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
이 정 범
어떤 음식을 앞에 놓고
입 안에 가득 군침이 고일 때만큼
입에서 혀와 목구멍을 거쳐 창자까지 온통
기분 좋게 흥분되는 때는 없다
입맛을 당기고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을
내 안에 깊이 들이는 일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내 몸 안에 받아들이는 것 못지않게
우주를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는 엄청난 사랑이기 때문에
군침이야말로
한 남자가 한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나
한 여자가 한 남자의 몸을 받아들이고 싶을 때처럼
그 간절하고 격렬하고 찬란한 만남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몸 전체가 흘리는 애절한 눈물이기 때문에
군침이야말로
내 입, 내 혀, 내 목구멍, 내 창자가 우주를
아주 맛있고 격렬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우주에 보내는 간절한 신호이기 때문에
고통과 고통 사이
불행과 불행 사이에
문득문득 찾아오는 기쁨이나 재미도
살맛을 돋우고
살맛을 당기기 위해
내 마음이 흘리는 군침이기 때문에
*시집 '슬픔의 뿌리,기쁨의 날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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