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차이
이 정 범
같은 아파트 건물인데도
내가 사는 12층에서 밖을 내다보면
주변의 산이 사방팔방의 아파트에 가려져 거의 안 보이는데
꼭대기 14층에서 내다보면
청계산과 관악산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불과 2층 높이
불과 6m 안팎 높이 차이인데도
12층에서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14층 사람은 아예 창문에 넣어 두고 산다
(물질의 세계에서 이 정도 높이 차이에
보고 못 보는 것이 갈라진다면
정신의 세계에서는 백지 한 장 차이에도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이 얼마든지 갈라질 수 있다는 생각)
그런데
나는 14층에 저녁식사 초대받아 올라가자마자
창밖에 펼쳐진 청계산과 관악산 줄기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神을 찾은 것처럼 감탄하고 기뻐하는데
정작 14층 남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덤덤하다
14층 남자가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
나한테는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경탄의 눈물과 미소를 보내는데
나는 그가 믿는 신을 향해 무덤덤해 하는 것처럼
그 이유인즉
나는 唯物論者이고
그는 唯心論者이기 때문일까
*시집 '슬픔의 뿌리,기쁨의 날개'중에서
|
|