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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그 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정범 2017-12-02 16:11:58, 조회 : 601, 추천 : 4

            그 때 그 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길을 잃고 군부대 안으로

2017년 7월 23일 오전 10시. 산악마라톤대회 출발지점인 양재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서 청계산을 바라보니 완전히 구름에 휩싸여 있다. 바로 앞 200m 가까이 있는 산자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청계산 옥녀봉과 매봉 이수봉을 거쳐 옛골로 하산한 다음 다시 인릉산을 거쳐 성남시 신촌동으로 하산하는 오늘 대회 코스를 여러 번 달려봤지만, 아무래도 저 구름 속에서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 것 같다.

     *구름으로 뒤덮인 청계산과 인릉산
짙은 구름 속에서도 이수봉까지는 잘 갔는데, 기어이 이수봉에서 옛골로 내려가는 길에서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수봉에서 옛골 내려가는 능선 길은 삥 둘러 철조망이 쳐져 있는 군 통신 중계소를 좌우 양쪽으로 우회해서 가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왼쪽 길을 택했다. 바른쪽으로 도는 길보다 짧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왼쪽 길이 달리기에 익숙해서였다.

열 차례 가까이 달려본 경험이 있는 익숙한 길이라는 것이 결국은 문제였다. 옛골로 내려가는 주능선 길을 100m 정도 남겨둔 지점에는 좌회전하여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심코 달리다가 그만 그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한참을 무의식적으로 달려 내려가는데, 아무리 구름 속에 시야가 흐릿하지만 달리는 주로며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풍경이 갈수록 생소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구름과 흐릿한 시야 때문에 주변의 사물들이 낯설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달리는 길도 이수봉에서 옛골로 내려가는 정상적인 주로처럼 계속되는 능선 길이었기 때문에…. 설사 길을 잘못 들었다 하더라도 내려 가다보면 옛골마을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을 일부러 내며 몰려오는 불안을 물리치려 더욱 더 힘을 내어 달렸다.

     *이수봉 내리막길에서 알바
그런데 그 정상적인 주로에는 없는 전혀 생소한 가파른 내리막길이 한참을 이어지더니 오래전에 파놓은 방공호가 몇 개씩이나 보이고 마침내 길이 끊기는 것이었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큰 낭패감이 몰려왔다. 길을 잘못 든 것으로 판단되는 이수봉 통신중계소 갈림길까지 다시 올라가기에는 너무 많이 내려왔다. 9부 능선에서 2부 능선 가까이 하강한 것이다.

그렇다고 끊긴 길에서 무성한 숲을 헤치며 무작정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 일단은 다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고, 올라가다 보면 이수봉 정상 근처까지 오르지 않고도 중간에 계곡으로 빠지는 길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내 기대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다시 방공호를 지나 얼마간을 오르니 능선 길에서 바른쪽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제법 급한 경사면 아래로 포장도로가 보이는 것이었다.

포장도로를 보는 순간 구원이 밧줄이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숲을 헤치며 150m 가량 강우로 인해 미끄러운 급한 경사면을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오고, 길은 계곡을 끼고 꾸불꾸불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몇 백 미터를 내려가도 인적은 전혀 없고, 직감에 군부대 안에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내려온 길을 따라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옛 경험에 비추어볼 때 내려가다 보면 밖으로 통하는 군부대의 입구가 나올 것 같았다.

     *군사비밀지역 안으로
몇 백 미터를 달려 내려가니 역시 예상한대로 좁은 계곡 바로 옆에 부대 위병초소가 나왔다. 그런데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문 밖 초소에는 단 한 명의 군인도 보이지 않았다. 닫힌 문에는 영어표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00부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 당시 다니던 직장의 을지훈련연습 때 인근 00부대에서 현역군인들이 CPX훈련의 일환으로 회사 영내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만났던 한 병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기억하건데, 전시에는 미8군 병력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벙커가 있다는…. CPX훈련 때는 벙커 안에 별이 수십 개나 뜬다는…. 최근에는 모 일간지에 그곳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 기사도 있었다.

20여 년 전인 40대에도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에 경기도 포천 쪽 청계산 줄기(?)를 홀로 산행하다가 그만 길을 잃어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위병초소에서 신원을 확인 받은 다음에 군부대 밖으로 빠져나온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 부대 안에는 탱크가 여러 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에도 두 번씩이나 길을 잃고 군부대 안으로
위치와 모습과 구조는 각기 다르지만 똑 같은 이름의 산에서 겪는 이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사고.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극적이었다. 20여 년 전의 그 시간과 지금 이 시간 사이에는 무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관관계나 인과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이를테면 20여 년 전의 그 알바는 오늘 이 사건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는…. 오늘의 내가 그 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역시 정문 위병초소로 내려가는 도중이나 초소에서 군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마라톤 경기 복장을 그들에게 보이며 마라톤 경기 중에 길을 잃고 부대 안에 잘못 들어왔다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면 간단한 신분 확인 후에 가볍게 풀려나 군부대를 벗어나 옛골마을로 내려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라톤 경기 복장으로 두 시간 몇 십분 동안 달려온 내 행색과 얼굴 표정은 그들에게 충분히 나의 말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이곳은 내 예감 내지 직감이 적중한다면 그 부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어마 무시한 군사비밀지역(?)이다. 어디서 수하도 없이 갑자기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섬뜩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위병초소에 군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한국군이든 미국군이든 군인이 보여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문을 열어달라고 할 터인데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군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닫힌 문 주변에는 내 키 두 배 정도의 높은 철조망이 쳐져있어 도저히 넘어갈 수도 없었다. 이런 낭패가 없다. 다시 내려온 길을 되돌아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군사비밀지역 출입구 위병초소에 군인이 없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일요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지금은 CPX(?) 훈련 중이거나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얼마 내려가지 않아 옛골마을이 나와 정상적인 주로에 다시 들어설 수 있을 터인데….

     *부대 안 도로 안내판에 그려진 탱크
다시 구불구불 이어진 포장도로를 오르다보니 표시판이 보이고, 그 곳에는 무시무시하게 탱크가 그려져 있었다. 지하벙커는 포장도로 위쪽 어디에 있는 모양이었다. 금방이라도 길모퉁이 저쪽 위에서 탱크가 불쑥 나타나 나에게 긴 포신을 들이댈 것 같았다. 저절로 덜컥 겁이 나 포장도로 우측의 조금 전에 내려온, 길이 없는 급한 경사면을 기다시피 올라가 다시 능선 길과 합류한다.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부대 뒤쪽에도 철조망을 쳐놓았다면 오늘 같은 일이 전혀 벌어지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이토록 중요한 군사 기밀지역의 방호나 관리상태가 허술할까. 오늘 달린 국정원 뒤 대모산-구룡산 코스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철조망이 능선을 따라 길게 쳐져 있는데….

몇 년 전에도 오늘과 똑 같은 코스에서 경기를 하며 골인지점을 불과 2km 정도 남겨놓은  인릉산 구간 하산 길에서 알바를 당하여 역시 K-16 공군기지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어느 부대 영내로 들어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그 부대 또한 부대 뒤쪽에는 철조망이 처져 있지 않았지만, 오늘과 달리 부대 내 등산로를 허겁지겁 달려 내려가다가 훈련(작전) 중인 소대규모의 군인들을 만났다.

만나는 순간 약간은 서로가 놀란 표정으로 그들과 나 사이에 묘한 시선이 오갔으나, 그들은 아무런 검문검색이나 제지를 하지 않았다. 마라톤 경기 복장을 하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으니 한 눈에도 내가 수상하다고 여겨지기보다는 길을 잃은 것쯤으로 금방 판단되었을 것이다.

달려 내려가다 보니 이곳과는 달리 비포장 등산로가 끝나는 곳에 부대 위병소는 없었고 높은 철조망만 좌우로 길게 처져 있었는데, 다행히 철조망 가까이에 나무가 서 있었다. 그 나무를 이용하여 철조망에 올라서서 다리며 팔 몇 군데가 철조망에 긁히는 수난을 겪으며 겨우겨우 군부대를 탈출할 수 있었다.

능선 길을 다시 한참 올라가다보니 4부 능선쯤에 갈림길이 나오고 안내표시판이 서 있다. 안내표시판을 자세히 보니 그제야 내가 어떻게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서너 차례 이 길을 지나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40분 이상 크게 알바를 한 것은 두 번에 걸친 결정적 실수 때문이었다.

     *40분 이상의 알바 뒤 정상 주로에 안착
제일 먼저 길을 잃은 곳은 군부대 통신 기지였다. 이수봉에서 내려서서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으로 끼고 돌 때 두 번째 갈림길에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표시판을 확인하지 않고 첫 번째 갈림길에서 감각에 의존하여 좌회전한 것이다. 두 번째 실수는 능선 길을 내려가다가 길이 낯설다고 느낄 때 4부 능선쯤에 설치된 안내표시판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우회전하여 계곡 쪽으로 내려갔어야 하는 데 그를 무시하고 그냥 능선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옛골마을에 이를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직진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두 번의 실수로 인해 빗어진 사태이긴 하지만, 모든 원인을 내 부주의로 돌리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짙은 구름이나 가스만 아니었더라도, 날씨가 좋아 시야만 멀리 확보되었더라도, 이같이 어이없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우연한 실수로 인해 아주 특별한 소수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비밀지역에 얼떨결에 진입해 일부 속살을 구경하는 행운(?)을 얻었다.

어쩌면 세상에 우연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우연이라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오늘 알바로 인해 들어간 부대 주변을 수십 년 전부터 수없이 오가거나 바라보며 저 부대에 대한 호시심이 늘 있어왔는데, 오늘 마침내 저 부대가 이제는 때가 되었다며 강한 자력을 발동시켜 구름 속에서 달리는 나를 비밀리에 아주 은밀하게 끌어당긴 것이 아니가 하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그 부대 안에 들어간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입상을 꿈꾸며 허겁지겁 달리다가 40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는 알바를 당하여 꿈은 사라졌지만, 오늘 그 어느 참가선수도 경험할 수 없는 입상 이상의 특별한 혜택(?)을 누렸으니…. 더구나 부대 안을 20분 가까이 휘젓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검문이나 위협사격도 받지 않고 무사히 군사비밀지역을 빠져나왔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날의 진귀한 체험은 알바가 안겨준 특별한 선물
안내표시판에서 남쪽(우측)으로 90도 가량 방향을 틀어 내려가니 곧바로 길고 급한 경사의 계단이 나오고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계곡을 따라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이 옛골마을까지 이어진다. 모두가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도 등산객이 서너 명 이상씩 무리를 지어 계곡을 올라오고 있다.

옛골마을 체크포인트에 도달하니 여자 대회진행요원이 나를 알고 있는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묻는다. 인릉산에 들어서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달리는 등산로가 순식간에 황토 빛 빗물이 콸콸 흐르는 물길이 된다. 경기 출발 전에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청계산과 인릉산을 바라보며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고, 오히려 예상보다도 더 심한 악전고투였다. 그래도 무사히 골인지점에 안착했고 악전고투 뒤에 마시는 막걸리는 더욱 각별하게 맛이 있었다.







기록

욕심있는 분 한테는 별로 관심이 안갑니다~~ 17.12.03
19:13:29




ㅊㅈㅅ

별다르고도 생소한 나만의 체험?
오랜동안 잊혀질 수 없는 런너의 추억으로 남겠습니다.
선배님처럼
너무 앞서가도 가끔 행운이(?) 따르죠?
17.12.04
04:33:25



이 름
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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