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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꽃 향기는 바람에 휘날리고  
이정범 조회 : 762, 추천 : 27

                   밤꽃 향기는 바람에 휘날리고

동이 트기 무섭게 달리기를 위해 아파트를 나서니 밤꽃 향기가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한다. 밤꽃이 피어있는 야산과는 300m가 넘는 거리인데도 이 곳 멀리까지 향기가 퍼져 있으니 그 위력이 참 대단하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으니 밤꽃 향기가 아주 맑고 진하게 이른 아침 공간을 유아독존 식으로 독점하고 있는 것 같다.

맑게 비어있는 고요하고 선선한 공간만으로도 요즘 아침 달리기는 큰 즐거움인데 밤꽃 향기까지 채워져 있으니 그야말로 지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즐거움은 이른 아침에 달리는 러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해가 높이 솟아오르고 출근이 시작되면서 자동차가 도로를 메우며 소음과 함께 매연을 내뿜으면 밤꽃향기는 온갖 오염물질속으로 묻혀버린다.  

요즘 산에 가면 밤꽃이 만개되었다. 이 흰색과 노란색의 중간색쯤 되는 밤꽃은 향기가 아주 독특하고 진하다. 밤꽃이 핀 밤나무는 색깔도 다른 활엽수들의 녹색과 뚜렷이 구별될 뿐만 아니라 워낙 덩치가 크고 비교적 여러 그루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금방 밤나무 군락이 식별이 된다. 그래서 그 위치를 머릿속에 각인시켜 놓았다가 아람이 버는 가을에는 이리저리 밤나무를 찾아 헤매지 않고도 금방 찾아가 떨어진 알밤을 주을 수 있다.

30년 이상을 산골마을에서 생활한 나는 주변 야산이 내 놀이터고 일터였기 때문에 어느 골짜기에는 어떤 풀이 많고 어느 산등성이에는 어떤 나무가 많은지 훤하게 알 정도였다. 집에서 기르는 소나 우리 집 식구들이 필요로 하는 먹거리를 구하러 산으로 가면 내 머리에 식물지도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가는데 헤맬 일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20년 살았던 분당에서 이 곳 위례신도시로 이사 온 계절이 마침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 하순이었는데 나는 내 집 주변에 자리 잡은 야산을 구석구석 직접 찾아가 보지 않고도 멀리서 산에 릴레이식으로 피는 봄꽃들을 보며, “아 저기는 벚나무가 있군.” “아 저기는 아카시아나무가 있군.” “아 저기는 밤나무가 있군.”하고 나무들의 분포도를 대충 머리에 그렸다.

밤꽃 향기는 얼마나 진하고 멀리 퍼지는지 바람이 불지 않는 날도 밤나무 몇 그루만 있어도 밤꽃 향기가 제법 멀리까지 진동한다. 밤꽃이 피면 꿀벌들만 다시 바빠지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마라토너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면서 가을 대회를 대비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밤나무는 제 자리에 멈춰 있지만 향기를 통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더 강한 향기로 더 멀리 더 빨리 달려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향기는 강할수록 빠르고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천리향이란 식물도 있지 않은가. 꽃향기가 천리나 간다는…. 식물들은 제각기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로 허공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보자면 식물처럼 향기로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내장에 똥, 오줌 등 노폐물로 가득한…. 매일 매일의 달리기는 매일매일 몸 안의 내장을 깨끗이 비우며 청소하는 운동이다. 마라톤은 비워야 가볍고, 가벼워야 빠르게 멀리 달릴 수 있는 운동이다.

인간은 비록 자체적으로 향기를 생산하여 비운 몸 안을 향기로 채울 수는 없지만 대신 의미나 재미 같은 유 무형의 맛으로 내면을 채울 수는 있다. 식물처럼 향기로운 몸은 만들 수 없어도 의미 있는 존재는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마라톤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건강을 넘어 의미 있는 존재,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다.

행복은 건강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입맛, 재미, 흥미, 재미, 의미 같은 유 무형의 구체적인 맛을 통해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은 단지 행복이란 이 삶의 정상에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에 불과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건강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나 필요조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허허

밤꽃향기가 좋다는 남자 또 처음보네요.. 여자들은 좋아한다지요? 18.06.14
10:46:10




밤꽃추

밤꽃냄새때문에 달리다 토가 올라올 것 같아요.. 18.06.15
14:27:43




이정범

나도 예전에는 싫었는데 요즘은 좋아요^^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니
우선은 후각에 얼마간의 변화가 온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밤꽃 향기를 맡는 곳의 위치나 향기의 짙고 옅음에 따라 냄새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밤나무와 거리가 가까워서 향기가 짙으면 두 분 말씀처럼 냄새가 좀 역겹게 느껴질 수도 있고, 거리가 좀 멀리 떨어져서 향기가 옅으면 찐빵이 풍기는 냄새처럼 그윽하고 은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18.06.15
15:01:20



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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