 대문을 옆걸음으로 통과한 어머니는 나를 볏짚 낸내 나는 굴뚝을 왼쪽으로 끼고 뒤안 장독대로 데리고 가셨다. 사람 발소리에 놀란 장독대 앞 봉숭아가 분홍색 꽃잎 하나를 떨퀐다. 중간치 항아리와 뒤에 서있는 큰 항아리 사이를 가리키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기 저거 얼른 먹어라.

  그것은 방문의 격자무늬처럼 좌로 우로 길게 허리춤에 벌려 써진 복 복자 한문글씨가 있는 큰 국사발이었다. 거기 안에는 금방 삶은 중간치 닭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큰 국사발 가장자리를 따라 누우런 닭기름이 띠를 둘렀고 그 띠 안에는 숟갈로 뚝! 떠서 건져먹고 싶은 놀놀한 닭기름 방울들이 큰 것, 작은 것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놀랜 내가 어머니를 바라보자 어머니는 주먹으로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면서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서 먹으라니까! 딴 애들 오면 뺏긴다, 거기 앉아서 어서 먹어라. 싱거우면 호박잎 위 장아찌랑 어서 먹어라. 내가 앞마당에 있을테니 얼른 먹고 나오너라!

  우리 집 그 닭은 낳는 족족 그 알이 팔리어 내 잡기장도 사고 연필도 사고 수재 의연금도 내고 했던 우리 집의 살아있는 현금지급기였다. 그런 것이 지금 무슨 조화를 당해 무성한 털들은 죄 뜯겨나가고 알몸으로 국사발 속에 하늘 향해 두 다리를 벌리고 있다. 뒤안 장독대에서 끓는 물에 담가진 닭은 털이 뽑히고 다시 볏짚 불에 삶아진 채 초복의 복달임이라고 커다란 국사발에 담겨 내 앞에 놓여졌다. 아, 어머니! 아들의 영양식을 위해 현금지급기를 죽여야 했던 그 절박한 심정의 내 어머니. 그 때 어머니는 날 위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전장의 장수가 군 훈령을 위반한 부하를 치듯 그토록 의연하게 그 닭을 죽였을 것이다. 그런 의지로 날 내내 키워주셨을 것이다.

  어머니. 허구헌날 무역한답시고 세계를 돌아다니느랴 밥 한 끼 따뜻하게 같이 먹어보지 못했어요. 철이 좀 들어 그 죄스러움을 알아차렸을 때 어머니는 이미 가시고 이 세상에 안 계셔요. 불효를 알고 불충을 아파할 때, 날이 궂거나 날이 너무 좋을 때, 그래서 내 가슴을 퉁!퉁! 치며 하늘을 올려다 볼 때 어머니는 이미 안계세요. 나날의 바쁜 일상에, 잠시 잠깐의 묵상 시간도 갖지 못하다가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어머니 생각이 나 목에 피가 나도록 울고 싶어요. 자꾸만 눈물이 나요. 그런데 어머니는 안 계셔요. 망칠 나이에 이 무슨 변괴인지 모르지만 주책없이 자꾸 눈물이 나요. 자꾸만 자꾸만 이렇게 참회의 눈물이 나요..

  나는 지금 환생하신 내 어머니랑 나란히 이곳 몽골의 대초원 마넹을 뛰고 있다. 절대적인 침묵이 아니면 결코 맛 볼 수 없는 무한 질주의 지평선 한가운데에서, 달디 단 참회의 눈물을 혀끝으로 받아 입속으로 밀어 넣어가며 달리고 있다. 지금 이곳의 내 화두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내 어머니다. 마넹이 나에게 허해준 환생하신 엄마와 나는 지금 울며 웃으며 7 시간째 달리고 있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이 름
암 호

                    

 
 
 자유게시판 운영규정입니다  [6]  운영자(admin) 15.01.03 166 12544
9061    구간기록      기록 19.03.22 0 49
9060    동마 커플런(880)  [3]    번달사 19.03.22 1 443
9059    젊은 런너의 몰락  [4]    정상수 19.03.22 1 692
9058    에너지젤 질문  [2]    초보런너 19.03.22 2 460
9057    장경인대 부상  [1]    장경인대 19.03.21 1 265
9056    의병마라톤 접수기간 4월 7일까지로 수정해...  [1]    황송연 19.03.21 1 276
9055    이거야말로 "기적"이다  [10]    주랑 19.03.21 4 1142
9054    풀코스 러닝중 스페셜드링크  [6]    초보런너 19.03.20 1 854
9053    전마협과 작전세력..  [1]    마라토너 19.03.20 1 772
9052    서울동마 3:30페메 박천순님께 감사드립니다  [3]    최희우 19.03.20 1 852
9051    풀코스 완주하면 42만원 수당 주는 좋은 회사  [9]    좋은회사 19.03.20 2 1290
9050    동영상 저장방법?  [2]    왕초보 19.03.20 2 471
9049    동마때 한양대 120번 선수 누군가요??  [3]    귀염이 19.03.20 2 1039
9048    올 동마의 완주율은?  [1]    날개 19.03.20 2 705
9047    동마...순두부...  [10]    떡국 19.03.19 9 1005
9046    정운산 그는 누구인가?  [7]    운산 19.03.19 1 1231
9045    군산새만금마라톤 달려보신분중...  [7]    마라토너 19.03.19 1 627
9044    2019년 서울동아마라톤 사진(개인촬영)  [18]    정화국 19.03.19 1 982
9043    동마 시상기준이...  [1]    궁금이 19.03.19 2 419
9042    동아 마스터즈 탑10 음주 흡연여주조사  [4]    진로 kt&g 19.03.19 1 929
9041    한국 마라톤 처럼 마스터즈 기록이 과거에 비해 ...  [5]    달림이 19.03.19 1 803
9040    동아마라톤 마스터즈 시상금 너무 짠거 아닌가요  [4]    달림이 19.03.18 1 923
9039    0원 씨가 웬만한 달림이들보다 나은이유.  [1]    하룻강아 19.03.18 1 794
9038    동마 주로에서 생긴 일  [5]    번달사 19.03.18 3 1370

     
12345678910다음
       

marath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